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얼굴 가려주는 딥페이크 성범죄 [이은의 변호사의 시선]

대한민국 경찰 수사 현주소

2024-12-20     이은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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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년간 ‘딥페이크’(인공지능 영상 합성 기술)는 빠르게 발전했다. 그에 따른 수혜가 컸지만, 딥페이크 성범죄와 같은 부작용도 몸집을 함께 불렸다. 피해를 직접 겪거나 우려했던 경험이 없는 기성세대에겐 딥페이크 성범죄를 ‘안다’는 착각이 있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고, 적용해야 하는 곳에서 딥페이크 성범죄가 피해자들에게 남기는 상처와 후유증에 대한 이해는 턱없이 부족하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범죄인데, 피해자들의 입장에 서보면 수사현장에서부터 ‘강 건너 불구경’ 같은 형국이다. 참담한 피해 위에서 비명을 지르는데, 당장 수사기관에서부터 저만치 서서 팔짱끼고 구경하며 ‘넌 아프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라고 하는 말만 반복되는 현실이다.      

딥페이크 성범죄가 계속해서 현실세계를 심각하게 침범하고 위협했지만 상당기간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2024년, 소위 ‘서울대 N번방 사건’이 이슈가 되면서야 사람들에게 그나마 이 범죄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이 사건에서도 피해자들이 분통을 터트린 지점에는 범죄는 존재하는데 가해자를 제지하고 피해자의 고통을 덜어줄 경찰력의 부재였다. 이 사건 이후 딥페이크 성범죄가 그나마 수면 위로 올라올 때마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고도화된 범죄를 수사하는 방법이나 기술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경찰력의 부재로 인해 맞닥드리는 좌절은 경찰이 딥페이크 성범죄를 비롯하여 디지털성범죄 사건들에 기존의 수사원친이나  수사방식을 답습하는데서 시작되고, 증폭된다. 경찰은 법이 그런 걸 또는 법이 없는 걸 어떻게 하느냐고 말한다. 그런데 관련 법의 부재나 결핍에 있어서 경찰이 마냥 자유로울 수 있을까? 경찰은 일선에서 제일 먼저 문제점을 목격하고 경험하는 사법주체다. 변화하는 사회에서 하루가 다르게 발생하는 관련 범죄의 수사와 피해자 보호에 필요한 지점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하여 목소리를 내야 할 의무가 있다. 안타깝게도 자기 사건에 관심갖는 피해자를 귀찮아하며 기계적으로 업무를 반복하기만 해서는, 어떠한 이해도 고민도 대안도 요원하다.      

디지털 성범죄가 갖는 큰 특징에는 ‘습’이 있다. 수많은 범죄자들이 한번 어떤 범죄에 발을 들이고 난 후 같은 범죄를 저지를 때 그 사람에게 그런 행위가 습관임을 일컬을 때 쓰는 표현이다.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 대게가 특정한 경우에 특별한 의도로 발생했거나 우발적으로 일회성 발생에 그치지 않는다. 가령 피해자가 소위 ‘몰카’ 피해를 입어 신고하고 가해자가 검거된 사건에서, 그 피해자는 대개 첫 피해자가 아니라 그 가해자의 그 무렵 마지막 피해자다. 가해자의 휴대폰이나 노트북 등에서 숨겨져 있던 셀 수 없이 많은 피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기 일쑤다. 자기도 모르고 세상도 몰랐던 사이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이다. 그때부터 피해자의 삶은 지옥이 된다. 직접 신고나 고소되지 않았다고 해서 경찰이 가해자의 여죄를 발견하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사를 확대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발견된 범죄의 피해자들에게 당신이 피해자임을 알려준다.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뿐만이 아니라, 이때부터 얼마나 부실하고 불안한 사회에 사는지를 체험하게 된다.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 대게가 특정한 경우에 특별한 의도로 발생했거나 우발적으로 일회성 발생에 그치지 않는다. ⓒpixabay

그러한 피해자들의 입장에서는 누군가의 고소나 신고를 통해 그제서야 자신이 입은 피해를 알게 되었다고 해서 피해가 없거나 덜해질 문제가 아니다. 당연히 자기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자신이 어떤 경위로 그런 범죄를 당하게 된 것인지, 현재 상황이 무엇인지, 어떤 대응과 조치를 해야 하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시작점에는 가해자가 누구인지가 있다. 하지만 자다가 날벼락을 맞는 형국으로 당혹스런 범죄 피해를 전달받게 된 피해자들은 누가 나에게 그런 짓을 저질렀냐는 질문부터 가로막힌다. 경찰은 가해자의 인권과 규정을 내세워 피해자에게 가해자가 누구인지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수사단계에서 피해자가 가해자가 누구인지, 대체 무슨 촬영물이나 딥페이크물 같은 것이 있는지를 알려면, 변호사를 선임해서 ‘성명불상’의 가해자를 대상으로 고소를 하고 그런 사건이 검찰에 간 후 열람복사신청 등을 통해 ‘허락’이 이루어진 후에야 가능하다. 특별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이런 복잡하고 단단한 벽에 부딪혀 또 상처입는다. 이 벽은 가해자가 만든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경찰이 피해자들 앞에 둔 벽이다.

이쯤되면 자기가 입은 피해를 알고 고소에 나설 수 있었던 피해자가 운이 좋다고 할 지경이된다. 특히 딥페이크 범죄의 경우 고소에 나선 피해자보다 가해자 수사 중 밝혀진 여죄를 통해 발견되는 피해자가 훨씬 많다. 그런 피해자들은 찍은 적도 없는 촬영물에 자기 얼굴이 붙여져 성적대상이 된 사건에서, 정작 가해자의 얼굴이나 이름은 알 수도 없다. 실제 촬영물이 아니니 누군지를 유추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뭘 해야 할지도 막막하지만, 내가 피해자임이 분명한 사건에서 왜 국가가 가해자의 얼굴은 가려주는지는 훨씬 답답하다.

그런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질문이라도 할 수 있는 대상은 결국 또 경찰이다. 문제는 그런 피해자들을 귀찮아하며 피해자들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기까지 하는 일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심지어 담당수사관에게 당연한 질문을 하다가 자신에게 자격지심이 있냐는 말을 퍼붓는 일도 목격한다. 이런 비판을 하면 경찰에서는 규정을 탓하고 특정 경찰의 문제일 뿐이라고 변명하겠지만, 규정이 온당하지 않다면 지속적으로 그에 대한 목소리를 내야 할 일이고, 그렇게 미비한 규정으로 복잡하게 얽힌 사건들을 처리해야 하는 부서에 충분한 교육을 실시하든 적확한 모니터링을 통해 인력 관리를 해야 할 일이다.

문제는 경찰이 그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설사 노력하고 있더라도 대중이 이를 전혀 체감할 수 없는 수준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피해자 측이 가해자만 대응해도 모자랄 시간에, 역량 부족하고 태도 불량한 경찰 개인들에 대한 부담까지 져야 하는데, 그마나 할 수 있는 대처라고 해봐야 청문감사관실 정도가 전부다. 그런 피해와 손실은 배상받을 길도 없다.  

성범죄 관련 법과 수사 현실은 갈 길이 멀다. 딥페이크 성범죄와 같은 디지털 성범죄는 훨씬 더 문제가 심각하다. 대한민국에서 성범죄 피해자들은 여전히 가해자와도 싸우랴 가해자 얼굴 가려주는 업무에 급급해 자기 사건 궁금해 하는 피해자 에게 날 세우는 경찰하고까지 싸우랴 땀과 눈물로 범벅인 중이다. 그래서 피해자의 변호사로 사는 건 고달프다. 최근에도 고소장을 써야 할 시간에 강원경찰청에 진정서를 써 보냈고, 실상 내일도 고소장이나 의견서를 쓸 시간을 쪼개 다른 어딘가에 진정서를 쓰는 일상을 이어갈 것이다. 경찰이 현행법을 어겨가며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오늘도 사건 현장에서 피해자들은 가해자 얼굴 가려주기 급급한 사법과 마주한다. 그 와중에 자기 사건 궁금해 하는 이유로 날 세우는 경찰에게까지 베여 피 흘리는 형국이 되서는 안되지 않겠나.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멈춰선 법과 사법기관을 바라보며 간곡히 말을 건내본다. 

이은의 변호사. ⓒ북스코프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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