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페미니즘 혁명] 

강간이 왜 살인보다 나쁘냐고?

어쩔 수 없이 저질러야 하는

강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

 

재판받는 성범죄 5%뿐

이 중 70%는 풀려나다니

양형기준 턱없이 낮아

 

겨우 강간인데 징역형은

과한 처벌? 이래도 되나

 

신안 섬마을 교사 성폭행범들에겐 최대 18년이 선고됐다. 무기징역을 내려도 시원치 않다는 여론도 있었다. 전남의 한 섬 관사에서 교사를 성폭행한 혐의(강간 등 치상)로 구속된 피의자들이 6월 10일 전남 목포시 용해동 목포경찰서에서 검찰에 송치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신안 섬마을 교사 성폭행범들에겐 최대 18년이 선고됐다. 무기징역을 내려도 시원치 않다는 여론도 있었다. 전남의 한 섬 관사에서 교사를 성폭행한 혐의(강간 등 치상)로 구속된 피의자들이 6월 10일 전남 목포시 용해동 목포경찰서에서 검찰에 송치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사례1.

2016년 4월 A씨는 아들의 10대 여자친구를 성폭행한다. 여자친구가 목욕 후 수건으로 몸을 가린 채 아들 방에 있는 모습을 보고 욕정을 느껴 범행했다는데, 재판부는 그에게 1년6개월을 선고했다.

사례2.

2014년 3월 B씨는 경북에 있는 인적이 드문 체육시설에서 중학교 동창인 여성을 수차례 때리고 성폭행한다. 그는 이 여성을 수개월 전부터 만나왔는데, 여성이 자신을 그만 만나겠다고 하자 이런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그는 범행 장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이를 피해 여성에게 전송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그에게 1년6개월을 선고했다.

사례3.

2016년 5월, 신안 섬마을에 사는 주민 세 명이 교사를 집단 성폭행한다. 이들은 셋이서 술을 마시던 중 혼자 밥을 먹는 여교사를 보고 합석을 권유하고, 억지로 술을 먹여 취하게 만들었다. 여교사가 취하자 그들은 관사로 데려다 준다고 한 뒤 차례로 성폭행을 저지르고, 이 장면을 촬영하기까지 한다. 1심 재판 결과 이들은 각각 18년, 13년, 1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이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다음과 같은 댓글이 달린다. “강간을 했는데 겨우 1년6개월이라니?” 이는 최대 18년을 선고받은 섬마을 사건도 마찬가지다. 무기징역을 받아도 시원치 않다든지, 아예 사형을 시켜야 한다는 댓글도 꽤 눈에 띈다. 실제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왜 우리나라는 강간범에 대해 이렇게 후하느냐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조두순 사건이다. 한 여아의 일생을 무참히 짓밟은 대가로 그가 받은 형량은 겨우 12년. 그가 범행을 저지른 게 2008년이니 4년만 있으면 거리를 활보하는 조두순을 볼 수 있다.

판결을 내린 판사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판에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법이 그런 걸 왜 나만 갖고 그러냐고 했다. 판사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이 그 당시 유기징역의 상한은 15년이었고, 조두순이 만취 상태라고 주장했으니 어쩔 수 없이 심신미약에 의한 감형을 해줘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대한민국 형법에는 이렇게 돼 있다.

“제297조(강간)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이걸 보면 ‘겨우 3년?’이란 생각이 들지만, 이 3년도 제대로 선고되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다. 2015년 CBS 라디오에서 사회자인 정관용이 김경진 변호사와 나눈 대화를 보자.

 

정관용: 전체 평균으로 봐서는 2010년부터 올해 6월까지 (성범죄자의) 평균 실형 선고가 27.1%. 맞습니까?

김경진: 네, 그렇다고 합니다.

정관용: 그럼 기소돼서 재판까지 받는데 10명 중 7명 이상은 실형이 아니다. 이거 아닙니까?

 

재판까지 가는 성범죄가 전체의 5%에 불과한데 그 중 70%가 풀려난다니 머리가 띵하다. 훨씬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마땅할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도 풀려나는 비율은 차이가 없다.

“성범죄 신상정보 등록대상자의 44.2%가 집행유예, 22.1%가 벌금형을 받았고 징역형은 33%에 그쳤다. 범죄 유형별 집행유예 비율은 강간의 경우 34.9%에 달했다.”(언론 보도 인용)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길까? 김경진은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요약한다.

우선 우리나라 형법의 양형기준 자체가 외국에 비해 턱없이 낮다. 예컨대 미국에 사는 르네 로페즈라는 남성은 4년간 자신의 딸을 성폭행한 혐의로 법정에 섰는데, 그에게 선고된 형량은 무려 1503년이었다.

둘째, 국민과 법조인 사이에 인식의 괴리가 있다. 일단 우리나라 법정은 최협의설을 취하는데, 이건 가해자의 폭행과 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폭행으로 인정받는 게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청바지를 입은 여성에겐 강간이 인정되지 않았던 해프닝도 다 여기서 비롯됐다. 또 일부 판사들은 앞날이 구만리 같은 사람이 겨우 강간 때문에 징역형을 받아 전과자가 되는 것이 과한 처벌이라고 생각해 초범인 경우 벌금이나 집행유예로 풀어주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범죄자가 깊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피해자와 합의를 하고, 술을 마셨다고 우기기까지 하면 형량은 더 줄어든다. 위에서 예로 든 1년 6개월의 징역형은 그렇게 만들어졌는데, 사정이 이러니 가해자는 피해자로부터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동분서주하며, 이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가 발생한다. 밀양에 사는 여중생 2명을 수십명의 학생들이 성폭행했던 사건에서 피해자들은 합의를 해달라는 가해자 부모들의 성화에 시달려야 했고, 결국 다니던 학교에서 쫓겨나고 만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1Q84』에는 강간이 살인보다 더 나쁜 이유가 나와 있다. 정당방위를 위해서라든지, 전쟁에 나가서라든지 살인의 일부는 피치 못해 일어날 수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저질러야 하는 강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이건 소설에 나오는 여성킬러를 정당화하기 위한 작가의 궤변일 수도 있지만, 강간이 한 여성에게 평생 남을 트라우마를 준다는 점을 생각하면 작가의 말이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배우 송강호가 ‘살인의 추억’에서 부르짖었던 강간의 왕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단 국회의원들이 형량을 높이는 법을 만들자. 그리고 판사들은 엄격한 법 적용을 하자. 가해자의 미래보다 피해자의 미래를 먼저 생각한다면, 강간범을 집행유예로 풀어주는 일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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