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피해자다움 ‘족쇄’ 부수고 피해자 곁에 선 연대자 김진주씨

[인터뷰] ‘부산 돌려차기’ 피해자 김진주씨 책 출판 이어 범죄피해자 커뮤니티 개설 피해자 위한 온라인 교육 플랫폼 제작도 “범죄 피해자, 재판 당사자지만 여전히 소외… 재판 정보 제공하고 피해자에 적극 질문해야”

2024-11-21     김세원 기자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로 알려진 김진주(가명)씨가 최근 부산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세원 기자

“밝은 게 이상한가요? 처음에 저를 봤을 때 이상하게 보는 분들도 있었어요. 그래도 ‘밝으셔서 다행이다’라고 말씀하시는 데 밝은 게 이상한 건지도 몰랐어요. 마찬가지로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것도 제 신변 문제 외에도 피해자에 대한 이미지를 주지 않기 위한 것도 있어요.”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로 알려진 김진주(가명)씨의 말이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은 30대 남성이 혼자 귀가하던 20대 여성에게 무차별 폭행을 가해 의식을 잃게 만든 사건이다. 당초 가해자는 살인미수 혐의로만 기소돼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김씨는 포기하지 않고 사건과 재판 기록을 샅샅이 파헤치고, 범죄 정황을 입증하기 위해 제보자들과 접촉했다. 또 추가 DNA 검사도 요청했다. 결국 유전자 감식이 이뤄져 바지 안쪽에서 가해자 DNA가 나왔으며 검찰은 ‘강간 등 살인미수’로 공소장을 변경했다. 가해자는 지난해 9월 대법원에서 징역 20년형을 확정받았으며, 지난달에는 가해자가 김씨에게 1억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확정됐다.

김씨는 범죄 피해자는 침묵해야 한다는 ‘피해자다움’의 굴레를 깨고 나온 인물이다. 김씨는 사건 발생 이후, 이를 공론화하기 위해 온라인 커뮤니티에 직접 글을 올렸으며, 언론사에 적극적으로 사건을 제보했다. 지난해 ‘대한민국 범죄피해자 커뮤니티’(KCC)를 개설한 데 이어 지난 2월에는 500일간의 투쟁을 진솔하게 기록한 저서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를 펴내기도 했다.

인터뷰를 위해 부산에서 만난 김씨는 시종일관 유쾌하고 밝았다. 기자의 사진 촬영 요청에 김씨는 장난스럽게 두 손으로 브이(V)자로 만들어 보이는가 하면 자신의 네일을 보여주기도 했다.

“열심히 네일도 하고, 원피스도 입고 다녀요. 평소에는 안꾸미지만 재판에 가거나 피해자분을 만날 때 ‘꾸꾸’(꾸미고 꾸민)로 다녀요. 일부러 최대한 표현하면서 다니려고 해요.”

더 이상 피해자로만 머물지 않는 김씨는 범죄 피해자들과 연대하고, 이들을 지원하며 누구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인터뷰 당일에도 김씨는 범죄 피해자 유가족들, 활동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이제 내년 말 공개를 목표로 범죄 피해자를 위한 온라인 교육 플랫폼 ‘매너스’(Manners)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음은 김진주씨와 나눈 일문일답.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김진주 지음, 얼룩소 펴냄 ⓒ얼룩소

- 보복협박 재판은 어떻게 되가고 있는가.

“DNA처럼 핵심적인 증거가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가해자가) 수감자 증언은 다 거짓이라는 식으로 계속 주장하고 있다. 2023년부터 시작했는데 1심만 1~2년 걸릴 것 같다. 증인도 15명이나 부르려고 하는데, 이 자체가 사실 방조라는 생각이 든다. 몇 번이나 가해를 당해야 끝날지 모르는 ‘N차 가해’를 당하고 있다.”

- 평범한 시민이 법정 싸움을 몇 년 간 이어간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처음에는 다들 의지가 넘친다. 하지만 1년도 안 돼서 합의로 끝내거나, 재판은 알아서 진행되게 놔두고 본업에 집중하는 분들도 있다. 회사에 계속 상주해야 하는데 재판 때문에 매번 나올 수도 없는 일 아닌가. 피고인의 공판기일도 (피고인) 변호사가 특정한 날 안된다고 말할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아무 권한이 없다. 우리의 의견은 한 번도 묻지 않는다. 어디에도 피해자의 편이 없는 상황이다. 또 만약 피고인이 부산 사람이고, 피해자가 서울 사람이라면 서울에서 부산으로 와야 한다. 이마저도 피고인 중심인 것이다. 

많은 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들 당황해한다. 또 처음 경험하시는 분들은 ‘이렇게까지 비협조적인지 몰랐다’, ‘왜 이렇게까지 피해자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저는 이제 드라마나 영화도 잘 안 본다. (미디어에서) 비치는 모습들은 환상에 가깝고 너무 이질적이다. 그런 변호사와 검사, 판사는 찾아볼 수 없다.”

-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스스로 사건을 공론화했다.

“‘어떻게 그렇게 용기 있게 하셨나요?’라고 DM(다이렉트 메시지)이 온다. 하지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법부는 의문을 던지고, 답을 듣고 싶은데 아무도 해주지 않으니 무조건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저는 용기 있는 사람도 아니고, 이것(공론화)만이 정답도 아니다. 언론사에 연락했을 때도 대부분 답이 없거나 자료가 있을 때 한 번 더 연락을 달라고 했다. 수많은 곳에서 거절당하고 나니 이야기할 수 있는 루트가 없어서 그곳(온라인 커뮤니티)을 선택했던 것이다.”

- 공론화 이후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당시 법무부 장관)와 통화했다. 국회의원들도 사건에 관심을 보였는데 이후 피해자 권리에 변화가 있었다고 느끼는가.

“바뀌었다고들 한다. 많은 기자분이 요새 피해자분들도 목소리를 낸다고 말한다. 하지만 제가 목소리를 냈을 때도 (피해자의 권리 보장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변했다고 하더라도 아직 갈 길이 멀다. 갈 길이 멀기 때문에 변화했다 하더라도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다.”

2024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강연한 김진주씨. ⓒ김진주씨 인스타그램 갈무리

- 피해자 연대 활동에 나서게 된 계기가 있는가. 

“20대 젊은 여성이 봐도 상식적이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국가는 나서지 않으려고 하고, 공론화가 되기 전까지 신경 쓰지 않으려는 경찰들의 무책임한 모습을 보고 ‘나라도 해야겠다’고 느꼈다. 시민의 한 명으로 ‘나라도 해야겠다’라는 마음이었지 사명감을 갖고 한 것은 아니었다. 또 두 번째 공판 때 (방청 연대 활동을 하는 반성폭력 활동가) D님이 오셨는데, 어떻게 보면 D님 때문에 연대 활동을 하게 됐다. 이전에는 모르는 타인이 아무 목적 없이 나에게 다가온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D님으로 그런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국가가 안 하니 나라도 해야지’라는 심경으로 돕는 것 같다.”

- 연락이 오면 피해자들과 직접 만나기도 하는가.

“(사안이) 급한 분들은 만나서 이야기해야 할 때가 있다. 특수강력범죄 피해자분들이 많다. 유가족분들에게는 간단하게 (형사소송) 절차를 알려주는 정도다. 별거 아닌데도 이런 사람이 있다는 존재 자체를 좋아하신다. 국가가 얼마나 미진하면 그런 걸까. 돈과 인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센터나 단체도 생각보다 많다. 사회복지사나 친절한 서비스를 바라는 것도 아닌데 이조차 하지 않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

김진주씨가 지난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부산지법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비공개로 증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범죄 피해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 형사절차에서 어떤 부분이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일단 재판에 대한 정보를 재판 당사자들이 알 수 있어야 한다. 가령 ‘가해자가 혐의를 인정하고 합의를 원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도는 수사나 재판에 지장을 주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은가. 이런 대략적인 정보는 피해자에게 통지돼야 한다. 피해자가 살아있다는 이유로 형량이 가벼워지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무사히 회복을 한 것은 피해자인데 피고인에게 유리한 양형기준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또 판결문이 자동으로 배송돼야 한다. 대부분의 피해자는 재판에 참여하지 않으며, 재판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당사자이기 때문에 사건번호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통지 정도는 해줘야 한다. 피해자 관련 지원금 신청도 마찬가지다. 유선으로 신청해서, 면담 날짜를 잡아야 하는데 그 기간이 너무 길다 보니 즉각적인 피해회복이 안 되는 것이다. 각종 정보는 정부24에 들어가 클릭만 하면 신청할 수 있는데 왜 피해자와 관련된 것만 구시대적으로 하는지 모르겠다. 피해자 원스톱 지원이라 하지만 사실 피해자분들로 하여금 지원을 안 받게 만드는 ‘스톱 제도’가 아닌가.

아울러 피해자에게 묻지 않는다. 피해자분들이 이야기하기 어려워할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묻지 않는다. 당사자인 피해자에게 묻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수많은 제도의 문제점은 결국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와 똑같은 일을 겪었더라도 환경, 성격에 따라 편차가 있다. 이를 데이터화하지 않으면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고 예방할 수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여러 단체들에 기대하는 부분도 있었고, 변호사와 검사는 다 내 편이라 생각했지만 그런 기대와 환상이 사라졌다. 언젠가부터 내가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예비창업 패키지를 통해 범죄 피해자를 위한 온라인 교육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 많은 분에게 기초적인 정보가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

- 플랫폼에 대해 더 설명을 해달라. 

“궁극적인 목표는 범죄 피해자분들의 사회 복귀다. 자기계발이나 취미와 관련된 플랫폼들은 많다. 범죄 피해자 교육 플랫폼도 결국 똑같다. 지금은 범죄 피해자 교육 플랫폼이지만 언젠가는 사회 교육 플랫폼이 될 수도 있다. 가령 아이를 키우는 부모 중 성교육을 할 수 있는 부모들이 많이 없지 않은가. 우리 사회는 성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데 사실 중요한 것은 하루를 어떻게 가치있게 사느냐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가르쳐 주는 어른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만들고도 있다. 다시 말해, 범죄 피해자 교육, 사회 교육 플랫폼이 될 수 있다. 로고도 직접 만들었다. 또 (피해자가) 숨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범죄 피해와 연결해서 마라톤을 연다던가, 구급함을 만들어서 일반인이 구급함을 샀는데 그 안에 범죄 피해 예방책이 들어있다던가 등 다양하게 생각하고 있다.”

- 마지막으로 범죄 피해자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를 지지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용기를 낸 것이다. 굳이 뭔가를 더 하려고 애쓰기보다는 현재에 충실하셨으면 좋겠다.”

* 김진주씨가 제안하는 범죄 피해자의 권리보호를 위한 개선방안

1. 피의자의 신상정보 제공 및 재판기록 열람·복사 권리 보장 등 피해자에 대한 정보 제공 강화.

2. 초범, 반성 여부, 공탁 등 범죄사실과 관련 없는 양형기준의 폐지.

3. 재판 결과가 나오면 재판 결과문을 피해자에게 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