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 성폭력, 그 이후의 삶] 가족에서 벗어난 아이들은 서로를 보듬는다

전년대비 절반이상 삭감된 치료회복 예산 피해자 80% 불안·분노·우울·무기력 호소 평균 연령 12.9세

2024-08-01     신다인 기자

성폭력은 사건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성폭력 신고 이후의 지난한 과정은 성폭력의 다른 얼굴이다. 친족 성폭력의 경우 지지기반이어야 할 가정에서 가해가 발생하기에 피해자는 더 큰 고통과 배신감, 상실감을 느낀다. 가해자를 이해하고 싶고, 나만 참으면 괜찮을 것 같다는 마음이 올라온다. ‘집’을 잃는 일은 무섭기 때문이다. 게다가 친족 성폭력은 피해자가 어리고, 수년간 가해가 지속된다는 특징을 갖기에 더더욱 폭로가 어렵다.

하지만 주위의 도움으로 가정에서 벗어난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 있다. 탈가정을 한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여성신문은 친족 성폭력 사건 이후의 삶에 주목한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 시설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시설을 퇴소 후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따라간다. [편집자주]

7월 26일 경남시설에서 아이들과 함께 먹은 저녁 식사ⓒ신다인 기자

“가위 바위 보!”

오후 5시 30분. 밖의 날씨는 30도 안팎, 여름이라 길어진 해를 뒤로하고 거실에 아이들이 모여 가위바위보를 했다. 저녁 식사 후 샤워 순서를 정하기 위해서였다. “아악! 내가 또 첫째야” 핀잔을 늘어놓는 아이는 중학교 1학년 은주(가명). 마지막에 순서에 걸린 초등학교 5학년 예원(가명)이는 “아싸! 쌤 저랑 이따 공기해요!”라며 손을 잡아끌었다.

샤워 순서가 정해지자 아이들은 척척 상을 피고, 반찬을 그릇에 덜고, 밥과 국을 퍼서 자리 잡았다. 이날 저녁 메뉴는 감자조림과 가지무침, 콩나물무침, 배추김치, 오징어 젓갈, 김치찌개였다. 엄마 선생님이 첫 술을 뜨자 아이들은 일제히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선생님까지 포함해 7명이 모인 식탁에서는 젓가락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 집에 사는 아이들은 총 6명. 모두 친족 성폭력 피해자다.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7월 26일, 경남에 위치한 친족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이하 경남시설)에서 시설장의 동의를 받고 하루 동안 머물렀다.

경남시설에는 3개의 생활관이 있다. 현재는 32평형(107㎡) 생활관 두 곳에 각각 5명, 6명의 아이들이 나눠 살고 있다. 가장 어린아이는 여덟 살,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는 열입곱 살이다. 나이도 살아온 지역도 다 다른 아이들은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상담을 받고, 친구도 사귀며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경남 시설에 아이들 슬리퍼가 놓여져있다. ⓒ신다인 기자

서로가 서로를 돌본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가장 작은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8살 서우(가명)는 지난 달 시설에 들어와 아직도 적응 중이다. 기자가 인사를 건네자 얼어붙어 눈도 깜빡이지 않고 벽에 몸을 붙이고 작게 웅크렸다. 숨도 느리게 쉬었다. 최대한 들키지 않으려는 듯이.

서우는 처음 입소하고 2주간 센터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밥도 혼자 먹거나 같이 들어온 두 살 터울 언니 서리(가명)가 있을 때만 먹었다. 저녁마다 가방을 싸서 문 앞에 앉아 있었다. 집에 가고 싶어서. “아이들은 처음 시설에 오면 무서워해요. 낯선 공간에서 모르는 사람들이랑 같이 살아야 하잖아요. 설령 피해를 입었다고 하더라도 원가정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기도 해요.” 경남시설의 종사자 A 선생님이 설명했다.

같은 집에서 생활하는 언니들과 선생님들의 노력 덕에 서우는 천천히 마음을 열었다. 특히 맏언니 가온이(가명)의 역할이 컸다. 가온이는 중학생 때 입소해 5년간 시설에서 지낸 현재 시설에서 가장 오래 생활한 아이다. 가온이와 서우는 내내 붙어 다녔다. 밥을 먹을 때도 가온이는 서우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줬다. 아이들과 선생님의 애정 어린 관심이 서우의 불신을 잠식시켰다.

세수, 양치, 옷 갈아입기 등이 적힌 7월 체크리스트. ⓒ신다인 기자

돌고 돌아 겨우 도착한 보호시설

표준어를 사용하는 가온이는 “경기도에서 왔어요”라고 했다. 경남시설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전국 각지에서 모였다. 강원도에서, 경기도에서 전남에서 아이들은 경남시설로 왔다. 전국에 있는 친족 성폭력피해자 보호시설은 단 4곳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족 성폭력 피해자 아동이 시설로 오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일반 성폭력 보호기관과 아동학대 보호기관으로는 친족 성폭력 피해를 대응하기에는 부족하다. 친족 성폭력은 피해자가 어리고, 범죄가 지속된다는 특징이 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18일 발간한 ‘미성년 친족성폭력 피해자 특별지원 보호시설 지원업무 실태 및 개선과제’에 따르면 친족성폭력 피해시설 입소 아동의 78.5%가 13세 이하였다. 또한, 2022년 여성가족부가 발간한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발생 추세 및 동향 분석’에 따르면, 친족성폭력범죄의 30.8%가 1년 이상 범행이 지속됐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친족 성폭력은 더더욱 세밀하게 주의를 기울여 피해자를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여러 시설을 거쳐야 친족성폭력 보호시설에 겨우 도착할 수 있다. 지은진 경남시설 원장은 신고가 들어가면 아동 학대 전담 공무원이 개입해서 원가정 분리가 된다. 이때 아동학대 쉼터나 양육시설, 청소년 쉼터 등에 있다 아이들 케어가 어려울 때 묻고 물어 우리시설에 도착한다고 설명했다.

친족성폭력보호시설은 특별지원 보호시설로 분류된다. 범죄피해의 특수성으로 인해 비공개시설로 지정돼, 전담 공무원 및 경찰 등에도 시설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공유되지 않아 피해자 연계가 어려운 현황이다.

보건복지부가 올해 5월 발간한 ‘아동보호서비스 매뉴얼’에도 ‘원가정 외 보호기관’으로 “아동복지시설, 가정위탁지원센터, 입양기관 등 원가정으로부터 분리된 아동에게 보호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기관”을 명시했으나 특별지원 보호시설에 대한 언급은 없다.

“가뜩이나 가족에게 힘든 피해를 입었는데, 아이들이 낯선 곳을 전전하다 보면 정신적으로 완전 닳고 닳아서 온다. 이렇게 시설에 도착한 아이들은 정신과 상담을 받고 70%는 약물 치료를 병행한다”고 지 원장은 말했다.

지은진 경남시설 원장은 2010년부터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도왔다. ⓒ신다인 기자

전년대비 절반이상 삭감된 치료회복 프로그램

입소 당시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다. 경남시설에서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자체적으로 입소자들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입소 당시 불안(78.5%), 분노(79.7%), 우울(79.7%)을 느끼는 아이들은 10명 중 8명꼴이다. 이 외에도 공포감(60.%), 죄책감(54.4%), 무기력(49.4%), 자해 및 자살 충동(45.6%) 등을 느꼈다.

종사자들은 모두 심리 치료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 원장은 “아이들의 회복을 위해서는 치료회복 프로그램이 제일 중요하다. 회복은 더디기 때문에 몇 년이고 아이들이 꾸준히 상담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올해 경남시설에 치료회복 프로그램으로 배정된 예산은 1600만원. 지난 15년간 매년 3500만원을 배정받은데 비해 절반 이상(54.2%) 감소했다. 올해 여성가족부의 여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예산이 8억 500만원 줄어 직격타를 받은 것이다.

경남시설뿐 아니라 다른 친족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모두 치료회복 프로그램 예산 삭감을 겪었다. 경북 시설의 경우 작년 약 1400만원을 치료회복 프로그램 예산으로 받았지만, 올해 예산은 600만원으로 역시 절반 이상 삭감됐다. 김옥분 경북 친족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장은 “예산이 줄어서 아이들이 3번 받을 수 있었던 개별 심리 상담을 한 번 밖에 못 받게 됐다”고 했다.

한편, 지 원장은 지자체에 추가 예산을 요청해 겨우 치료회복 프로그램 예산으로 2290만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7월 27일 경남 시설의 앞마당에 이불이 널려 있다. ⓒ신다인 기자

시설에 와서 처음 가 본 목욕탕, 다시 시작하는 돌봄

아이들이 사는 집 앞에 이불이 널려 있었다. 한 아이가 이불에 실수를 한 것이다. 아이들이 어리고 불안에 시달려서 종종 발생하는 일이다. 경남 시설에 소속된 아이들의 평균 나이는 12.9세. 초등학생 7명, 중학생 3명, 고등학생 1명이 있다. 지 원장은 “친족 성폭력은 아이를 방임한 가정에서 많이 일어난다”며 “이를 닦는 것부터 시작해서, 숟가락 젓가락을 드는 것까지 모두 하나하나 가르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계성 지능인도 많다.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행한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친족 성폭력 피해 입소자의 33.9%가 ‘경계선, 지적·신체·정신장애’의 한 유형에 속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이유로 집마다 세수, 양치, 옷 갈아입기 등이 적힌 체크리스트가 있다. 홍창순 경남시설 상담팀장은 “어느 정도 큰 아이들은 괜찮지만, 어린 아이의 경우는 직접 씻겨줘야 한다”고 했다.

지 원장은 아이들이 회복하기 위해서는 가정과 비슷하게 1대 1로 돌보고, 관심을 끊임없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명절이나 방학에는 꼭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간다. 돌아갈 가정이 없는 아이들은 방학과 명절에 우울감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에는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목욕탕에 같이 가기도 한다. 홍 상담팀장은 “어떤 아이가 집에서 한 번도 목욕탕을 가본 적이 없다고 해서 아이들과 목욕탕에 가서 때도 밀고, 바나나 우유도 같이 마셨다”고 설명했다. 평범한 일상을 경험시켜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아이들이 귀찮아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중에 아이가 퇴소하고, 만약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았을 때 여행을 가고 목욕탕에서 바나나 우유를 먹었던 경험이 누군가와 새로운 추억을 쌓을 수 있는 배경이 되면 좋겠다.” 홍 상담팀장은 웃으며 말했다.

웹툰 작가가 꿈인 채영(가명)이가 그려준 기자의 모습. ⓒ신다인 기자

생활지도, 위생지도, 공부지도부터 여행까지 아이들의 회복에 총력을 기울이다보니 종사자들의 노동 강도는 높다. 종사자들은 생활관 한 곳에 한명씩 교대로 아이들과 함께 자며 생활한다. 아이들과 유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만, 그만두는 사람도 있다. 종사자가 소진될 수밖에 없는 구조기 때문이다.

경남시설의 종사자수는 원장을 포함해 8명. 경남뿐 아니라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라 전국에 있는 친족 성폭력피해자 보호시설의 종사자 수는 모두 8명이다. 지 원장은 “종사자수를 늘려주든 시급을 늘려줘야 한다. 사실 3~5년 이상 있기 힘든 구조다. 종사자들 근속햇수가 길어야 전문성도 생기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신뢰할 수 있다. 자꾸 바뀌면 아이들이 마음을 안 열고, 안정감을 느끼지 못 한다”고 했다.

저녁 7시 반.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나갈 채비를 했다. 같이 공기 놀이를 했던 예원이(가명)는 “쌤 다음에 또 와요”고 말했다. 나중에 웹툰 작가가 되고 싶다던 채영(가명)이는 그림을 선물로 건넸다. 아이들과 인사를 하던 중 서우가 쭈뼛쭈뼛 다가왔다. 악수를 건네자, 작은 손을 내밀었다. 맞잡은 서우의 손은 너무나 작고 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