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절반 이상을 미국과
유럽서 보낸 23세 코스모폴리탄
글로벌 세대의 독특한 시각
담긴 에세이 매주 연재
“‘인종의 용광로’ 뉴욕을 거쳐 유럽에서 3개월 있다가 서울에 오니 다들 비슷비슷한 옷차림에, 지하철도 비슷비슷한 시간대에 붐비는 모습이 참 낯설었어요. 또 유럽 친구들에게 한국의 알바 시급 이야기를 해줬더니 ‘한국 물가는 엄청 싸겠네’ 하는 거예요. 알바비로 월세 내긴 힘드니 서울에서 먹고 살려면 다 직장인이 돼야 하는구나 싶었죠(웃음).”
배우 줄리아 로버츠처럼 큰 눈에 큰 입을 가진 그가 환하게 웃자 왠지 마주앉은 기자도 배시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본보에 ‘마린의 서울일기’ 연재를 시작하는 마린씨는 밝고 쾌활한 코스모폴리탄이었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난 후 미국으로 떠나 14년간 살다 지난 9월 한국에 온 그는 23세 코스모폴리탄의 눈으로 본 한국사회를 익살스런 문체로 담아냈다.
마린씨는 9살 되던 해인 2002년 미국 뉴욕으로 떠났다. 지난 봄에 미국 웨슬리안대 사회과학부를 졸업한 후 유럽으로 떠나 베를린과 암스테르담에서 3개월간 살았다. 지난 9월 한국에 돌아와 3개월째 서울에 머물고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살아온 날의 절반 이상을 미국과 유럽에서 보낸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마린씨의 눈으로 본 세상을 따라가면 우리가 어떤 모습인지, 어디로 가야 할 지 어렴풋하게 보인다.
본보는 당초 영문 사이트에 싣기 위해 마린씨에게 영어 칼럼을 의뢰했으나 그가 처음으로 한글로 썼다는 에세이는 의외로 사색적이었다. 세상이 정한 고정관념의 틀을 따라가지 않고 자기 힘으로 자기만의 것을 찾아나가는 글로벌 세대의 힘이 배어 있었다. 마린씨같은 코스모폴리탄은 우리의 현재이자 미래다. 유명 필자는 아니지만 젊은이답게 신선함이 넘치는 글을 거울 삼아 우리 사회를 비쳐보면 반면교사가 될 성 싶다. 어떻게 한국어를 놓치지 않고 살았느냐는 물음에 마린씨는 큰 눈을 반짝이며 이렇게 말했다.
“유학간 후 인터넷으로 한국어 공부를 했어요. 엄마와도 우리 말로 대화를 나눴죠.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인 엄마와 소통하려고 마음속 깊이 한국어를 꼭 붙들고 있었어요.” 그 엄마는 곧 모국의 다른 이름 아닐까. ‘마린의 서울일기’는 매주 문화면에 연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