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느 고등학교에 강연하러 갔다. 학생들에게 물었다. “여기가 OO‘남자’고등학교 맞지요?” 학생들은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 “OO고등학교인데요.” 왜 거기에 굳이 ‘남자’라는 말을 붙이느냐는 투정이다. “그래요? 그럼 옆에 있는 학교는 뭐예요?” “OO‘여자’고등학교요.” 녀석들은 여전히 뭔가 풀리지 않는 유치한 퍼즐게임처럼 느끼는 것 같았다. “거기는 여학생이 다니는 학교니까 ‘여자’고등학교라면, 여기는 남학생들만 다니는 학교니까 ‘남자’고등학교가 맞지요?”

학생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표정, 말은 맞는 듯하지만 용납하기는 어렵다는 표정, 그럴 수도 있구나 싶은 표정 등이 섞였다. 왜 ‘여자’고등학교는 어색하지 않은데 ‘남자’고등학교는 불편하고 어색해할까? 익숙하다는 것,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는 것, 일상적이라는 것 등은 사실 왜곡과 편견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어떤 녀석은 나의 말에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냥 ‘OO고등학교’면 되는 걸 ‘쪽팔리게’ ‘남자’라는 불필요한 수식어를 붙일 필요가 있느냐는 거다.

여학생이 다녀서 ‘여자고등학교’면 남학생들만 다니는 학교는 ‘남자고등학교’가 맞다. 남녀공학 혹은 여남공학이면 ‘OO고등학교’라고 할 수 있다. 이게 그리도 부당하고 불편하며 어려운 일인가? 어떤 ‘굳이 필요 없는’ 수식어를 다는 것이 격하의 말인가? 그렇다면 왜 다른 이들에게는 그 수식어를 요구하는가? 여자들도 ‘여자’고등학교에 별로 어색해하지 않는 걸 보면 내가 조금 유별난 건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름은 결코 가볍게 여길 게 아니다. 그것은 정체성을 드러내거나 인식하는 중요한 방식이고 통로다.

‘여류’ 시인, 소설가, 작가 따위의 말도 나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럼 왜 ‘남류’ 시인, 소설가, 작가라는 말은 없는가. 그건 본디 남성의 영역인데 특별히 몇몇의 여성에게 그 영토의 일부에 출입할 권한을 부여한다는 의미나 의도가 아니고서는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해야 하는가. 명칭 하나 제대로 정돈하지 못하면서 양성평등이니 페미니즘이니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런 명칭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고 그런 명칭에 순응하는 것은 굴종이다. 일상적 용어에까지 그렇게 날을 세울 것까지 있느냐 핀잔하는 이도 있는데, 나는 그런 반박이 더 불쾌하고 불편하다. 물론 그렇게 핀잔하는 이들은 거의 다 남자들이다. 그러나 여자들까지 그런 견해에 동의하거나 묵인하는 걸 보면 절망스럽다.

학교의 이름이라서 특별히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 자라는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다.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고 자라야 한다. 그런데 알게 모르게 어떤 억압과 왜곡이 자연스럽게 여겨지도록 성장한다면 그것보다 반교육적인 것은 없다. 내가 ‘여자’고등학교가 있다면 ‘남자’고등학교라고 해야 옳다고 말했을 때 남녀 선생님들의 반응 모두 의외라는 건 동일했지만 남자교사들은 불편한 듯 웃고 여자교사들은 놀라움과 자괴감(?)의 기색이 역력했다. 아, 여전히 우리는 그렇게 길들여져 있구나 싶어서 씁쓸했다.

이름은 함부로 혹은 허투루 붙이는 게 아니다. 이름은 반복적으로 불린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 정체성이 정립된다. 한번 잘못 쓰면 그대로 굳어지고 여간해서는 바뀌기 어렵다. ‘원서동’이니 ‘원남동’이니 하는 동네 이름이 오래된 지명인 줄 착각하지만 그건 ‘창경원’ 서쪽과 남쪽의 마을이라는 뜻의 고약한 지명이다. 일제가 창경궁을 놀이터인 창경원으로 훼손하고 붙인 이름이다. 부끄럽고 화가 나는 이름인데 여전히 쓰고 있다.

학교의 이름도 일제 때 못된 의도로 혹은 무성의로 지어진 것이 많다. 익숙해지면 그걸 분별조차 해내지 못한다. 잘못된 이름은 죄다 뜯어내야 한다. ‘여자’고등학교를 없애든지 ‘남자’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잘못된 이름표 목록 점검해서 나쁜 명찰은 떼며 살아야겠다. 21세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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