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 성폭력 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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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초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전교조 경북지부, 경북도교육청 등

의 홈페이지에 ‘영주여고 교사 성추행 사건’이 익명으로 올라오기 시작했

다. 내용인즉, 경북 영주여고가 서울의 자매학교와 함께 가진 간부수련회에

서 학생부장인 강모 교사가 한밤중에 2학년 학생 2명을 자신의 숙소로 불러

술을 따르게 하고 술에 취한 채 음담패설을 늘어놓다가 학생들이 나가려고

하자 1학년 학생을 불러오게 했다는 것이다. 2학년 학생들이 방문 앞에서

기다리자 안에서 이불을 깔라는 말이 들리면서 불이 꺼져 불안해진 학생들

이 방으로 들어가 1학년 학생을 데리고 나왔다는 것이 사건의 전말이다.

익명의 제보자는 학교측이 이 일을 무마시키기 위해 강모 교사를 휴직시

켰으며 교육청에도 신고하지 않았다면서 비난했다. 하지만 사실 여부를 확

인할 수 없는 인터넷상의 메아리로 끝날 것 같았던 이 사건이 지역신문에

실리면서 경찰이 즉각 보도수사에 나서자 여파가 커지기 시작했다.

경찰은 8월 24일 강모 교사를 구속하고 이 사건을 성추행으로 결론지었

다. 정기섭 담당 경찰관은 “새벽 2시 40분에 미성년자인 학생을 자신의 숙

소로 불러 팔베개를 하고 잠을 자자고 말했다는 것은 성추행으로밖에 생각

될 수 없다”고 밝혔다.

경북도 교육청도 한 학부모의 민원서류를 접수한 8월 중순부터 조사에 들

어갔으며 가해자가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당연퇴직으로 처리돼 5년간 복

직이 불가능해진다.

또한 성폭력에 관한 법률상 18세 미만의 사람을 보호하거나 교육·치료하

는 시설의 책임자 및 관계종사자는 성폭력에 대한 신고의무가 있기 때문에

학교장도 책임을 피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학교측은 이 사건을 은폐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과 합의를

보고 해결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간부수련회에서 돌아온 2학년 학생들

이 주축이 되어 해당 교사를 내보내라는 요구를 했고 학교측은 이를 받아들

여 강모 교사가 낸 휴직계를 받고 내년 2월말에 타학교로 전근시키는 것으

로 합의를 마쳤다는 것이다. 경력에 아무 하자 없이 전근을 갈 경우 또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는 “잘 몰랐다”는 답변만이 돌아왔

다.

이번 사건은 학생들이 당당하게 처벌을 요구하고 인터넷에 발빠르게 올라

온 제보와 민원으로 도교육청이 경찰보다 먼저 조사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제대로 해결되지 못해 형사 처벌로 넘어가는 오점을 남겼다.

가장 큰 문제점은 일차적으로 피해자가 신고를 기피한다는 점과 이차적으

로 학교와 당국이 사건을 축소·은폐하는 경향이 짙다는 점이다. 피해자가

학생일 경우에는 더더욱 신고가 어려워진다. 전교조의 백영애 여성국장은

“대부분은 묻혀 있어요. 학생은 의식도 아직 갖추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자기 권리를 찾기 힘듭니다”라 말하며 미해결로 끝나버린 학내 성폭력 사

건이 매우 많다고 전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는 작년 한 해 동안 70건이 넘는 교사-학생간 성폭력

이 접수됐다. 상담소의 하은주 간사는 학교가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일반폭력은 민감하게 회피하려고 하지만 성폭력에는 소극적으로

대처합니다. 두 사람간의 사적인 일일뿐 학교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죠”라고 진단한다.

피해자가 교사일 경우에도 결과는 다르지 않다. 작년 겨울, 서울사대부중

교장이 여교사들에게 게임에 지면 옷을 벗는 벌칙을 주는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성희롱 사건도 국립중학교 교장이라는 직위 때문에 몇 개월을 끌다

결국 아무 징계 없이 과학교육원으로 이직하는 것으로 결판이 난 적이 있

다. 인천의 ㅇ고등학교에서는 60대 남교사가 초임여교사의 반에 들어가 학

생들에게 “너희 담임은 가슴이 작다”는 등의 발언을 해 당사자인 여교사

가 공개사과와 징계를 요구했으나 인천시교육청은 지난 7월 불문경고라는

매우 경미한 처벌로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관계자들은 무엇보다 인식이 부족한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영주여고와

같은 경북지역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조석옥 교사는 “학교의 직무유기죠.

신고의무를 모르기도 하고 교사에게 성희롱 예방교육도 안 하는 학교가 많

아요. 물론 학교명예를 우선시하거나 성폭력에 관해 학부모들이 너무 방어

적인 탓도 있습니다”라면서 자신도 학교에서 한 번도 예방교육을 받은 적

이 없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작년 7월부터 시행된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령’에

따른 업무처리요령을 각 시·도교육청을 통해 각급학교에 전달했었다. 하지

만 이 처리요령에 따라 연 1회 이상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성희롱 및

남녀차별교육 고충상담원을 둔 곳은 많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심지어 본

적도 없다는 교육관계자도 있는 지경. 아무리 법을 만들어도 적극적인 인식

의 변화가 없는 한 학교라는 단절된 ‘섬’을 움직이는 것은 여전히 요원한

일이다.

[이신 지영 기자 skyope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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