이렇게 ‘힙’하다, 여성들로만 채운 21세기 한국무용

국립무용단 올해 첫 신작 ‘미인’ 여성 무용수 29명으로 꽉 채운 무대 현대적·감각적 연출·음악 돋보여 이례적 전석 매진 열풍도

2025-04-05     이세아 기자
국립무용단 ‘미인’. ⓒ국립무용단 제공

‘도파민 파티’란 말이 딱이다. 국립무용단 2025년 첫 신작 ‘미인’은 전통예술 공연이라기보다 온통 감각을 자극하는 요소들로 채운 K팝 뮤직비디오, 혹은 디자이너가 공들여 만든 패션 필름 같다. 

한국무용의 우아함과 역동성, 여성 무용수들의 아름답고도 강인한 몸짓에 현대적인 스타일링과 연출, 전자음악의 옷을 입은 국악까지 꽉 채운 60분. 지루할 틈이 없다.

국립무용단 ‘미인’. ⓒ국립무용단 제공

여성 무용수 29명만이 무대에 선다. 신윤복 ‘미인도’ 속 여인처럼, 머리엔 구름 같은 가체를 얹고 흰 저고리에 풍성한 치마를 곱게 차려입은 무용수의 등장으로 막이 오른다. 

이어 고려 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여성들의 민속놀이인 놋다리밟기를 시작으로 승무, 나비춤, 강강술래, 북춤, 부채춤, 칼춤, 살풀이, 탈춤 등 11가지 한국무용을 선보인다. 베테랑 무용수들이 선보이는 강렬한 독무도, 우아하고 화려한 군무도 있다. 진도북춤에서 영감을 받아 대지의 어머니에 빗대어 강인한 생명력을 표현하는 북춤 무대도, 남성 연희자가 주로 추던 탈춤을 여성 군무로 재해석한 무대도 있다. 

국립무용단 ‘미인’.
국립무용단 ‘미인’.

오트쿠튀르 컬렉션을 방불케 하는 의상이 먼저 눈에 띈다. ‘보그 코리아’ 1세대 스타일리스트, ‘K-패션의 아이콘’ 서영희 디자이너 작품이다. 삼베·모시·실크·벨벳 등 소재를 활용한 의상 500여 점과 오브제를 감상하는 재미만도 쏠쏠하다. 

단순한 요소들로 다채로운 멋을 끌어내는 무대디자인도 인상적이다. 지름 6.5m의 대형 에어벌룬을 무대 중앙에 띄워 차고 기우는 달과 같은 음양의 에너지를 표현했다. 에스파 ‘위플래쉬’, 아이브 ‘해야’ 등 감각적인 K팝 뮤직비디오, 금발의 아이유(IU)가 등장한 에스티 로더의 글로벌 캠페인 영상 등으로 주목받은 ‘로하우스(ROH HAUS)’의 신호승 아트디렉터가 선보인 무대다. 정구호 연출가의 작품들이 그랬듯, 간결하고 세련된 요소들이 국립무용단 무용수들의 에너지와 만나 만드는 폭발력이 있다. 

국악은 고루하다는 편견을 깨부수는 음악도 백미다. ‘범 내려온다’로 널리 알려진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의 리더이자, 드라마 ‘정년이’ 음악을 맡았던 장영규 작품이다. 꽹과리·거문고·장구 등 한국 전통 악기의 사운드를 해체하고 재조립해 모던하고 강렬한 음악을 선보였다. 

안무는 최근 엠넷 ‘스테이지 파이터’에서 한국무용 코치 겸 전국 투어 총안무감독을 맡았던, 주목받는 여성 안무가 정보경이 맡았다. 전통미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창작춤으로 구성했다.

국립무용단 ‘미인’.
국립무용단 ‘미인’.
국립무용단 ‘미인’.
국립무용단 ‘미인’.

연출은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부터 연극·영화·뮤지컬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한 ‘국가대표 연출가’ 양정웅이 맡았다. 국립무용단과는 첫 협업이다.

양 연출가는 “한국 예술계를 대표하는 ‘어벤져스’ 창작진을 한자리에 모았다”라며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온 최고의 창작진이 뭉쳐 독창적인 방식으로 한국의 미를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여성 무용수의 정교한 몸짓과 강렬한 에너지의 대비를 동시에 담아내며, 전통미와 동시대적 감각을 넘나들겠다”고 했다. 

개막 약 한 달 전부터 이례적인 조기 매진으로 화제에 올랐다. 지난 2일 오후 3시에 열린 드레스 리허설 현장에선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공연은 6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