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두루미 사생활 직접 엿볼까… 순천만으로 떠나는 탐조여행
인간과 자연의 신뢰가 만든 겨울 철새 탐조 천국, 국내외 탐조객 감탄
어느덧 겨울이 막바지다. 한가롭게 노는 철새떼를 보면서 추위를 즐기는 것도 매력이다.
마지막 겨울의 정취를 느끼기 위한 곳으로 전남 순천만은 제격이다.
순천만은 흑두루미와 큰고니, 노랑부리저어새, 흰기러기 등 국내 희귀멸종위기 철새들이 곧 먼 길을 떠날 채비에 한창이다.
이른 아침이면 그윽한 물안개와 하얀 서리꽃이 내려앉아 마치 동화 속 세계에 들어온 듯 환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탐조(探鳥)는 새를 관찰하며 자연과 생명의 신비를 깨달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올 겨울 순천만을 찾은 흑두루미는 7천606마리나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탐조거리도 700m, 500m, 300m, 80m에서 최근 20m까지 가까워졌다. 이 곳에서 큰 고니, 노랑부리저어새 등 다양한 철새를 관찰할 수 있다.
흑두루미와 겨울 철새가 머리 위로 비상하는 경관을 감상하고, 갈대 숲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탐조를 하다 보면 자연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순천만을 따라 걸을 수 있는 남파랑길은 전체적으로 길이 평탄해 노인과 아이들이 걷기에도 부담이 없어 가족 나들이에 제격이다.
환경부는 지난 2일 멸종위기야생생물로 흑두루미를 지정했다. 흑두루미는 천연기념물 228호이자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절멸가능성’이 높은 ‘취약’(VU) 등급으로 지정돼 있다.
순천만 겨울이면 흑두루미 등 다양한 철새 찾아
순천만이 겨울 철새의 천국이 되기까지는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 초반 국내 마지막 남아 있는 흑두루미 월동지인 순천만은 식당과 펜션 난립, 무분별한 낚싯배 운항, 주변 농경지 출입 등 서식지가 훼손됐었다.
이로 인해 흑두루미는 일본 이즈미로 몰려들었다.
지난 2006년 순천만 흑두루미는 167마리에 불과했다.
당시 노관규 순천시장은 이 땅의 주인이었던 생명들을 다시 본래의 터전인 순천만으로 불러오는 것이 인간도 살 수 있는 길이라는 철학으로, 순천만 습지 복원을 통한 원시적인 생태관광지 조성을 추진했다.
지속가능한 생태 보전을 위해 △순천만 인근 환경저해시설 철거 △흑두루미 전선 충돌 사고 예방을 위한 전봇대 282개 철거 △흑두루미 영농단 구성 및 친환경 농업 추진 △철새 보호를 위한 서식지 갈대 울타리를 설치했다.
그 결과 순천만의 자연성이 회복되면서 흑두루미 개체수는 급증했다.
2006년 167마리에서 2008년 344마리, 2015년 1천410마리, 2024년에는 7천606마리로 증가하며 순천만은 전 세계 흑두루미 개체수의 절반이 월동하는 주요 서식지로 변모했다.
흑두루미 뿐만 아니라 큰고니, 노랑부리저어새, 흰기러기 등 국내 희귀멸종위기 겨울 철새 등 100여종, 5만여마리 철새가 찾는 낙원이 되고 있다.
이는 순천만 습지 복원을 통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태철학의 성과로, 순천만이 멸종위기 겨울 철새 탐조 성지로 자리잡는데 기여하고 있다.
국제두루미재단(International Crane Foundation) 임원들은 순천시의 생태철학과 순천만의 보전 사례를 전 세계적으로 공유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최근 직접 방문해 이를 확인했다.
순천만 남파랑길 걷기 코스…환상 그 자체
순천만 남파랑길은 코리아둘레길 중 남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구간으로, 갈대밭과 갯벌, 바다와 산 등 다양한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도보 여행의 명소다.
아름다운 남도의 풍광이 펼쳐진 남파랑길은 가는 길 내내 수많은 생물이 사는 갯벌과 탁 트인 바다가 보여 전혀 힘들거나 지루하지 않다.
뻘배를 타고 조개를 캐러 가는 어르신들의 모습, 하늘을 가득 메우며 군무를 펼치는 가창오리 떼, 사각거리는 갈대소리, 감성을 자극하는 석양의 풍경까지 남파랑길은 단순한 산책로를 넘어선 인생의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거억거억’하며 우는 큰고니, ‘끄어억 끄어억’ 울음소리를 내는 흑두루미 소리와 함께 둘레길을 느긋한 마음으로 걸으며 철새를 관찰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간혹 사람 소리에 놀라 ‘푸르륵’거리며 하늘로 날아 오르는 오리떼의 모습은 장관이다. 사람이 가까이 다가와도 길가에 앉아서 먹이인 물고기를 챌 기회를 엿보는 이름 모를 철새를 바라보는 것도 색다른 감동이다.
가까이서 휴대폰으로 또렷한 철새 모습을 사진으로도 남길 수 있다.
생태 가치 기반으로 문화와 경제 융합해 지속가능한 발전 전략
흑두루미 덕분에 순천을 찾는 관광객도 늘었다. 2006년 13만명에 불과했던 관광객은 매 주말마다 1만명 이상이 순천만습지를 방문하고 있다.
순천시는 올해도 흑두루미 서식지 확대를 위해 안풍들 지역의 전봇대 지중화 및 무논 조성 사업을 추진한다.
국가정원과 순천만 사이 농경지 35ha 매입해 순천만과 도심을 잇는 거대한 생태축을 조성한다. 이를 통해 순천만의 원시성을 도심 안쪽으로 확장한다는 전략이다.
오는 5월에는 세계습지의 날과 세계철새의 날을 기념해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파트너십(EAAFP)과 국제 워크숍을 개최할 예정이다.
11월에는 순천만 흑두루미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해 순천이 보유한 멸종위기종 서식지 복원 사례를 전 세계에 공유할 계획이다.
순천시는 인간과 자연이 동등한 생태계의 구성원이라는 생태철학이 철새의 천국이 만들어진 만큼 앞으로도 생태 가치를 기반으로 문화와 경제를 융합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실현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