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당직자 출신 권향엽, ‘사적 공천·여성’ 두 프레임 깼다
[22대 국회 W파워 인터뷰] 권향엽 더불어민주당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을 당선인 ‘창당 69년 역사’ 첫 지역구 여성 “여성 후보라고 명함도 잘 안 받아” 1호 법안은 ‘광양산단 제철특별법’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을에서 첫 여성 국회의원이 탄생했다. 더불어민주당 창당 69주년 역사에서 처음이었다. 권향엽 민주당 당선인이 그 주역이다.
3일 국회 도서관에서 여성신문과 만난 권 당선인은 “새 역사를 쓴 것이 맞다. 맨땅에 헤딩해 넘어졌다가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난 상황이라 값지다”고 말했다.
“김윤덕 전 의원(나주군·광산군) 이후 46년 만에 전남에서 당선된 첫 여성 지역구 국회의원이자 창당 69년 역사를 가진 민주당에서 배출한 첫 전남 동북권 여성 의원”이라는 자부심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맨땅에서 헤딩해 넘어졌다’는 건 무슨 뜻일까. 당초 권 당선인은 4·10 총선에서 순천·광양·곡성·구례을 선거구가 ‘여성 전략공천’ 지역으로 분류되면서 단수 공천됐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의 대선후보 시절 배우자인 김혜경씨 보좌로 사천(私薦) 논란이 불거졌다.
그는 그래도 일어났다. 논란을 타개하기 위해 중앙당에 공천을 반납하고 재경선을 요청했다. 권 당선인은 제21대 총선에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경선의 벽을 넘지 못하고 떨어진 경험이 있다. 하지만 이번엔 서동용 민주당 의원 간 2인 경선 끝에 공천권을 얻었다.
권 당선인은 당시의 심경을 “천당과 지옥을 오간 기분이었다”고 설명했다. “다시 떨어질까 두렵기도 했지만 억울함에 전략공천을 반납했다.”
“현장에 가면 다 비서인가? 제가 대구·상주 등 지방 일정 현장에 있었던 이유는 행사 기획자였기 때문이다. 일정도 계속 따라다닌 게 아니다. 심지어 직접 행사에 가지 않았는데도 이미 대중에 공개된 사진을 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재했다고 기사화까지 됐다. 고약한 프레임이었다.”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다행스럽게도 박지원 전 국정원장·유시민 전 장관·최민희 의원·이언주 전 의원 등 많은 분께서 여러 방송을 통해 논란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씀해 주셔서 고마웠다”고 그는 말했다.
“제가 살아온 인생 자체를 부정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나 어렵고 힘든 순간이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권 당선인은 30여 년간 민주당 중앙당 당직자로서 일해 왔다. 민주당 원내기획실장·의사국장여성국장·평가감사국장·여성리더십센터 소장, 김대중 정부 행정관과 문재인 정부 균형인사비서관 등 당내서 역량을 키워 왔다. 지난 대선에선 선거대책위원회 배우자실(실장 이해식 의원) 부실장으로 경험을 넓혔다.
긴 당료 생활 끝에 그는 ‘득표율 70.09%’이라는 좋은 성적으로 국회에 첫 발을 내딛게 됐다. 득표수(10만4천493표)로만 따지면 전국 3위다. 그러나 선거 초반엔 ‘여성’이라는 프레임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선거 초반에는 유권자께서 다른 남성 후보의 명함을 받으시면서 제가 명함을 드리면 받지 않으셨다. 저를 후보의 배우자나 선거운동원으로 인식하셨다. 여성이 국회의원 후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권 당선인은 ‘제가 후보입니다’라고 눈을 마주 보며 유권자를 설득했다. 어떤 어르신들은 “(국회의원 후보로) 여자는 좀 약하지 않아?”라고 직접 묻기도 했다.
“지방으로 갈수록 보수적인 성향이 있을 뿐더러 주로 큰 인물로 선거를 치렀고 그런 분들 대부분이 남성이었기 때문에 (어르신 말씀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경로당에 가서 ‘우리 지역에 여성 국회의원을 만나본 적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다들 인식 자체가 없으셨다.”
그는 자신에게 의구심을 갖는 유권자들에게 ‘제가 당직 생활을 오래 해서 국정 운영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안다’고 설득했다. 때로는 삶의 애환을 들으며 공감을 끌어내기도 했다.
권 당선인이 국회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손 볼 법안은 ‘광양산단 제철특별법’이다.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수소환원제철 분야를 추가하겠다는 구상이다.
“우리 지역은 광양제철 등 국가산단에 대한 의존도가 굉장히 높다. 제철은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업종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탄소 저감 노력을 위해 탄소를 포집해 수소로 환원시켜야 하는데 이 기술을 개발하고 공정하는 것은 어느 기업 하나만으론 쉽지 않다. 국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제철업도 국가첨단전략산업에 지정될 수 있도록 하겠다.”
권 당선인은 전남 지역 소멸에 대해 말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우리 지역은 농업이 발달했기 때문에 저출산·고령화를 직격탄으로 맞고 있다”며 “어느 지자체의 노력만으론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여러 지지와 의지를 모아야 할 때”라고 그는 강조했다.
전남의 의료 인프라 문제에 대해서도 짚었다.
“전남 동부권은 국가산단 밀집 지역으로 응급 외상 환자 발생률이 높지만 상급종합병원인 전남대 병원까지 이동거리가 약111km이기 때문에 골든타임을 놓친다. 지난 3월 윤석열 대통령께서 전남에 내려오셔서 의대 유치를 공약하셨다. 이제는 결단해 주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22대 총선 여성 당선인은 총 60명(20%)이다. 최근 민주당은 지난 4월 29일 전국여성위원장 주재로 여성 당선자 모임을 가졌다.
여성 비율에 대해 그는 “미약한 변화이지만 후퇴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여성 정치인이 주로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데 지방 지역구 여성 의원의 공천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고무적인 변화도 있다. 이번 총선에서 여야 다선 여성 의원들이 탄생해 국회의장, 국회부의장 후보에 거론되고 있다. 아름다운 바램으론 국회의장단 전체가 여성으로 채워져도 이상하지 않은 그날이 오는 것이다.”
권 당선인은 공감과 소통의 정치를 강조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과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얘기를 들어보면 경제가 어려워 힘들어하신다. 민생을 살리기 위해 국회의원으로서 해결할 소명이 있다. 또 민주·인권·평화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 온 만큼 이를 저해하는 세력에 대해 단호하게 맞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