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부조화 패러다임’ 처음 제시

욕구를 줄일 수 없다면

삶을 조율해 대안 찾아야

한국적 가족주의 큰 걸림돌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이정실 사진기자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이정실 사진기자

“고령화는 출산과 사망의 부조화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고, 양극화는 성장과 분배, 정치 위기는 참여와 권한에서 온 부조화 때문이에요. 최근 문제가 된 최순실 사태도 결국 공적권력과 사적권력의 부조화로 볼 수 있죠.”

‘한국 사회학의 석학’ 김문조(66·사진) 고려대 사회학과 명예교수가 ‘부조화 패러다임’(Mismatch Paradigm)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한국 사회의 문제를 진단할 것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한국이론사회학회와 사회학회 회장을 지내는 등 이론사회학과 문화사회학에 정통하다는 학계의 평판을 듣는다. 서울대 화학과 졸업했으나 평소 관심사였던 사회학으로 진로를 틀고 1982년부터 33년간 고려대 강단에 섰다. 지난해 정년퇴임을 하면서 교단에선 내려왔지만 그는 여전히 날카로운 눈으로 한국사회에 메스를 들이댄다.

부조화 패러다임은 이제껏 세상에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새로운 관점의 개념틀이다. “남들 다하는 얘기에는 흥미가 없고 틈새의 새로운 생각들에 호기심을 느낀다”는 김 교수는 부조화 패러다임으로 한국 사회 10대 과제를 △고령화는 출산과 사망 △저성장은 생산과 재생산 △양극화는 성장과 분배 △취업난은 교육과 직업 △정치 위기는 참여와 권한 △생태 위기는 개발과 보존 △윤리적 위기는 사적 윤리와 공적 윤리 △회복탄력성은 성공과 실패 △문명충돌은 지역성과 세계성 △유(類)적 위기는 인간과 비인간 등의 부조화로 진단했다. 한국사회가 당면한 도전과제들은 어떤 부조화를 겪고 있으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김 교수에게 사회갈등의 원인과 그 해법을 들어봤다.

 

-미래포럼의 정기포럼에서 부조화 패러다임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한국사회 문제를 들여다봤다. 부조화 패러다임을 떠올리게 된 배경은.

“부조화 패러다임은 국내외에서 한 번도 꺼낸 적이 없는 얘기일 것이다. 새로운 개념이나 개념틀을 제시하는 게 부담스럽고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다. 그렇지만 최근 불평등 연구를 하면서 느낀 점이 각계각층에서 여러 대안을 내놓고 있지만 이 대안이 사회에서 잘 작동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그 뿐만 아니라 여러 학자들이 내놓는 해답이라는 것도 만족스런 답을 주지 못해 왔다. 사회과학자로서 고민을 해 오던 차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내놓은 논문과 책을 훑어보면서 비슷한 개념을 설명한 것을 보면서 부조화 패러다임에 대해 떠올리게 됐다.”

 

-한국사회가 당면한 사회과제를 부조화 프레임으로 제시했는데, 대부분 양쪽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사회갈등의 원인이 되는 것들이다. 부조화라는 개념은 낯설지만 내용을 보면 꾸준히 문제제기되던 것들이기도 하다.

“현상은 똑같은데 동일한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면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 어차피 같은 현실을 새롭게 해석해서 뭐하냐는 의문도 있을 수 있다. 거기에 대한 제 대답은 ‘새롭게 바라보면 새로운 해법과 방안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빈곤 패러다임’이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인식틀로 쓰였다. 여전히 지배적인 이론이나 해석은 상대적 빈곤론이다. 대학생들의 점심시간 소비 행태를 예로 들어 보자. 요새 심각한 취업난 때문에 졸업도 유예하고 스펙을 쌓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학생들이 많다. 하지만 이들은 점심식사를 위해 5000~6000원의 밥을 먹은 뒤에 비슷한 가격의 커피를 마시는 게 일과다. 이들에게 왜 비싼 커피를 사 마시느냐, 사치다, 커피는 자판기 커피로 대체하고 밥도 더 저렴한 것으로 대체하면 경제적으로 타격도 덜 받을 것 아니냐는 비판을 하는 이들도 있다. 생계부터 채우고 난 뒤에 다른 것을 채우라는 것이 상대적 빈곤론이다. 반면, 부조화 패러다임은 이미 보편적인 일과인 상황에서 두 가지 중 하나를 내칠 순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가령, 조금 더 저렴한 이디야커피를 먹는 식이다. 새로운 생활전략으로 삶을 조율하는 것이 바로 부조화 패러다임의 해법이다. 개인의 소비패턴이 달라지면 비즈니스 모델이 달라질 것이고 일상생활부터 산업구조, 사회도 바뀌게 된다.”

 

-사람들이 ‘가성비(가격대비성능)’를 따지는 것도 같은 맥락인가.

“이제까지 빈곤 패러다임에선 가진 것을 나누거나, 평준화하거나, 복지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박탈감을 완화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또는 경제성장을 통해 시장의 파이를 확장시켜 저소득층을 위한 혜택을 늘리는 식의 해법이 제시돼왔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 현실을 보자. 우리나라의 경제지표는 세계 10위권 안팎이다. 경제적 신용평가도 높은 편이다. 그러나 자살률과 범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결혼비율을 비롯해 행복도 같은 주관적 삶의 질은 세계 30~40위권 밖에 되지 않는다. 경제지표는 높은 편인데 삶의 질은 떨어지는 것, 즉 사회적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것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지고 있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이정실 사진기자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이정실 사진기자

-현재 매체지와 학술지의 빅데이터를 분석 작업 중이다. 한국사회 주요 관심사가 매체지와 학술지에서 상반되게 나타났다. 매체지는 성장과 생산, 경쟁을 말하지만, 학술지는 행복과 재생산, 상생을 강조했다.

“11년간 네이버 포탈에 실린 290개 언론사의 뉴스기사(매체지)와 같은 기간 한국연구재단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에 등록된 연구논문(학술지)의 주제어와 연관어를 주출해 한국사회의 주요 관심사를 파악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 분석한 결과를 보면 양쪽의 주요 키워드에서 현격한 차이가 드러난다. 여론을 보여주는 매체지의 주요 키워드는 경제, 성장, 생산, 경쟁, 집단인 반면에 학술지는 사회, 행복, 재생산, 상생, 개인이 강조된다. 여기서도 부조화 문제가 재확인 되는 것이다. 이 결과를 놓고 보면,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슈는 국가와 대통령이 기업 활동을 적극 지원해 돈벌이도 하고 국력을 강화해서 본인도 떵떵거리며 잘 살아야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전문가들은 신자유적인 경제 체제 아래 사람들은 치열한 경쟁에서 우울과 불안 같은 정서적인 위기에 처해있는 것을 가장 큰문제로 본 것이다. 이미 우리는 행복과 만족, 상생과 개인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을 바란다. 적당한 노동시간으로도 국내총생산(GDP)을 유지할 수 있어야 정상국가 아닐까.”

 

-지금을 뉴노멀(시대변화에 따라 새롭게 정의되는 기준) 시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뉴노멀에서 뉴는 어떤 ‘뉴(New)’란 말인가. 성장시대에서 재성장시대로 가는 것도 뉴노멀이라고 할 수 있고 시장의 파이 키우는 것도 뉴노멀이라고 부를 수 있다. 또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는 것도 뉴노멀이라고 할 수 있다. 뉴노멀을 정의하는 그 시점에 서있는 것이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재조화론(Rematching)을 제시했다. 다시 조화롭게 하자는 얘기로, 조화를 이루기 위해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우리가 당면한 도전과제들을 재조화로 접근할 때 건강한 미래 사회를 열어나갈 실천적이며 참신한 대안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영합 논리로 귀결되곤 하는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 모형에 ‘학습(learning)’을 포함해 확장한 ‘WLL’(Work-Life-Learning) 삼중나선형 선순환 전략이 필요하다. 리매칭(재조화)이라는 것은 가장 근본이 욕구를 재정의하는 것이다. 덜 일하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욕구가 커지고 있다. 지도자들은 이 욕구의 방향을 빨리 읽고 바람직한 삶의 방향에 대해 많이 고민해야 한다.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빠른 추격자)가 아니라 퍼스트무버(first mover, 선도자)로 나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대안적인 삶을 꿈꾸는 이들이 늘고 있지만 그런 삶을 선택하는 게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가장 결정적인 해결 고리는 소위 친족적 기대감을 끊는 것이다. 한국적 가족주의를 지양할 때가 됐다. 지방에 행복도시를 건설해 공공기관을 이전했지만 남성 직원들은 홀로 이사를 하고 국내 기러기 삶을 산다. 퇴직 후 귀농을 해도 남편만 밭을 일군다. 가장 큰 이유는 자녀교육이다. 좋은 대학에 나와야 좋은 일자리를 얻는다는 교육에 대한 환상 때문이다. 외국에선 자녀를 대학에 보내면 큰 간섭 없이 남처럼 지낸다. 반면, 우리는 대학까지 가르치고 졸업 후에는 해외연수도 보내야 하고 취직도 지원해야 한다. 결혼할 때 집도 사줘야 하고, 자녀가 아이를 낳으면 육아도 도와줘야 한다. 여전히 전통적 가족주의가 강하다보니 선행교육, 유아교육, 태교까지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풀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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