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성병관리소 건물 철거 위기···‘기지촌 미군 위안부’ 피해자, UN에 긴급진정서 제출
“성병관리소 철거는 피해자의 서사 지우는 행위”
경기도 동두천시가 옛 성병관리소 건물 철거를 추진하는 가운데. ‘기지촌 미군 위안부’ 피해자가 “성별관리소 철거는 피해자의 서사를 지우는 행위”라며 유엔 특별보고관에 긴급진정서를 제출했다.
동두천옛성병관리소철거저지를위한공동대책위원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지난 6일 피해자 김씨와(이하 피해자 등 진정인) 공동으로 유엔 인권이사회에 특별보고관들에게 긴급진정서(Urgent Appeal)를 접수했다고 8일 밝혔다.
피해자 등 진정인은 “이번 긴급진정은 유엔 인권이사회의 특별절차(Special Procedures)에 따른 진정”이라고 설명했다.
특별절차에 따른 진정은 특별보고관 등 독립적인 인권기구에게 인권침해 상황을 진정하고 개입을 요청하는 제도다. 유엔 특별보고관들은 진정서의 신뢰성을 심사하고, 질의 등을 통해 해당 사안을 조사하며, 의견표명 등 개입여부를 결정한다.
피해자 등 진정인들은 이번 긴급진정서에서 ‘기지촌 미군 위안부’ 여성들이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 고문방지협약 등 국제인권법이 금지하는 고문, 강제 성착취 및 성매매, 인신매매 등 기본적 인권을 유린당한 ‘중대한 인권침해 피해자’인 점을 강조했다.
국제인권법에 따르면 ‘중대한 인권침해 피해자’에게는 진실, 정의, 배상 및 재발방지의 권리를 보장되고, 국가는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조치를 의무로서 이행해야 한다.
유엔 특별보고관들은 국가가 기억과 추모를 보장함에 있어 인권침해의 상징이 되는 기념물을 철거하거나 개조하는 것은 특정한 역사나 피해자의 서사를 지우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하며, 결정에 있어 피해자의 관점을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피해자 등 진정인들은 “국제인권법의 법리에 비춰봤을 때 동두천시가 시민사회단체와 피해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병관리소 철거를 추진하는 것은 피해자의 서사를 지우는 행위이자 피해자의 참여를 배제함으로써 피해자의 관점을 반영하지 않은 인권침해”임을 지적했다.
이들은 유엔 특별보고관들에게 △우려표명 등 즉각적 개입 △‘기지촌 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권리보장 현황을 조사 △한국 정부에게 국가 차원의 공식적 사과 등 피해자들의 권리보장을 위해 필요한 권고를 해줄 것을 요청했다.
한편, 한국 전쟁이 끝날 무렵부터 1990년대 초까지 백만 명이 넘는 한국 여성들이 정부가 승인 아래 미군을 위해 성매매에 종사했다. 이 여성들은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관리되고 미군의 규제를 받았던 ‘기지촌’이라는 미군 기지 주변의 지정 구역에서 일했다. 동두천은 최대 7천명의 등록 성매매 여성이 있었던 가장 큰 규모의 기지촌이었다.
경기도 소요산 자락에 위치한 구 동두천 성병관리소 건물은 1973년부터 1996년까지 정부가 미군 성별 발생률을 낮추기 위해 설립해 운영한 시설이다. 이곳은 의무적으로 실시된 성별 검진에서 ‘낙검자’로 분류된 여성들을 수용하는 시설로 사용됐다.
미군을 위해 국가가 통제하는 성매매를 강요당한 ‘위안부’ 여성들은 관리소에 감금 돼 적절한 의학적 절차 및 검사 없이 투여된 고용량의 페니실린으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을 견뎌야 했다.
이 시설의 별명인 ‘몽키 하우스’는 구금된 여성들이 창문에 매달려 나가려고 소리치는 모습이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는 1990년대에 운영된 여섯 개의 시설 중 마지막 시설로, 현재는 폐건물로서 남아 있다. 피해자 등 진정인이 보존을 주장하는 이유다. 국가에 의한 여성인권 침해와 미군의 한반도 주둔 역사를 함께 보여주는 유일하게 남은 현장이기 때문이다.
앞서 2022년 9월 대법원은 기지촌 성병관리소를 운영한 것이 정부 주도의 국가 폭력이었고 미군 ‘위안부’ 여성들이 그 폭력의 피해자라고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