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기의 무기가 되는 글들] ‘딥페이크’ 이후의 교육
『N번방 이후, 교육을 말하다』
딥페이크 성착취 사태가 ‘터지고’ 누구나 쉽게 교육 탓을 한다. 그래서 교육 탓을 하기가 싫다. 강간이 ‘문화’가 되고, 딥페이크 성범죄가 ‘놀이’가 된 와중에 교육에만 화살을 돌리는 것은 공정치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교육 또한 사회가 배태하는 것이며, 우리가 대선 당시부터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천명한 정부의 기조 하에 있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딥페이크 범죄 피의자의 80% 이상이 10대라는 통계 앞에서, 우리는 다시 학교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학교가 딥페이크 성착취의 격전지이자 최전선이기 때문이다. 딥페이크 성범죄 자체는 유구한 강간 문화를 답습해왔다는 점에서 새롭지 않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말미암아 여성들의 얼굴과 신상정보처럼 취득하기 쉬운 데이터만 가지고도 쉽게 성착취물을 제작, 유포하는 단계라는 점에서 ‘딥페이크 포르노 대량 제작 사태’(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라는 진단은 옳다. 그래서 ‘지인 능욕’이라는 이름으로 주변 여성들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성착취물 제작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주체가 10대 남성이라는 것, 그래서 교사와 학생 같은 교실 속 여자들이 범죄 피해 타깃이 되었다는 점은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그 흔한 낙관도 비관도 없이.
책 『N번방 이후, 교육을 말하다』는 2020년 10월 출간됐다. 그해 3월 추적단불꽃의 보도로 N번방 사태가 이슈화된 지 7개월 만의 일이다. 당시에도 딥페이크 성착취 사태를 맞은 오늘처럼 똑같이 ‘교육의 실패’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상황이었다. 책은 어린이집‧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 교사, 대학 강사, 연구자, 시민 활동가인 20명의 저자들이 부문별로 팀을 나눠 벌인 도합 8회의 좌담과 각자의 글을 실었다. 지금 각자가 선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다.
이들이 입을 모아 얘기하는 것은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지나치게 성별화됐다는 점이다. 어린이집서부터 ‘남자는 파란색, 여자는 분홍색’이 디폴트가 되며, 남녀를 나눠 번호를 매긴다. 교과목마저 체육은 남성적, 미술‧음악은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것 등은 우리가 숨 쉬듯 체화하는 것들이다. 성욕마저도 성별화되어 다르게 다뤄진다. 여성의 성욕은 철저히 감춰야 하는 것인 한편, 남성의 성욕은 배출과 해소의 대상이다. 이것을 아이들은 가정과 학교, 각종 매체와 또래 집단을 통해 ‘자연스럽게’ 학습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페미니스트 교사의 페미니즘 교육은 ‘분투’가 된다. 고민을 함께 할 페미니스트 동료가 부재한 상태에서 페미니즘 교육은 교사 개인의 재량으로, 그것도 부단히 ‘백래시’를 의식한 자기 검열의 형태로 진행된다. 페미니즘 교육을 꿈꾸는 어린이집 교사 양정아는 말한다. ‘내가 실천해 온 페미니즘 교육은 이렇게 개인의 수업권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했던 것들 위주였고, 교육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활동이 아니었다.’(128쪽) 성 인권 교육 예산이 전액 삭감된 현실을 생각하며 상급 학교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평등 교육을 이어가려는 교사들은 ‘페미 교사’로 고립되지 않기 위해 학교에서 시킨 일을 더욱 열심히 해내는 ‘정상성 수행’ 마저 견디고 있다.
책의 장점은 ‘당위’가 아닌 ‘전략’에 방점을 둔다는 데 있다. 육하원칙 가운데 ‘어떻게’에 보다 주목한다고 볼 수 있다. 페미니스트 교사들은 학생들의 여성혐오나 성소수자 혐오를 맞닥뜨려 ‘교사’라는 이름의 위계를 작동시키는 일이 교육적인 일인지 때론 고뇌한다. 누구나의 경험이 증명하듯 교실이야말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공간이다. 개별 교사가 혐오적 행태를 바로 잡지 않으면, 가뜩이나 백래시적 성격의 ‘개소리’가 청소년들에게까지 널리 퍼져 있는 상황에서는 교사라는 권위를 가진 이의 개입이 필연적이다.
책에 나오는 페미니스트 교사들은 교사 혼자서는 어렵기 때문에 ‘분신술’의 개념으로 학내 인권 동아리를 만들어 교실 내 오피니언 리더들이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한다는 ‘비기’도 털어놨다. 전략을 도모하는 데는 혼자서 쓰는 ‘글’보다는 상대와 상호소통하며 아우르며 가는 ‘말’이 더 효과적이다. 그런 점에서 좌담 형태의 책이 갖는 장점이 있다.
교내 성폭력을 바로잡기 위해 목소리를 냈던 지혜복 교사가 교육청으로부터 해임 처분을 받은 현실을 상기해보면, ‘할 말 하는’ 교사들이 처한 위험은 하루 아침에 교육권을 박탈당할 정도로 직접적이다. 디지털 성폭력 가해‧피해자가 집단적으로 양산되는 곳이 교실이라는 자각이 있다면 성평등 교육은 이제 공론화를 넘어 의제화의 영역으로 넘어가야 한다.
‘교육의 실패’라는 말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지혜복 교사를 부당 해임 시킨 서울시교육청에, 성평등 도서를 폐기하는 도서관에, 성평등 교육을 후퇴시키는 교육부와 여성가족부에 조직적으로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페미니스트 교사, 학생, 학부모 같은 교내 주체들뿐 아니라 교외의 시민도 예외가 없다. 소라넷과 N번방, 딥페이크까지 일련의 디지털 성폭력을 몇몇 악마의 행각으로 눈감아 버리기에는, 우리가 가해와 피해의 스펙트럼이 모호한 방관의 세월을 함께 보내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