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 맞춰 실내온도 높이고 자연채광 늘려야 하는 이유

[과학 혁신은 포용으로부터] ② 남성신체 기준으로 만들어진 실내 환경 표준 젠더 차이 고려해야 모두의 건강·생산성 ↑

2024-07-27     이선영 서울시립대 교수
ⓒVecteezy

나이와 성별, 신체적 다양성을 포용하는 보편적 디자인은 젠더 차이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실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현대인은 실내 환경으로부터 신체적, 심리적 영향을 받게 된다. 우리가 객관적 수치로 여겨왔던 실내 환경 표준이 특정 젠더에 편향된 데이터에 기반함을 인지하는 것이 젠더 혁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실내 환경 품질의 표준인 ‘오피스에서의 건강, 웰빙, 생산성(Health, Wellbeing and Productivity in Office)’과 ‘건강건축인증제도(WELL Building Standard)’에서 다루는 공통 사항인 실내 공기, 빛, 열 쾌적성, 소음 관련 기준들은 대동소이하다. 공통점을 굳이 꼽자면 이러한 수치가 누구를 기준으로 설정됐는지 명확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실내 공기를 먼저 살펴보자. 휘발성유기화합물(VOC)을 포함한 오염물질, 이산화탄소, 냄새, 환기율/공기 정화, 습도 조절 등을 측정해 평가하는 ‘실내 공기의 질’은 건물에서 일하거나 거주하는 사람들의 생산성과 직결된다. 실내 공기 질이 나쁘면 ‘빌딩 증후군’(건물에서 일하거나 사는 사람들이 건강상의 문제나 불편감을 호소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2001년 발표된 논문에 의하면 빌딩 증후군을 호소하는 여성이 44.3%, 남성이 26.2%로 큰 젠더 차이를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여성은 심리적인 요인 때문에, 남성은 환경 관련 요인 때문에 빌딩 증후군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생활이나 업무 환경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일수록 그 환경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젠더 차이를 넘어 개인의 업무에 어떠한 환경이 필요한지, 개별화된 환기 조절이나 온도 조절이 얼마나 민감한 문제인지를 보여주는 예이다. 이러한 확대 데이터가 쌓이면서 업무 환경도 진화하고 있다. 개인이 개별적으로 작업 공간의 온도를 직접 제어하도록 하거나, 상황에 맞는 조건을 충족하는 건물 내 공간을 찾아내 사용할 수 있도록 선택의 여지를 주는 식이다. 젠더 혁신이 이룬 성과라 할 수 있다.

실내조명(빛 환경)에 관한 연구 결과를 보면 더 많은 사항이 젠더와 관련해 거론되고 있다. 야간 시간대 인공조명이 멜라토닌의 생성을 방해해 유방암 유병률을 높인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자연광의 적극적인 도입이 실내 환경 설계의 관심사로 들어오게 된 것이 가장 두드러진 예이다. 특정한 색의 빛이 여성에게 심리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우울증을 유발하는 반면, 남성은 해당 색의 빛에 긍정적이라는 사실을 밝힌 연구도 있다. 이는 상황과 사용자 구성에 따라 색온도를 즉각적으로 변화시키는 디지털 천장이라는 혁신적인 조명 통합 천장 시스템을 견인했다.

실내 환경에서 가장 가시적인 젠더 차이를 보여주는 주제는 어느 수준의 실내 온도(열 환경)가 쾌적하냐는 것이다. 여성이 각각 쾌적하게 느끼는 온도가 남성보다 약 3도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1960년대에 만들어진 열 환경 기준은 정복을 갖춰 입은 40대 네덜란드 남성을 기준으로 삼았다. 남녀의 신진대사율 차이와 그에 따른 발열량의 차이를 간과한 것이다. 실내 냉방 온도가 개인차를 무시하고 일괄적으로 설정돼 있다면 이는 업무 효율성을 넘어 건물 관리 차원에서 대단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소음 민감도의 젠더 차도 주목할 만하다. 배경 소음, 사생활 방해 정도, 진동 등을 통해 평가되는 소음 관련 실내 환경 요소는 현대의 개방형 공간에서 가장 큰 현안이 되고 있다. 예를 들면 소음에 취약한 개방형 오피스 환경이 오히려 상호작용을 위축하게 해 메신저 등 사용을 활성화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구성원 간 교류 활성화를 위한 오피스 환경이 오히려 업무상 필요한 대화마저 단절시킬 정도로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는 얘기다. 남성은 외부 소음에, 여성은 내부 소음에 민감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개방형 오피스에서의 생산성을 향상하고자 노력할 때, 자리 배치 등에서 젠더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이유다.

이렇듯 실내 환경의 질이 정신건강과 업무 효율성에 미치는 영향은 젠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는 데에서 젠더 혁신은 시작된다. 공간 사용자의 특성을 반영해, 차이를 방치하기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추구하는 과학기술 젠더 혁신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큰 영향을 가져올 마법의 특효약이 될 수 있다.

참고문헌

1. World Green Building Council(WGBC), Health, Wellbeing & Productivity in Office, 2014

2.International Well Building Institute, The Well Building Standard, 2015

3.에밀리 엔시스 저, 김승진 역, 우리는 실내형 인간, 마티, 2020

4.Bauer, S. E., Wagner, S. E., Burch, J., Bayakly, R., & Vena, J. E. (2013). A case-referent study: light at night and breast cancer risk in Georgia. International journal of health geographics, 12(1), 1-10.

5.Beemer, C., Stearns-Yoder,K. A., Hoisington, A. J.,(2021). A brief review on the mental health for select elements of the built environment, Indoor and Built Environment, 30(2), 152-165.

6. Kim, J., de Dear, R., Candido, C., Zhang, H., & Arens, E. (2013). Gender differences in office occupant perception of indoor environmental quality (IEQ). Building and environment, 70, 245-256.

 이선영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는

이선영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본인 제공

한국과 미국의 등록 건축사다. 서울대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UC 버클리에서 하와이대 마노아캠퍼스에서 건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7년 하와이대의 풀브라이트 방문학자를, 2017년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의 객원 연구원을 역임했다. 서울시 공공건축가, 도시계획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저서로 『학교·장소·​기억』(연암서가, 2022, 영문판은『Creating a Sense of Place in School Environments』)와 『Boom or Bust?: 강남 빌딩 붐 이후 테헤란로의 미래』(우리북, 2019)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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