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시 안막동에 있는 김락의 시댁 향산고택.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경북 안동시 안막동에 있는 김락의 시댁 향산고택.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거족적인 민족운동이었던 1919년 3·1운동에서 여성들은 큰 몫을 해냈었다. 여학교 단위의 만세운동은 3·1운동이 퍼져나가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기생과 여성농민·노동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여성들의 노력으로 1919년 4월 탄생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헌헌법에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이라는 내용이 명시될 수 있었다.

경북에서도 3·1운동사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여성들이 있었다. 임봉선·김락·윤악이·신분금·김정희 등이 바로 그들이다. 그 첫 장을 연 것은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 출신의 임봉선이었다. 신명여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재직 중이던 그는 3·1운동이 일어나자 50명의 학생을 이끌고 3월 8일 대구 서문 밖 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나섰다. 경북의 첫 만세운동에 여학생이 대거 참여했다는 점은 상당히 의미 있는 대목이라 할만하다.

3월 중순경엔 안동 하계마을의 김락이 만세시위에 나섰다. 『고등경찰요사』는 이 사실을 알려주는 유일한 자료다. 이 책에 따르면 김락은 3·1만세운동에 참여했으며, 그 이유로 수비대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실명에 이른다. 언제 어디서 만세를 불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3월 17일과 21일 예안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그의 나이는 58세였다. 60세를 바라보는 양반가의 여성이 만세시위에 참여한다는 것은 매우 위태로운 행보였다. 9년 전 시아버지 이만도의 단식 순국으로 일제의 매서운 눈초리가 한시도 그를 떠나지 않을 때였다. 그것을 알면서도 김락은 만세운동에 나섰고, 결과는 가혹했다. 그는 결국 두 눈을 잃고 이후 9년 동안 암흑과 고통 속에서 살다갔다.

 

애국부인회 활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출옥한 유인경 관련 보도기사. 아이를 안은 사람이 유인경(동아일보 1921년 9월 20일자).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애국부인회 활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출옥한 유인경 관련 보도기사. 아이를 안은 사람이 유인경(동아일보 1921년 9월 20일자).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남편의 뒤를 이어 독립만세운동에 뛰어든 여성도 있었다. 영덕의 신분금과 윤악이가 바로 그들이다. 1919년 3월 19일 영덕 지품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던 남편들이 체포되자 두 사람은 망설임 없이 만세시위에 나섰다. 3월 24일 지품면 원전동 장날에 사람들이 모이자 윤악이는 “우리들은 여자이지만 독립을 희망하며 한국 만세를 부른다”고 부르짖었다. 윤악이는 신분금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다가 붙잡혀 윤악이는 8개월, 신분금은 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혈서 깃발을 만들고 혼자서 독립만세를 외친 여성도 있었다. 영천의 김정희는 만세시위 소식을 듣고, 4월 12일 밤 손가락 끝을 잘라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혈서 깃발을 만들었다. 이튿날인 4월 13일 김정희는 이 깃발을 들고 과전동에서 창구동까지 행진하며 만세를 불렀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영천경찰서에 근무하던 동생의 설득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모진 고문과 회유에도 끝내 굴하지 않았다. 대구로 압송되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김정희는 결국 징역 8개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서울에서 3·1만세운동에 참여한 여성도 있었다. 영양출신의 남자현과 대구출신 기생 정칠성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밖에도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숱한 여성들이 만세현장에 있었다. 이들은 모두 조국광복을 위해 만세운동에 나선다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스스로 떨쳐 일어났다. “우리들은 여자이지만 한국의 독립을 희망하며 한국 만세를 부른다”고 주창했던 윤악이의 부르짖음은 조국광복이라는 큰 뜻을 이루기 위해 앞장서서 나아갔던 여성들의 모습을 대변해준다.

3·1운동 직후 여성들의 민족운동은 더욱 활발해졌다. 비밀리에 항일단체를 조직해 독립운동에 나서기도 했는데, 경북에서는 대한민국 애국부인회 대구지부장으로 활약한 유인경이 있다. 이를 시작으로 1920년대에는 다양한 방법과 인식을 기반으로 민족 문제에 앞장선 여성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3·1운동은 그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맹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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