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나는 중증 장애 딸이 만든 정치인” 강북구의회 최미경 의원
[내 삶을 바꾸는 풀뿌리 생활정치] ④최미경 서울 강북구의원(더불어민주당) 강북구장애인부모회, 발달장애인 마을 일터 '함께웃는가게대표' 이끌어 “정치는 사람의 삶을 돕는 도구”, ‘따뜻한’ 생활 정치 실현 젠더거버넌스 기반, 성평등정책 앞장서
[편집자주] 지역주민을 대변해 풀뿌리 현장에서 뛰면서 우리 삶을 바꾸는 정책을 만드는 지방의원들을 소개합니다. 정책과 변화의 이면에 숨겨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서울 강북구의회 최미경 의원(57)은 서울대 약대를 졸업했지만 재선 기초의원으로서 정치의 길을 걷고 있다. 그의 정치 여정은 중증 장애를 가진 딸을 돌보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최 의원은 결혼 후 1994년과 1995년에 연년생 남매를 얻었다. 둘째 딸이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데 독립보행이 안 됐다. “딸이 나아질 수만 있다면 내 시간, 내 노력, 집 한 채를 다 넣어도 아깝지 않았죠.” 그는 딸의 장애를 개선하기 위해 물리치료와 재활에 매달리며 10년간 온 힘을 쏟았다.
하지만 딸의 장애는 나아지지 않았다. 최 의원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현실을 개선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장애 부모로서 자신과 같은 부모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딸은 서른이 다 됐지만 여전히 언어소통이 불가능하고 휠체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중증 지적장애와 중증 뇌병변이라는 중복 장애를 가지고 있죠”
장애인 인권 실현 위한 지역활동가
최악의 경우 장애아 돌봄 문제로 가정이 파탄 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최의원은 장애인 복지가 잘 돼 있는 다른 나라로 눈을 돌렸다. “학교 다닐 때 운동권은 아니었는데, 자기 권리를 스스로 주장할 수도 없는 장애 자녀의 권리를 대변하기 위해 부모운동을 하게 됐어요”
그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장애아동 무상보육 운동, 2003년에는 특수교육 보조원 도입을 위한 투쟁도 함께 했다. 2004년 초등학교에 입학한 둘째 딸은 그런 제도의 수혜자가 됐다. “남편 일로 가족이 외국에 몇 년을 살다가 2008년에 돌아왔는데, 장애 부모들의 엄청난 투쟁으로 장애인 활동 보조인 제도가 도입됐어요”
하지만 24시간 전적으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딸에게 월 90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는 지인의 권유로 주 2회 약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활동 보조인의 한 달 월급을 충당할 수 있었다. “그렇게 확보된 시간으로 장애인 부모운동, 그다음엔 지역사회 운동을 할 수 있게 됐어요”
그는 약 10년간 장애인인권네트워크 소속 장애인 인권 강사로도 활동했다. 발달장애인이 일하고 배우는 재사용 가게인 협동조합 ‘함께웃는가게’의 대표로 5년간 일했다. 강북구장애인부모회 회장, 강북구사회적경제협의회 부회장으로서 풀뿌리 민간단체들의 모임인 (사)강북마을과 연대하며 장애인들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관계망과 지지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노력했다.
정치는 사람의 삶을 돕는 도구
10년간 열정적인 지역활동으로 지역사회의 신뢰를 얻은 그는 2018년 비례대표로 추천받아 강북구의회에 입성했다. 복지와 마을 현장의 전문가로 의정활동을 펼쳐온 그는 2022년에도 큰 어려움 없이 재선에 성공했다. “저도 열심히 했지만, 지역위원장인 천준호 의원님이 많이 도와주신 덕분이죠”
그에게 정치는 ‘사람의 삶을 돕는 도구’다. 초선 의원 시절 그는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 설치, 농인 쉼터·수화통역센터 이전, 장애인가족지원센터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9대에는 발달장애인커리어플러스센터가 구청장 공약에 반영되도록 해 현재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그가 장애인 정책에만 치중한 것은 아니다. “장애인 정책은 구정의 극히 일부죠. 의회에 들어가 처음으로 발의한 조례가 장기요양요원 처우개선 및 지위향상에 관한 조례에요. 장애인뿐 아니라 모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경청해 정책에 반영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는 참전 유공자‧사회복지사‧아동·청소년 등을 대변하는 의정활동도 열심히 해왔다.
또한 지역 문화예술계와 상권의 어려움을 청취해 문화예술진흥조례를 제정했고 골목형 상점가 지정에 관한 조례 개정도 이끌어냈다. 전국 최초로 ‘공중케이블 정비지원 조례’를 제정해 강북구 정책이 전국적으로 모범이 되는 사례를 만들기도 했다.
젠더거버넌스 활동, 성평등정책 내실화에 앞장
그는 여성친화도시 지정과 양성평등기금사업 확대를 이끌며 강북구 양성평등정책 내실화에도 앞장섰다. “8대 전반기에는 서울시 젠더거버넌스 사업에 강북구 여성단체 활동가들이 참여해 구 사업의 부족함을 메웠어요. 하지만 오세훈 시장 취임 이후 성평등 정책이 후퇴해 강북구 자체 사업 확대가 절실했죠. 예산 확대와 함께 사업 내용이 풍성해질 수 있도록 지원했어요” 2017년부터 젠더거버넌스 활동을 같이해온 강북구의 여성단체 활동가들은 그의 든든한 지지기반이다. 최의원은 성평등 실현을 위해 전국여성지방의원네트워크 사무총장 역할도 맡고 있다.
최의원의 정치 활동에 대해 가족은 얼마나 지지하고 지원하는지 궁금했다. “주말도 없이 아침에 나갔다 밤중에 들어오니 남편의 불만이 많죠. 정치 시작한 이후 딸래미 아침밥이 제일 걱정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남편이 1교시 수업을 빼 아침밥을 챙기고, 온라인 장보기도 하면서 자급자족하더라고요. 큰아들과 분담해 둘째 딸 산책도 시켜주고요” 남편은 대학에서 교수로 일한다. “저는 설거지만 해도 되는 수준이라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마지막으로 최의원의 정치 목표와 비전을 물었다. “지역 주민들이 삶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해결하고, 소외된 계층의 삶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만드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그 역할로 부르심을 받으면 일하는 것이고, 그 소임을 다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계획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