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폭력·여성혐오에 반대해 수천 명 거리로...아르헨티나 사상 첫 여성 파업 시위

“젠더폭력 더는 용납 못해” 세계 각지에서 연대 시위 열려

아르헨티나 전역에서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이 19일(이하 현지 시간) 아르헨티나 사상 첫 파업 시위를 벌였다. ‘검은 수요일(Miercoles Negro)’ 시위 참가자들은 이날 한목소리로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폭력’을 규탄하고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를 주문했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은 오후 1시부터 한 시간 동안 업무와 학업 등을 중단하고 거리로 몰려나왔다. 젠더폭력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검은 옷을 입은 시위대는 ‘니우나메노스(Ni Una Menos·한 명도 잃을 수 없다)’ ‘비바스노스케레모스(Vivas Nos Queremos·우리는 살고 싶다)’등의 구호를 외쳤다. 남편이나 애인에게 살해당한 여성의 가족, 젠더폭력 피해 생존자들도 대열에 합류했다. 정확한 참가자 수는 추산하기 어려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만 최소 수천 명이 참여해 곳곳의 광장을 가득 메웠다고 부에노스아이레스 헤럴드는 전했다. 

여성들을 분노케 한 것은 이달 초 16세 소녀 루시아 페레스가 남성들에게 강제 마약 투약, 성폭행과 고문 끝에 살해당한 사건이었다. 용의자 세 명이 체포됐으나, 이 사건을 맡은 검사는 “이것보다 더 끔찍한 사건을 본 적이 없다”며 “비인간적인 성폭력”이었다고 말했다. 

살해당한 여성의 가족들도 여성폭력에 반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피해자의 친오빠 마티아스 페레스는 지난 18일 아르헨티나 시민들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에 이렇게 썼다. “이번엔 제 동생이었지만, 다음은 당신 차례일지 모릅니다. 당신이 이 세계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젠더폭력에 희생될 수도 있겠지요. 우리는 함께 강해져야 하고, 거리에 나가서 그 어느 때보다도 소리높여 외쳐야 합니다. ‘한 명도 잃을 수 없다’고요.” 

 

 

19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올라온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검은 수요일(Miercoles Negro)’ 파업 시위 모습.
19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올라온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검은 수요일(Miercoles Negro)’ 파업 시위 모습.

아르헨티나에서는 2007년 말 여성 대통령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가 집권했으며, 2012년 ‘페미사이드(여성살해·femicide)’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여전히 심각한 젠더폭력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1월~5월까지 275건의 페미사이드 사건이 발생했고, 지난 7년간 1808명의 여성이 남성에게 살해당했다. 약 30시간마다 여성 한 명이 살해당하고 있는 셈이라고 아르헨티나 여성단체인 카사 델 엔쿠엔트로는 설명했다. 범인은 주로 남편이나 남자친구, 혹은 가족·친척이다. 

“우리는 ‘이제 그만!’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남성들의 폭력에 순응하던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며, 우리 여성들 모두가 겪어야 했던 여성혐오와 여성폭력을 더는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시위를 주최한 여성들의 말이다. 시위대는 페미사이드에 대한 처벌 강화, 통합적인 성교육과 성평등 교육,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 법적 구제 절차 마련, 생계가 어려워 폭력 신고를 하지 못하는 여성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 등을 요구했다.

 

셜리 맨슨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셜리 맨슨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검은 시위’의 물결은 SNS를 타고 세계로 퍼지고 있다. 19일 멕시코, 볼리비아, 칠레, 파라과이, 우루과이 등에서도 젠더폭력에 반대하는 연대 시위가 열렸다. 스코틀랜드 출신 가수·배우이자 얼터너티브 록밴드 ‘가비지(Garbage)’의 리드 보컬인 셜리 맨슨도 페이스북에 #MiercolesNegro 해시태그와 함께 ‘여성혐오와 성폭력에 맞서는 아르헨티나인들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는 #MiercolesNegro #NiUnaMenos 등 해시태그를 붙인 지지·연대 글이 세계 곳곳에서 올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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