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성평등한 사회는 성착취와 함께 할 수 없다
[성매매방지법 20주년 기획] ① 성매매 여성들의 죽음 딛고 2004년 성매매방지법 제정 결실 여성 개인에게 책임 떠넘기는 성산업 착취 카르텔 아직 공고해 ‘성매매여성 비범죄화·수요 차단’ 필요
여성신문과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가 성매매방지법 20주년 기획 칼럼을 연재합니다. 성매매는 여성폭력이며 여성인권의 문제라는 데 주목해 반성매매 운동의 역사와 과제를 다룹니다. <편집자 주>
여성인권 운동의 새 지평을 열다 : 성매매 관련법 제정과 시행
2000년 군산대명동 화재참사와 2002년의 군산개복동 화재참사는 한국 여성인권 운동의 지형을 뒤바꾼 큰 사건이었다. ‘죽어야만 사는 여성들의 인권’의 실체는 성매매/성착취 현장 여성들의 참혹한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변화를 주도하게 된 것이다. 성매매 현장에서 죽어간 여성들의 죽음을 딛고 시작된 전국적인 반성매매여성운동은 2004년 「성매매알선등 행위의 처벌에관한 법률」과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에 관한법률」(이하 성매매방지법) 제정이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1961년부터 유지돼 온 ‘윤락행위등방지법’을 폐기하고 새로운 법을 만드는 과정은 지난했다. ‘스스로 타락해 몸 버린 자’(여성)를 국가풍기와 질서유지를 위한다는 명분의 ‘윤락행위등방지법’으로 여성의 몸과 성을 통제했다. 1995년 발생한 경기도 여자기술원 화재 이후 윤락행위의 상대방을 처벌하는 쌍벌죄와 ‘윤락/윤락우려’여성에 대한 시설로 강제입소를 금지하는 것 정도였다.
성매매와 관련한 법적 정책적 전환점은 2000년 군산 대명동 화재 참사다. 2000년 9월19일 전북군산시 대명동 일명 ‘쉬파리골목’에서 성매매를 강요당하면서 감금돼 있던 5명의 여성들이 화재로 인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군산 대명동 일대의 유흥주점(속칭 ‘감둑‘으로 불리던 성매매업소 집결지)에서 빚이 늘어난 여성들이나 다른 지역에서 성착취 피해를 입고 인신매매된 여성들이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로 성매매/성착취를 강요당해 온 현실이 드러났고 현장에서 발견된 여성들의 일기장을 통해 그녀들의 참혹했던 현실이 드러났다.
성매매/성착취 현장의 인권유린의 심각성과 경찰공무원과 업주와의 유착비리가 결국 성착취 피해 여성들을 죽음으로 내몬 사건은 사회적으로 커다란 충격이었다. 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 여성단체들은 관련 공무원 및 수사기관까지도 형사고발했고, 유가족들과 함께 공동변호인단을 구성해 2000년 10월26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오랜 재판을 통해 대법원은 2004년 9월23일 군산 대명동 화재사건으로 숨진 여성들의 유족들이 국가와 업주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인정했다.
2000년 군산대명동 화재 참사 이후 변화하는 성 산업에 대응하고 여성들의 인권을 제대로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가 이뤄졌다. 여성단체들이 중심이 돼 새로운 법을 제정하는 활동을 진행해 입법청원까지 하게 됐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성매매여성에 대한 편견과 강고한 성 산업 카르텔의 벽은 너무나 높아 논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던 법안은 2002년 군산개복동 화재참사 이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강력한 요청과 끈질긴 활동의 결과 2004년 성매매방지법 제정으로 결실을 맺었다.
「성매매알선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의 목적은 ’성매매, 성매매알선 등 행위 및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를 근절하고, 성매매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하며, 「성매매방지및피해자보호에 관한법률」은 ’성매매를 방지하고, 성매매피해자 및 성을 파는 행위를 한 사람의 보호, 피해회복 및 자립·자활을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법 제정·시행 이후 곧바로 법을 무력화하는 수많은 논쟁과 반격이 성매매/성착취피해여성들을 더욱 힘들게 했지만, 여성들은 용감하게 신고, 구조 요청, 소송 등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면서 성매매/성착취피해를 그대로 드러내고 ’피해자 없는 범죄‘ 논리를 바꾸어 피해자에 대한 지원과 피해 회복에 대한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해 나갔다. 성매매 문제가 젠더폭력 영역에서 얼마나 심각하고 구조적인 문제인가를 제기하고 이에 대한 변화를 만들어 온 과정이었다.
젠더권력 관계에 균열 낸 20년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는 성매매 관련법 제정을 주도해 2004년 법제정 이후 법 집행에 대한 감시와 모니터링, 성착취 근절을 위한 지역단체와의 연대를 통한 성평등 사회 실현, 젠더폭력 근절을 위해 전국의 회원단체와 함께 활동하고 있다. 전 지구적 성착취에 대항하는 국제사회의 요구와, 한국사회의 변화하는 성 산업 구조에 대응하면서 성매매/성착취근절을 향한 활동을 다양하게 진행하면서 젠더폭력 근절 활동의 지평을 확대해 나가는 활동을 망설임 없이 추진해 나갔고 2024년 올해 단체도 20주년이 됐다.
20년간 전국연대는 성매매/성착취 근절과 성 산업 확산 저지, 성 착취 카르텔 해체를 위해 ’법 개정을 통한 법의 실효성 확보를 위한 활동, 매년 주요 사안 대응, 구조적 접근을 통한 근본적 변화를 촉구하는 연대 활동, 피해자에 대한 지원과 보호를 확대하고 통합적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하는 활동, 국제 연대 활동, 당사자 활동, 변화하는 성 산업 실태를 폭로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활동, 집결지 폐쇄를 위한 활동, 디지털 성착취 문제에 적극 대응하는 등 쉼 없는 전진을 해 왔다.
2015년 유엔(UN)은 지구촌 구성원이 2030년까지 달성해야 할 17가지 목표를 담아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채택했는데 이 중 다섯 번째 목표(SDG5)가 성평등이다.
SDG5의 세부목표는 ‘모든 곳에서 여성과 여아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을 종식한다’(SDG 5.1) ‘인신매매와 성착취 등 여성과 여아에 대한 모든 폭력 근절’(SDG 5.2),을 2030년까지 국제사회가 달성하고자 하는 세부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성평등 달성의 문제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뿌리뽑을 수 없다면, 인류 전체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보장할 수 없음을 알려준다. 성평등은 건강, 교육, 안전 등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줘 여러 분야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돕고, 인류 모두에게 더 나은 삶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그 누구도 기본권을 침해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성평등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법 제정과 시행, 법 제도의 정착과 정책적 방향은 젠더폭력에 제대로 대응하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젠더권력관계를 바꿔내는 운동이고, 반성매매·성착취·인신매매 근절 활동이 민주 사회,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기반이다. 모든 영역이 빠른 속도로 디지털 산업으로 변화하는 현재, 여성/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성 산업 착취 구조의 카르텔이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보이지 않는 인공지능이 새로운 형태의 성착취 산업을 잠식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인격권, 행복추구권을 자유시장주의로 파편화하면서 구조를 가리고 있는 현 상황에서 전 지구적 성착취에 대응해야 한다.
여성에 대한 혐오와 차별, 젠더권력 관계의 변화를 위해 반성매매/반성착취 활동을 해 온 우리는 ‘성매매여성에 대한 비범죄화와 수요차단 정책’으로 공고한 남성권력 관계를 과감하게 바꾸어 나가고자 한다. 성매매/성착취 범죄에 대응하고 여성인권을 위한 법 제정 방향의 패러다임을 지속 가능한 성평등 사회 실현을 위한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치열한 활동은 계속될 것이다.
필자: 정미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전 공동대표.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전 공동대표, 현 정책자문위원, 한국여성단체연합 성매매방지법제정 특별위원회 집행위원장, 여성인권위원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