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라이프 다루는 이모티콘서

여성은 ‘농땡이’, 남성은 ‘성실맨’

웹툰작가 김옥현 이모티콘

여자친구가 화내는 모습 희화화해

카카오톡(카톡) 이모티콘 오피스라이프 편의 주인공은 ‘카톡개’로 잘 알려진 프로도와 그의 연인 고양이 네오다. 오피스라이프 편은 카카오프렌즈의 커플 캐릭터를 통해 직장생활의 고단함을 그려낸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남성 캐릭터인 프로도는 직장생활이라는 주제를 잘 보여주지만, 여성캐릭터인 네오는 줄곧 주제와는 상관없는 모습들을 연출한다.

 

남성 캐릭터인 프로도는 직장생활이라는 주제를 잘 보여준다.
남성 캐릭터인 프로도는 직장생활이라는 주제를 잘 보여준다.

먼저 프로도를 살펴보자. 프로도는 컴퓨터 앞에서 눈이 충혈되도록 일에 집중하거나 스티브 잡스처럼 멋지게 프레젠테이션을 해낸다. 그는 회사 안에서 군기가 바짝 들어 있고, 야근과 고된 업무로 힘들어하거나 비몽사몽인 채로 눈도 뜨지 못한 채 출근한다. 상사에게 보고서로 깨지는 모습은 안쓰러움을 자아낸다. 프로도는 누가 봐도 현실에 있을법한 신입사원을 그대로 그려냈다.

 

여성캐릭터인 네오는 주제와는 상관없는 모습들을 연출한다.
여성캐릭터인 네오는 주제와는 상관없는 모습들을 연출한다.

반면 네오는 직장인으로서 가져야 할 성실함이 ‘0’에 가까워 보인다. 네오는 업무 시간에 온통 먹을 생각뿐이다. 업무시간에 일은 하지 않은 채 휘파람을 불며 자리를 정리하거나 퇴근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린다.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네로에게선 직장인의 책임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또 잘못을 웃음으로 무마하려는 모습은 군기가 바짝 들어 있는 프로도와 뚜렷하게 대비된다. 이외에도 네로의 행동들은 직장생활과는 별 관련이 없어 보인다. 사람들로 꽉 찬 지하철 안에서 샤넬백을 지키려 애쓰거나 매장에 진열된 명품백을 보며 행복해하는 모습, 머리에 롤을 말고 마스카라를 칠하거나 택배를 받고 기뻐하는 모습 등에선 오피스라이프라는 주제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해지는 대목이 있다. 왜 여·남이라는 성별에 따라 직장생활의 모습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일까. 바로 여기서 사회의 왜곡된 인식이 그대로 겹쳐진다. ‘여자는 업무시간에 딴 짓을 한다’ ‘항상 칼퇴를 지키려 한다’ ‘일을 잘 못한다’ 등의 뒤틀린 인식이 그것인데, 이처럼 근거 없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곤 한다. 이런 고정관념은 한 번 퍼지면 계속해서 확대 재생산되고, 이렇게 덧씌워진 부정적인 이미지는 웬만하면 잘 벗겨지지 않아 여성의 특성으로 아예 자리를 굳힌다.

구글이 지난 5월 내놓은 전문직 여성 이모티콘은 성차별이 담긴 카톡 이모티콘과 대비된다. 구글은 성평등 문제가 해소되길 바란다며 ‘일하는 여성’ 이모티콘 13개를 만들어 과학자, 의사, 간호사, 엔지니어, 농부, 요리사 등 다양한 직종의 여성 이모티콘을 발표했다. CNN머니에 따르면 구글은 “여성들이 다양한 직업군에 널리 분포돼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지금의 이모티콘은 (이러한 점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며 “성평등 문제가 해소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웹툰작가 김옥현이 내놓은 ‘강려크한 그녀들의 커플 톡’ 이모티콘은 남자친구에게 화난 여성 캐릭터를 희화화한다.
웹툰작가 김옥현이 내놓은 ‘강려크한 그녀들의 커플 톡’ 이모티콘은 남자친구에게 화난 여성 캐릭터를 희화화한다.

웹툰작가 김옥현이 내놓은 ‘강려크한 그녀들의 커플 톡’ 이모티콘은 여성비하를 품고 있다. 남자친구에게 화난 여성 캐릭터 옆에는 ‘뭐가 미안한데?’ ‘이제 나한테 관심도 없지?’ ‘오빠, 나 이러려고 만나?’ 등의 대사가 쓰여 있다. 그런데 이는 여성들이 마땅한 이유를 가지고 문제제기하는 것을 ‘예민하다’ ‘사소한 걸 가지고 귀찮게 군다’는 식으로 바라보며 여성을 조롱하는 사회적 시선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카카오톡 기본 이모티콘 중에서  ‘삐침’과 ‘부끄러움’을 표현하는 이모티콘은 여성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카카오톡 기본 이모티콘 중에서 ‘삐침’과 ‘부끄러움’을 표현하는 이모티콘은 여성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성의 ‘화남’은 곧잘 ‘예민함’이나 ‘삐침’으로 해석되고, 삐침의 감정은 오로지 여성의 것이 되어버린다. 카카오톡의 기본 이모티콘 중에서도 삐친 감정은 여성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여자는 감성적이어서 예민하고, 잘 삐친다’는 프레임을 덮어씌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부끄러움을 표현하는 이모티콘도 여성 캐릭터로 그려지며, 이는 ‘여성스러움’을 소극적이거나 순종적인 것으로 정의내리는 사회적 시선과 맞닿아 있다.

카카오톡은 어느새 우리 삶의 일부가 됐다. 카톡으로 업무를 보고,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모바일 시장조사 업체 와이즈앱이 지난 10월 국내 모바일 메신저 이용습관을 조사한 결과 카카오톡이 9개 주요 메신저의 총 사용시간 중 95%를 차지해 1위를 기록했다. 라인은 2%, 페이스북 메신저와 텔레그램 등은 1%에 그쳤다. 카톡은 이제 우리 일상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메신저가 됐고, 이모티콘은 때론 한 마디 말보다 더 효과적으로 의미와 감정을 전달해줘 날로 인기를 얻고 있다.

생활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카톡에서 소통의 도구로 쓰이는 이모티콘은 사람들의 인식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모티콘이라고 무시했다가 본인도 모르는 새 ‘여혐’ 코드에 물들 수 있다. 그러니 ‘기껏해야 이모티콘’이란 생각으로 가볍게 넘기지 않았으면 한다. 이제 이모티콘‘에도’ 문제의식을 갖고 책임감을 가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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