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여성인권센터와 성매매문제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한국청소년성문화센터협의회, 장애여성공감 등 여성단체들이 5월 16일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만13세 지적장애 소녀를 성매수한 남성에게 “손해배상책임이 없다”는 법원 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십대여성인권센터와 성매매문제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한국청소년성문화센터협의회, 장애여성공감 등 여성단체들이 5월 16일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만13세 지적장애 소녀를 성매수한 남성에게 “손해배상책임이 없다”는 법원 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7세 지능을 가진 만13세 지적장애아를 성매매에 이용한 성매수자에게 배상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해 국민적 공분을 샀던 서울서부지방법원 1심(신헌석 판사) 판결이 여성단체들의 노력 끝에 다행히 뒤집혔다.

서울서부지방법원 민사2부(이인규 부장판사)는 28일 지적 장애인인 김모양과 김양의 부모가 양모씨를 상대로 3200만원의 위자료와 치료비를 배상하라며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1100만원을 원고측에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여성신문은 앞서 ‘여성의 눈으로 본 법정’을 통해 서울서부지법 판결이 갖는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이른바 ‘떡볶이 화대’ 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에서 법원은 소녀를 성적으로 착취한 성인 남성들에게 가벼운 형을 선고하고, 심지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기각해 국민적 공분을 샀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2014년 6월 피해자 A양은 엄마의 휴대폰을 갖고 놀다 떨어뜨려 액정이 깨지자 야단맞는 게 두려워 가출을 결심했다. A양은 또래보다 지능이 떨어져 학교에서도 자주 왕따 경험이 있었다. 

갈 곳 없던 A양은 휴대폰의 친구찾기 앱을 통해 ‘가출함, 재워줄 사람’이라는 방을 만들었다. 양씨가 A양에게 연락해왔고, 그를 따라 간 모텔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첫 성경험이었다. 이후 채팅앱을 통해 만난 성인 남성 10여 명이 아이를 성폭행했다. 이중 가해자 김모씨는 아이를 차에 태워 지방으로 데리고 간 후 모텔에 투숙해 성폭행했다.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5월 16일 서울서부지법 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한 후 항소장을 제출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5월 16일 서울서부지법 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한 후 항소장을 제출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A양은 만신창이가 됐다. 엄마가 아이를 발견했을 당시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다. 엄마조차 못 알아봤다. 심각한 우울 증세를 보였고, 칼로 자해를 시도했다.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해 장기간 치료를 받았다. 피해자의 엄마는 “내 딸의 지능이 7세 수준인데 아무리 가출한 애라 해도 성인 10여 명 중 단 한 명도 부모에게 연락하지 않고 되레 성폭행했다니 기가 막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가해자 양씨와 김씨는 모두 아동·청소년의 성보호를 위한 법률 제13조(성매수 등) 위반으로 기소됐다. 첫 번째 사건의 가해 남성은 미성년자에 대한 유사성행위가 인정돼 벌금 400만원이, 두 번째 사건의 가해 남성은 미성년자를 유인하고 간음한 행위가 인정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돼 확정됐다.

이 사건 피해자와 법정대리인은 가해자들에게 정신적 피해로 인한 위자료와 그 치료를 위해 지출한 병원비를 청구했다. 이에 대해 서울서부지방법원 1심 재판부는 양씨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김씨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에는 500만원의 위자료를 인정해 서로 다른 판결을 내렸다. 서울서부지법 민사7단독(하상제 판사)은 청구한 배상액 일부를 인정하는 승소 판결을 내렸지만, 서울서부지법 민사21단독(신헌석 부장판사)은 성매매 대상이 된 청소년(‘대상청소년’)을 자발적 성매매 행위자라며 피해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패소 판결한 것이다.

지적 능력이 7세 수준에 불과하며 의제강간이 인정되는 나이인 만13세를 겨우 2개월 지난 해당 아동청소년은 자발적 성매매 행위자라서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판결이었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피해자가 지적장애아인데도 시대에 역행하는 반인권적 판결이 나왔다. 이는 다분히 성범죄자 중심의 판결”이라며 “현행 아청법은 성매매 대상이 된 아동청소년을 피해자로 보지 않는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는 동의 여부를 떠나 성착취 범죄로 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재판부의 판결이 엇갈린 것은 성매도자가 미성년자일지라도 청소년 성보호법상 대상청소년으로 규정돼 피해자로 인식되지 못하는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피해자가 아니기 때문에 가해자의 불법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따라서 민사상의 손해배상청구권 역시 인정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5월 16일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만13세 지적장애 소녀를 성매수한 남성에게 “손해배상책임이 없다”는 법원 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5월 16일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만13세 지적장애 소녀를 성매수한 남성에게 “손해배상책임이 없다”는 법원 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그러나 아동·청소년의 성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청소년 성보호법이 미성년자의 성을 산 성매수자를 법적으로 처벌하면서도 범죄 대상이 된 미성년자는 피해자로 보지 않는 것은 모순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규정이 미성년자의 성매매가 계속 늘어나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김씨 판결에서는 아동·청소년이 성적자기결정권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않았고 사회적 약자라는 점, 나아가 이 사건의 원고가 가진 특수성을 고려해 가해자의 불법성을 부인할 수 없다고 봤다.

또 양씨에 대한 판결에서는 청소년 보호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인용하면서 청소년 성보호법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와 건강한 성장을 보호법익’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짚으면서도 그것을 사회적·공익적인 측면으로만 한정한 반면 김씨에 대한 판결에서는 청소년 보호법의 보호법익은 선량한 성풍속에 그치지 않고 개별적인 아동·청소년에 대한 보호도 그 보호법익으로 본 점이 두 판결의 결과를 다르게 했다.

피해자를 지원해온 십대여성인권센터는 지난 5월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규탄 회견 후 176개 여성·인권단체의 이름으로 항소장을 냈다. 다행히 서울서부지법 판결이 뒤집혀지면서 그 노력이 빛을 보게 됐다. 십대여성인권센터는 28일 기자들에게 메일을 보내 “그동안 관심을 갖고, 함께해준 많은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이후에도 계속되는 소송 결과를 공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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