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 ‘단톡방 성희롱’ 가해자의 자살…죽음이라는 2차 가해

“피해자에 책임 지우려” 죽음으로 도망치는 가해자들 전문가, “자살은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 "수사 계속할 수 있도록 법 제정 필요”

2024-05-24     신다인·박상혁 기자

 

<편집자주> 지난해 4월, 두 명의 20대 여성이 여성신문 편집국으로 찾아왔다. 이들은 20대 남성 6명이 단톡방을 만들어 주변 여성과 유명인 등 80여명의 사진을 올리고 온갖 비속어로 성희롱했다고 제보했다. 여성신문은 1년 2개월여 동안 당사자들과 소통하며 추이를 지켜보다 최근 검찰이 단톡방 가담자들에게 벌금 30만원의 구약식 처분을 내리고 가해자 사망으로 피해자 중 1인이 2차 가해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후 보도를 결정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모든 기사에는 가명을 사용했다. 

(1) 여성 80여명 2년간 성희롱한 ‘밀덕 단톡방’, 검찰은 ‘벌금 30만원’ 처분

(2) 한 ‘단톡방 성희롱’ 가해자의 자살…죽음이라는 2차 가해

(3) 단톡방 성희롱은 디지털성범죄...예방과 2차 피해 방지 위해 법 개정 필요


13일 인천 부평의 한 카페에서 성폭력 피해자인 박수영(가명)씨가 여성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박상혁 기자

“태현(가명)이는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죽어버렸죠. 태현이 친구들은 내가 죽게 만들었다고 책임을 묻고 있어요. 살아버려서 저는 모든 오해를 혼자 해명해야 돼요.”

20대 여성 박수영(가명)씨는 사귀던 한 남자한테서 두 번 피해를 당했다. 그가 자신과의 성관계를 자신이 속한 단체카톡방에 중계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리고 지난해 7월 그가 끝내 사과하지 않고 죽음으로 도망쳐버렸을 때.

“다정한 줄 알았던 그는 나와의 성관계를 중계했다”

수영(가명)씨가 여성신문의 문을 두드린 건 지난해 3월. 그는 자신의 애인이었던 태현씨가 20대 밀리터리 덕후 6명이 모인 단톡방에서 자신을 비롯한 수많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희롱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수영씨와 태현씨는 같은 대학에서 만나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수영씨는 태현씨를 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태현씨에게는 수영씨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이면이 있었다.

2023년 3월 수영씨는 친구로부터 “태현이가 단톡방에서 너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에 수영씨는 카카오톡방 대화방 공개를 요구했고, 태현씨가 친구 5명이 들어있는 카카오톡 단톡방에서 수영씨와의 성관계 내용을 공유하거나, 성희롱을 일삼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밀덕 단톡방' 타임라인 ⓒ이은정 디자이너

카카오톡방에서 수영씨는 ‘O집’, ‘계X년“ 등으로 불렸다. 이뿐만 아니었다. 단톡방에서는 3년간 가해자들의 사촌누나, 애인, 친구, 연예인 등 여성 80여명을 향한 성희롱이 오가고 있었다.

수영씨는 태현씨에게 사건을 공론화하지 않을 테니 모든 피해자들에게 직접 사과하라고 했다. 태현씨는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사과를 꺼리며 죽고 싶다는 말을 반복했다. 같은 단톡방에 있었던 태현씨 친구는 수영씨에게 “덕분에 태현이 자살하면 참으로 좋은 결과이시겠네요”라는 문자를 보냈다.

수영씨는 무서웠다. 헤어진 상태였지만 태현씨로부터 “죽고 싶다”, “죽을 것이다”라는 연락을 받을 때마다 수영씨는 “미안하면 살라고, 죽는 게 더 큰 가해라고 죽지 말아달라”고 몇 번이나 애원했다.

하지만 결국 지난해 7월 태현씨는 결국 사과 대신 죽음을 선택했다. 또한 단톡방 가담자들은 수영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그가 다른 성희롱 피해자들에게 피해사실을 알렸다는 이유였다.

태현씨가 자살협박 및 자살시도를 하자 지난해 5월 태현씨의 친구이자 단톡방 가담자로부터 수영씨가 받은 문자. ⓒ박씨 제공

수영씨를 향한 폭언도 이어졌다. 태현씨 친구들은 “이제 좀 마음이 편하냐”, “무죄추정의 원칙 따위 무시하고 성폭력 가해자라고 말하는 건 마음의 상처”라며 태현씨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수영씨에 돌렸다. 하지만 단톡방 성희롱은 성폭력이다.

“가해자가 죽어도 결코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

사건 당시 수영씨를 상담했던 김수정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소장은 “통상 성폭력 피해자는 가해자가 사과를 하고 문제를 책임지길 바라지, 사건을 해결하지 않고 사망하길 바라지 않는다”며 “가해자가 사망하면 피해자는 본인이 영향을 준 게 아닐까 부담을 느끼고, 공소권 없음으로 본인의 피해를 인정받고 해결할 단서가 사라져 막막함을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가해자의 자협박과 자살 자체는 2차 가해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자살시도나 자살은) 신고를 하거나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게 피해자를 통제하려는 행위다. 동시에 가해자가 잘못됐을 경우 피해자에게 책임을 지우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성폭력, 데이트폭력, 가정폭력 등 여성폭력의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는다면 자해나 자살을 하겠다’고 통보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며 “이런 경우 내담자에게 ‘자살 협박 자체가 폭력이다. 가해자가 실제로 극단적 선택을 한다 해도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한다”고 덧붙였다.

2021년 3월 1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 고 박원순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자리가 마련돼 있다. ⓒ연합뉴스

가해자가 죽음으로 도망치지 않도록, 피해자가 2차 가해 받지 않도록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자살하거나 사망해 수사가 중단되면 피해자는 곧바로 ‘가해자’로 몰려 2차 가해를 받게 된다.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피의자)가 사망하면 수사기관은 범죄성립 여부를 판단하지 않는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가 종결된다.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으니 피해자의 회복도 어려워진다.

2020년 전직 서울시청 직원으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후 사망한 박원순 시장, 초임 변호사를 성폭행한 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다가 2021년 사망한 모 로펌 대표 역시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가 종결됐다. 이 사건들의 피해자들은 “너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는 2차 가해를 겪어야 했다.

2021년 서울 서초동의 한 로펌에 근무하던 40대 변호사 A씨는 2020년 같은 로펌에 근무한 후배 변호사 B씨를 여러 차례 성폭행하고 추행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다가 언론에 피소 사실이 보도된 5월 26일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로펌 미투 사건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인 이은의 변호사는 경찰로부터 수사 내용을 요청해 7쪽 분량의 불송치 결정문을 전달받았다. ⓒ연합뉴스

가해자가 사망해도 피해자가 2차 가해를 입지 않으려면 수사기관의 피해 사실 인정이 필요하다. 2021년 발생한 ‘초임 변호사 미투 사건’의 피해자 측은 경찰과 검찰에 피의자가 사망하기 전까지 진행했던 수사 내용을 요청했다.

검찰은 응답하지 않았지만, 경찰은 7쪽 분량의 불송치 결정문을 피해자에게 송달했다. 이 안에는 피해자 측 참고인 진술과, 피해자 문자 메시지 등이 상세히 기술돼 피의자의 범행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성폭력 가해자가 죽으면 피해 사실마저 묻히는 관행에 균열을 만든 것이다.

당시 로펌 미투 사건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을 맡았던 이은의 변호사는 “수사결과서를 송치만 해도 피해자가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는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는다”며 “만약 가해자가 재산을 남기고 죽었다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성폭력 가해자가 죽더라도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가 종결되지 않도록 관련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가해자들이 죽으면 명예가 보장 될 거라고 생각해서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다”며 “만약 죽어도 수사가 계속 진행된다면 죽음을 택하지 않고 자신을 변호하려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법제도를 개선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제21대 국회에서 계류돼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았다. 2020년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성폭력 처벌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성폭력범죄의 피고소인 또는 피의자가 자살 등을 원인으로 사망했을 때, 공소권 없음 처분으로 사건을 종결하지 않고 고소사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뒤 형사소송법 절차에 따라 고소사건이 처리되도록 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한편, 영국은 피의자가 사망해도 피해자가 사건의 재심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피해자 재심사(victim’s right to review)’ 요구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에는 ‘범죄 피해자 권리법(Crime Victim’s Rights Act)’이 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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