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여성폭력 피해자 보호 위해 앞장서 온 전지혜 계장
[인터뷰] 전지혜 경찰청 여성안전기획과 스토킹정책계장 2025 미지상 공공부문 수상 “여성폭력 근절·피해자 보호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
2005년 2월. 경찰대학 졸업식에서 여성 경찰에 대한 편견을 깨고, 여성학을 공부해 인권을 우선시하는 경찰이 될 것이라는 당찬 포부를 밝혔던 수석 졸업생이 있다. 이 졸업생은 20년 뒤 여성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로 우뚝 섰다. 바로 전지혜 경찰청 여성안전기획과 스토킹정책계장의 이야기다.
전 계장은 경찰대 졸업 후 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석사과정) 진학을 선택했다. 당시 90% 이상이 남성이었던 경찰대에서 공부하며 표현하기 어려운 불편함을 느꼈고,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남성에게 더 적합한 직업’이라는 편견이 만연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전 계장은 “여성학을 공부하면서 여성주의적인 시각을 배웠다”며 “경찰을 계속하면서도 전공을 활용해 여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전 계장은 경찰에 입직한 이후 여성폭력을 예방하고, 범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현장의 최전선에서 힘써왔다. 전 계장은 2014년부터 2019년까지 경찰청에서 ‘성폭력피해자보호’ 정책을 담당하며, 편안한 피해조사 환경을 조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사과정에서의 2차 피해 예방을 위한 ‘표준조사모델’ 등의 매뉴얼도 개발했다.
전 계장은 2022년부터 스토킹정책계 계장으로 근무하며, 스토킹과 교제폭력을 예방하고 피해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해 오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월 9일 ‘제22회 미래를 이끌어갈 여성 지도자상(미지상)’을 수상했다. 그는 “계속해서 여성폭력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며 “전문성을 더 갖추고,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길러 여성폭력 근절과 피해자 보호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다음은 전 계장과의 일문일답.
- 현장에서 가장 보람을 느꼈을 때는 언제인가.
“성폭력은 범죄특성상 물적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아 유죄 판결을 위해서는 피해진술의 신빙성이 중요하다. 과거 성폭력 피해자 보호 업무를 담당했을 때, 이를 위한 조사 환경 마련과 조사기법 개발, 수사과정에서의 2차 피해 예방을 위한 ‘표준조사모델’ 개발 등을 마음 담아 했었다. 주로 정책수립 업무를 맡다 보니 개별 피해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줬다고 체감할 수 있는 기회는 적다. 다만 그동안 진행한 업무들이 쌓여 여성폭력 피해자가 덜 상처받고, 가해자가 정당한 처벌을 받는데 일조했기 바란다.”
- 여성폭력 분야에서 일을 시작한 2014년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여성폭력에 대한 인식과 감수성이 많이 변화했다고 보는가. 피해자 보호는 10년 전보다 개선됐나.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감수성에서 많은 변화를 느낀다. 적어도 여성청소년기능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2차 피해라는 개념에 익숙하고, 언행에 조심한다.
여성청소년기능도 2014년과 비교했을 때 크게 확대됐다. 일선 경찰서에도 여성청소년수사팀이라는 별도의 수사팀이 생겼고, 수사뿐 아니라 가정폭력과 스토킹 피해자의 사후관리를 담당하는 경찰관들도 생겼다. 경찰청도 1개과(여성청소년과)에서 3개과(여성안전기획과·청소년보호과·여성청소년수사과)로 확대됐다. 경찰 조직의 변화가 경찰 내 젠더 감수성과 피해자 보호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 교제폭력에 대한 명확한 법적 정의가 부재하다. 법적 정의가 필요한 이유는.
“외국의 입법례를 살펴보면 친밀한 파트너 폭력 등으로 가정폭력과 교제폭력이 함께 포섭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는 법률혼 중심의 배우자 개념이 공고해 교제관계의 정의를 더 어렵게 하는 측면이 있다.
법적 정의의 필요성은 스토킹처벌법 제정 이후 변화를 보면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스토킹처벌법이 2021년 제정, 시행된 이후 스토킹신고가 급증했다. 원하지 않는 연락과 접근이 범죄이며, 중대한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범죄라는 인식도 확산됐다. 처벌과 접근금지‧유치 등 선제적인 피해자 보호조치가 가능해졌을 뿐 아니라 피해자 지원 인프라도 확충됐다. 이처럼 법적 정의는 교제폭력에 대한 사회 인식의 변화와 범죄 근절, 피해자 보호 강화를 위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
- 교제폭력 관련 법이 부재해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이 있는가.
“교제폭력은 각 행위유형이 대부분 범죄로 정의돼 있기 때문에 처벌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관계의 특수성(보복에 대한 우려·가해자의 변화에 대한 기대·양가적 감정 등)으로 피해자가 적극적인 처벌의사를 밝히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다. 가정폭력과 스토킹처럼 재발방지 혹은 피해자 보호를 위해 접근금지나 유치 등의 보호조치를 할 수 있는 법적근거도 없다. 이에 피해자가 신고를 했다가도 취소하거나 사건처리를 원하지 않는 경우, 경찰이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해도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는 어려움이 있다.”
- 교제폭력을 막기 위해 기존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보는가 아니면 별도의 특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보는가. 또 입법 과정에서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조항이 있다면.
“교제폭력 관련 법은 별도의 특례법을 제정하는 방안과 가정폭력처벌법, 스토킹처벌법을 각각 개정하는 방안 등 3가지 형태로 발의돼 있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특별법 형태로 제정하면 피해자 보호에 사각지대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경찰 입장에서도 법 적용과 해석에 혼란과 어려움 겪을 수 있다. 이는 결국 피해자 보호에 걸림돌이 된다. 궁극적으로는 여성폭력에 대한 통합형태의 처벌법이 제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 교제폭력으로 고통받는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것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에 신속한 입법이 가능하고, 보호조치를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은 가정폭력에도 영향을 미쳐 논쟁이 되는 부분이 많고, 보호조치 또한 스토킹처벌법보다 약하다. 이 때문에 교제폭력처벌특례법을 제정하거나 스토킹처벌법을 개정하는 방향이 현시점에서는 현실적인 방안이지 않을까 싶다.
입법 과정에서는 접근금지, 유치, 상담, 치료위탁 등 보호조치의 신설과 반의사불벌죄 폐지 등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다만 반의사불벌죄가 폐지되면 수사업무도 증가할 수밖에 없어 경찰 인력 증원 등의 인프라가 함께 뒷받침돼야 실효적인 피해자 보호가 가능할 것이다.”
- 입법적 부분 외에도 교제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우리 사회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한 예방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다. 현재 경찰의 교제폭력 정책들은 피해 신고 이후의 재발 방지와 피해자 안전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첫 신고에서 사망에 이르는 사건도 많고, 신고가 반복됨에도 위험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경미한 폭력뿐 아니라 통제행위 등도 강력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또한 10대 청소년이나 60대 이상 노년층에서의 교제폭력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대상별로 다각화된 홍보와 인식개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