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은 일상” 국내 젠더 기자들 수난..."회사 차원 보호활동 해야"

국경없는기자회 발표, 한국의 언론 자유 지수 62위 '문제 있음' 기소 위협, 기업과 이해관계 문제 이어 "온라인 괴롭힘 피해" 문제 지적 기자들, "젠더 관련 기사에 악플 더 심해" "회사 혹은 노조, 기자협회 등 조직적 대처 필요"

2024-05-04     신다인 기자
국제기자단체가 한국의 언론 자유 환경을 '문제 있음'으로 하향하면서 한국 기자들이 겪는 '온라인 괴롭힘'을 문제 중 하나로 지적했다. ⓒpixabay

“원초적인 혐오 댓글이 달리거나 악성 메일이 오기도 한다.” 모 신문사 젠더데스크 A씨가 말했다. 

인권 기사를 쓰고 있는 다른 신문사 기자 B씨는 ‘니에미 X지서 썩은 냄새 진동한다’는 내용의 메일을 받은 적 있다. 그는 "젠더 관련 기사에 유독 악플이 더 심하다”고 털어놓았다.

국제기자단체가 한국의 언론 자유 환경을 '문제 있음'으로 하향하면서 한국 기자들이 겪는 '온라인 괴롭힘'을 문제 중 하나로 지적했다. 

국제기자단체인 국경없는기자회(RSF)가 3일 '세계 언론 자유의 날'을 맞이해 발표한 '2024 세계 언론 자유 지수'에 따르면 한국의 언론 자유 지수는 180개국 가운데 62위였다. 1년 전 47위에서 15단계 떨어졌다.

한국의 언론 자유 환경은 지난해 '양호'에서 올해 '문제 있음'으로 하락했다. RSF는 언론 자유 환경을 평가해 '좋음', '양호함', '문제 있음', '나쁨', '매우 나쁨'으로 분류한다. 

RSF는 "한국의 몇몇 언론사들이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기소 위협을 받았다"는 점, "기업과의 이해관계 등으로 인해 언론인들이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점과 함께 '온라인 괴롭힘'을 문제 있는 언론 환경으로 봤다. 

한국 기자의 안전 환경과 관련 RSF는 "거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온라인 괴롭힘의 피해자"라고 평가했다. RSF는 2023년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를 인용해 "조사 참여 기자들 중 약 30%가 괴롭힘을 당했다"며 "전화, 문자메시지, 이메일을 통한 괴롭힘이 가장 흔했고 '인터넷 트롤' 댓글과 악의적인 법적조치도 두드러졌다"고 전했다.

기자들은 젠더 관련 기사나 성평등 관점이 담긴 기사를 쓸 때 더 많은 악성댓글과 메일에 시달린다고 토로했다. 

한 정치 담당 기자 C씨는 "지난 총선에 비례대표 공천을 분석하면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등 주요 양당의 여성 비례 후보 비율을 썼더니 댓글에 '맨날 여성비율 따지는 저지능 정*장애인'이란 댓글이 붙었다"는 사례를 전했다. 

한 언론사 데스크 D씨는 "성평등 언어 가이드라인에 따라 기사에 ‘유모차’ 대신 ‘유아차’라는 단어를 쓰자 기사에 ‘기자가 국어 능력이 많이 부족하네’ 등 기자의 역량 자체를 폄하하는 댓글이 달려 놀란 적 있다"고 말했다. 

이런 언론 환경 속에서 그나마 존재하던 젠더 전문 조직은 사라지거나 축소되는 추세다. 2019년 6월 사장 직속으로 만들어졌던 서울신문의 젠더연구소는 사주가 바뀌면서 문을 닫았다. 2019년 5월 국내 최초로 젠더데스크를 배치했던 한겨레에선 기존 4명이었던 젠더팀 기자가 현재 3명으로 줄었다. 

일간지 젠더팀 기자 E씨는 “젠더 보도를 전담하는 취재부서가 사라진다면 젠더 보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남성이 언론 산업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며 "이런 환경에서 전담 부서 없이 기자 개인이 젠더 보도를 전담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미디어 단체들도 젠더데스크, 젠더 담당 기자들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언경 미디어 뭉클 소장은 “한겨레, 경향신문 등 젠더데스크가 생기고 나서, 관성에 의해 보도했을 표현들이 사라졌다”며 “우리 언론의 현실을 봤을 때 젠더데스크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2022년 7월 발생한 ‘인하대 학생 사망 사건’ 보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분석에 따르면 가장 먼저 기사를 작성한 연합뉴스가 ‘“인하대서 여성 옷 벗은 채 피흘리고 쓰러져”…경찰 수사’라며 제목에 선정적 표현을 사용한 후 다수 언론이 뒤따라 ‘여대생’, ‘탈의한’, ‘나체로’ 등 선정적이고 성차별적 표현을 사용한 제목의 보도를 쏟아냈다.

경향신문은 젠더가이드라인 소개 영상 갈무리. 경향신문은 2022년 젠더보도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플랫 인스타그램

젠더데스크가 있었던 일부 매체는 이를 바로 잡았다. 7월 15일 경향신문은 ‘여대생 성폭행 거부하자 숨지게 한 같은 학교 대학생 체포’라는 제목을 이후 ‘‘인하대 사망 사건’, 같은 학교 남학생 강간치사 혐의 체포’로 수정했다. 경향신문은 2021년 6월 젠더팀을 조직하고 젠더데스크를 뒀다. 

한겨레도 제목을 고쳤다. 처음 작성된 제목은 ‘대학 내 알몸 상태로 발견된 여대생 숨져…경찰 수사’였는데, 디지털뉴스 편집자가 ‘인하대 교내서 피흘린 채 발견된 학생 숨져…경찰 수사’로 바꿨다. 사내 ‘젠더 보도 가이드라인’에 따른 것이었다. 

일부 언론사는 자체적 젠더 보도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2021년 제정된 한겨레 보도가이드라인에는 성별 고정관념 강화 표현, 성별에 따라 특정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묘사하는 표현, 불필요한 성별 구분 표현을 앞으로 쓰지 않겠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2022년 만들어진 경향신문의 가이드라인은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바꾸고 ‘유모차’를 ‘유아차’로, ‘맘카페’를 ‘육아카페’로 바꾸라는 지침을 담았다.

기자들은 통신사에 젠더데스크, 젠더 보도가이드라인이 생기면 파급력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일간지 젠더데스크 A씨는 “통신사에 젠더데스크가 생겨서 성차별적 표현이나 피해자 정보를 특정하는 게이트 키핑(뉴스 결정자가 뉴스를 취사선택하는 과정)만 해도 언론 환경이 훨씬 성평등하게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사 차원에서 악성 댓글로부터 기자들을 보호하는 활동을 벌여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한 언론사 간부 D씨는 "젠더 관련 기사를 올린 후엔 종종 악플들을 점검하곤 한다"며 "지나친 혐오표현은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에 심의를 거쳐 삭제 조치를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언론사들이 회사 차원에서 기자 보호를 위한 활동을 하지 않으면 국내 기자들의 언론 자유도는 더욱 떨어질 수 있다"면서 "회사가 그런 활동을 지원하지 않으면 노조나 기자협회 지회 차원에서 지원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한편, 2020년 11월 부산일보도 지역신문 최초로 젠더데스크를 도입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