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성폭력 피해 말하기까지 17년 걸려... 쉬쉬하다 공소시효 끝난다

국회서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토론회 열려 친족성폭력 범죄 공소시효 최장 10년 피해생존자 10명 중 4명 14세 이상 상담 받을 때 공소시효 이미 도과

2024-11-18     신다인 기자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위한 토론회’에서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 가족구성원연구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등 참석자들은 토론회 시작에 앞서 한목소리로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하라”고 외쳤다.ⓒ신다인 기자

“친족성폭력 피해생존자들은 피해 사실을 말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서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 동시에 피해사실을 더 빨리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박아름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위한 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 가족구성원연구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등 참석자들은 토론회 시작에 앞서 한목소리로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하라”고 외쳤다.

앞서 2019년부터 친족성폭력 피해생존자들은 국회 앞, 광화문에서 친족성폭력의 심각성을 사회에 알리며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요구해왔다.

친족성폭력 경험자이기도 한 김영서 상담심리사는 “친족성폭력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 폐지를 말하는 이 자리에 오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친족성폭력 공소시효가 폐지된다면 친족성폭력 피해를 기억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을 갖고, 고소여부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아름 활동가는 “지난 3년간 친족성폭력 피해상담은 242명이었고, 이중 74명이 공소시효 도과된 상태에서 피해상담을 하러 왔다”고 했다. 공소시효 도과는 범죄 발생 이후 일정기간이 지나서 재판을 청구할 수 없다는 뜻이다.

현행법상 친족성폭력 공소시효는 최장 10년이다. DNA 증거 등 죄를 증명할 수 있는 과학적 증거가 있을 때 10년 연장해 20년까지 늘어날 수 있다. 단, 2011년 관련법이 개정돼 사건 당시 피해자가 13세 미만인 경우에 한 해 공소시효가 폐지됐다. 나머지의 경우 피해자가 성인이 된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면 공소시효가 소멸한다.

하지만 박 활동가는 현행법으로는 법적 대응을 원하는 친족성폭력 생존피해자들의 욕구에 응답하기에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박 활동가는 “친족성폭력 피해생존자는 적어도 10명 중 4명이 14세 이상이므로 현행법상 공소시효가 적용된다. 또, 10명 중 3명은 피해 이후 상담 받기 전에 이미 공소시효가 도과했다”고 설명했다. 상담을 받은 친족성폭력 피해생존자 중 24.7%가 상담을 받기까지 걸린 기간이 17년 이상이었다.

공폐단단 활동가가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피켓을 들고 있다. ⓒ푸른나비

박인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는 “가해자는 반성하기보다는 처벌받지 않으려고 공소시효가 만료되기까지 피해자를 주변의 가족과 함께 압박하는 등 2차 피해를 가할 가능성이 크다. 언제든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스스로 반성하고 피해자의 피해회복을 위해 노력할 수 있을 것”이라며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필요성을 말했다.

헌법재판소는 공소시효제도 이유로 오랜 시간이 지나 증거가 사라져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려운 점, 범인이 범행에 대한 후회나 처벌에 대한 불안 등으로 처벌을 받은 것과 비슷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 오래 전의 범죄에 대한 수사나 재판의 필요함을 면제함으로써 국가의 부담의 경감을 도보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김홍미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피해자가 침묵을 지키는 이유는 가해자에 대한 두려움만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자책이 결합한다”며 “비밀을 말하면 가족이 위험에 처한다거나 분해될 것이라는 혹은 모두가 피해자를 비난할 것이라는 식의 가해자의 시나리오가 여기서 작동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친족성폭력에 대한 침묵은 피해자에 한정되지 않는다. 피해자는 입으로 내뱉기 어렵지만 비언어적인 형태로 고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비가해자 가족구성원이나 주변인들은 이를 알아챌 수 있는 기회가 있고, 이는 곧 비밀에 대한 가해자의 기대와 통제력을 부수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및 연장, 피해자 지원 관련 개정안이 총 15개 발의됐지만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 됐다.

22대 국회에도 친족 성폭력 관련 발의는 이어지고 있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11월 28일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및 연장을 다룬 법안은 총 3개로,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