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주의자로부터 아스팔트를 지키자

[벌거벗은 남자들]

2025-03-13     한정민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최근 신남성연대 등 극우 세력이 이화여자대학교에 난입해 난동을 피우자 여성단체들이 경찰을 행해 이들을 즉각 수사하고, 강력히 처벌할 것을 촉구했다.  ⓒ김세원 기자

지난달 26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 신남성연대 대표 배인규씨를 비롯한 극우 유튜버들이 난입해 현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학생들의 피켓을 빼앗아 찢고, 씹어 먹는 행위를 하는 등 폭력적이고 엽기적인 행각을 벌인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을 막아서는 학교 보안관과 몸싸움을 벌이고 끝내 학교로 무단 침입했을 뿐 아니라, 무력을 제지하려는 학생과 시민들을 밀치고 멱살을 잡았다.더욱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은, 이들이 난동을 부렸던 이전 타대학에선 교내 진입은 커녕 라이브 방송조차 켜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여성혐오를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증거다.

돈이 되는 '여성혐오'

신남성연대는 탄핵 정국 이전에는 이슈 몰이를 위해 동덕여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여성혐오를 자행했다. 탄핵 정국 이후에는 서부 지법 폭동으로 자신들의 입장이 난처해지자 또다시 공식처럼 여성혐오를 이어나갔다. 왜 ‘여성혐오’일까? 돈이 되기 때문이다. 왜곡된 정치 지형에서 위정자들은 여성혐오자들의 ‘공로’와 ‘노고’를 치하한다. 혐오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행동의 유효함을 승인한다. 또한 비뚤어진 차별 감정을 지닌 극우 세력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이들에게 후원금으로 응답한다.

‘페미니스트에게 점령당한 아스팔트를 되찾자’는 신남성연대의 구호처럼, 이들은 페미니스트를 주류 집단으로, 남성을 그로부터 소외된 비주류 집단으로 상정하여 피해자성을 강조한다. 이들은 페미니즘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진보 운동 또한 저항해야 할 대상으로 상정한다. 신남성연대의 모든 활동에는 남성이 차별받고 있다는 억울함이 깔려있고, 특히 청년 남성들의 좌절을 여성의 탓으로 돌린다. 그런데 그게 어디 여성의 탓이던가.

원인은 ‘당연히 주어질 것’이라 믿어온 삶이 제공되지 않은 데 있다. 아버지 세대가 누려온 번듯한 직장과 가장으로서의 삶이 부재한 것이다. 이는 여성들이 ‘할당제’로 남성의 자리를 빼앗아서도, ‘이기심’으로 결혼을 해주지 않아서가 아니다. 원인은 IMF 이후 급속도로 불안정해진 한국사회의 구조에 있다.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줄어들고, 부동산과 금융자본이 아니면 자산을 축적할 수조차 없는 격차가 그 배경이다.

신남성연대는 탄핵 정국 이전에는 이슈 몰이를 위해 동덕여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여성혐오를 자행했다. 탄핵 정국 이후에는 서부 지법 폭동으로 자신들의 입장이 난처해지자 또다시 공식처럼 여성혐오를 이어나갔다. 사진은 지난 1월 19일 서울지법의 모습ⓒ연합뉴스

청년 남성의 어려움은 ‘페미니즘’ 때문이 아니다.

여성들은 페미니즘이라는 해방의 언어를 통해 가부장적 질서로 인한 고통과 불평등을 해석하고 시정하고자 노력해왔다. 반면 남성들은 자신들의 고통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만나지 못한 채, 신자유주의 질서가 말하는 ‘모든 것은 개인의 탓’이라는 논리에 급속도로 빨려 들어갔다. 군대가 억울함의 온상이 되고, 여성 및 약자에 대한 무임승차론이 대두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여성과 사회적 약자들이 그들을 군대에 보낸 것이 아니고, 남성의 일자리를 빼앗지도 않았다.

남성을 강제로 징집하는 징병제는 국가의 주도로 법과 제도로써 이루어지고 있다. 일자리 문제의 본질은 장시간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의 증가에, 정보와 자원의 격차로 신음하는 청년 문제에 있다. 책임은 고용주나 사장, 권력을 가진 기성세대, 국가 및 정부에게 있을진대, 신남성연대와 같은 극우 세력은 여성, 노동자, 이주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동료 시민으로 연대해야 할 대상에게 분풀이를 하는 것이다. 분노는 언제나 아래로 흐른다. 강자에게 한 마디 못하고 옆 사람과 차별받는 이들에게 그 하중을 더하는 비겁한 꼴이다.

지난달 26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정문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 집회와 탄핵 반대 집회가 열렸다. ⓒ연합뉴스

관망 않고 강력히 규탄해야 할 때

나는 극우 세력과 그 지지자들은 불안감에 휩싸여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주지 않는 기존 공동체에 대한 좌절과 이 상황이 지속될지 모른다는 불안이 이들을 집결하도록 만들었다고 본다. 이들에게는 좋은 사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과 그것을 현실로 만들 방법론이 부재하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가 곧 이들의 ‘주장’이 된다. 진보에 대한 반대가 목적일 뿐, 자신들만의 고유한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합리성을 무력화하기 위한 무력이 필연적으로 동원되는 것이다.

그들의 폭력성이 억울함에 기초하고 있음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을 표출하는 방식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억압과 여성혐오 그리고 폭력이라면 용납되지 않는다. 폭력에는 엄중한 수사와 법적 조치를 촉구해야 한다. 또한 단결되고 조직된 힘을 통해 그들을 가장자리로 몰아내야 한다. 진단과 비평에 그치지 않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행동이 더 유효한 결괏값을 만들어 낼 것이다. 관망하며 혀를 찰 것이 아니라, 이성과 단호함으로 맞서 싸울 실천적 용기가 필요하다.

동시에 진보 의제, 대안 가치가 한시 바삐 우리 사회에 안착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적자생존을 말하는 극우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없도록, 모두에게 경사가 완만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양질의 일자리가 더 많이 필요하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완화하고 소득 격차를 좁히기 위한 개혁이 시급하다.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차별받는 개인이 맞서 싸울 수 있는 논리를 가져야 한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어떻게 되든 결과는 똑같다’는 식의 전망 없는 좌절이 활개 치지 못하도록, 개혁의 실현을 앞당겨 갈등과 반목에 대한 치유를 이야기할 수 있는 세계를 이루자. 혐오와 백래시를 딛고, 우리의 손으로 다시 만들 세계를 위해, 광장으로 가자.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이한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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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이하 남함페)'은 남성 연대에 균열을 내고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실천하고자 교육, 연구,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벌거벗은 남자들>은 그간 가부장제 아래 왜곡된 남성성에 변화를 만들고자 남함페 활동가 5인이 남성 섹슈얼리티, 관계, 돌봄 등 남성의 삶 전반을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톺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