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페미니스트, ‘페미니즘’을 말하다

손아람 “개념과 단어에 매몰되지 말아야”

오찬호 “군대 논리 통용되는 사회는 비정상”

유민석 “페미니즘은 언어를 찾는 과정”

 

(왼쪽부터) 사회학자 오찬호, 철학도 유민석, 소설가 손아람 ⓒ이정실 사진기자
(왼쪽부터) 사회학자 오찬호, 철학도 유민석, 소설가 손아람 ⓒ이정실 사진기자

좌담회 참석자(가나다 순)

· 손아람

소설 『소수의견』 , 『너는 나다: 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한다』(공저)를 펴낸 작가이자 힙합그룹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의 랩퍼로도 활동한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영화 ‘소수의견’의 각본도 썼고 한겨레 월간지 ‘나들’의 인터뷰어로도 활약했다. 최근 JTBC 예능 프로그램 ‘말하는대로’에 출연해 ‘남자가 연애에 실패하는 이유’라는 주제를 자연스럽게 한국 사회의 성차별 문제로 끌고 가며 해법을 제시해 큰 호응을 얻었다.

· 오찬호

경쟁 논리에 잠식당한 이십 대와 그들을 둘러싼 사회 환경을 비판적 시각에서 파헤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취업사관학교’로 전락한 대학의 현실을 비판한 『진격의 대학교』를 쓴 사회학자. 2007년부터 전국의 11개 대학 및 대학원에서 강의를 하며 여러 학생들을 만났다. 최근 펴낸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를 통해 우리 주변에서 매우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한국 남자’들의 여성 인권이 신장되는 현실을 견디지 못하는 마초성과 가부장제의 문제를 고발한다.

· 유민석

주디스 버틀러의 『혐오발언』 역자. 동국대학교 철학과에서 「혐오 발언에 관한 담화행위론적 연구: 랭턴과 버틀러의 이론을 중심으로」로 석사학위 논문을 받았으며, 현재 서울시립대 철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메갈리아의 발화에 관한 연구논문 「혐오 발언에 기생하기: 메갈리아의 반란의 발화」를 비롯해 혐오 발언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글들을 썼다. 페이스북에서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으로 인기있는 ‘페페미’(페이스북 페미니스트)다.

 

-세 분은 페미니스트인가.

오찬호(이하 오)-“페미니스트다. 하지만 학교 강연에선 간혹 전략적으로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이라는 유명한 수사를 사용하기도 한다. 페미니즘은 다른 학문과는 다르게 목숨을 건 투쟁같은 역사가 있고 척박한 환경에서 무시당하며 학문을 해 온 분들이 계신다. 제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역설적으로 페미니스트임을 부정하기도 한다.”

손아람(이하 손)-“페미니즘에 대해 말하지만 페미니즘,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는 의식적으로 쓰지 않으려고 한다. 지난해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운동을 보면서 ‘이런 운동이 될 정도면 페미니즘은 아주 위기에 처했다는 위기의식이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 ‘나는 무엇이다’라는 규정은 페미니즘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잘 쓰지 않는다. 개념적인 범주로 자기를 규정하는 것보단 직접 무엇에 대해 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무엇이라고 한마디로 정리하는 대신 어떤 사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하는게 더 효과적이라는 거다.”

유민석(이하 유)-“페미니스트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편이다. 페미니스트에 부여하는 의미는 개인마다 다를 것이기 때문에 완벽한 이상이 있어서 거기에 미달하면 부끄러워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운동은 페미니스트에 대한 낙인에서 벗어나 자부심을 갖고 정체성을 표현한 좋은 방식이다.”

 

소설가 손아람 ⓒ이정실 사진기자
소설가 손아람 ⓒ이정실 사진기자

-페미니스트를 선언하는 남성이 적을뿐더러 남성으로서 페미니즘을 말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기본적으로 성차별 구조에서 자유롭지 않은 한국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느냐는 의문을 던지는 이도 있는데.

-“메갈리아 전후 1~2년간 남자가 페미니스트 될 수 있느냐, 없느냐 같은 원론적인 논쟁이 이어졌다. 낙태나 비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더 다양하고 직접적인 쟁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쪽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무엇이 페미니즘이냐, 누가 페미니스트냐에 머물 필요가 없다. 몇년 전 좌파진영에서도 좌파냐 아니냐, 좌파면 몇 등급 좌파냐 같은 논쟁이 있었다. 이런 논쟁이 불필요하다는게 아니다. 이미 페미니즘 운동의 발화점으로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고 이제 남성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느냐를 묻는 그 단계는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했고, 여성학도 다루다보니 별다른 용기없이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었다. 평범한 커뮤니티에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유리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반발없이 활동할 수 있었다. 사실 페미니즘도 딱 한 종류가 있는게 아니지 않은가. 종류가 많고 결도 달라지는데 ‘남자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느냐’라는 질문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이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이용되는데, 그 기준이 모호한 것 같다. 페미니즘은 그동안 텅빈 기표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여성도 누구나 페미니스트는 아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정체성에 대한 존재론적 한계도 있지만 남성도 충분히 페미니즘을 지향할 수 있고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

-페미니즘에 대한 높은 관심을 일부 남성은 자신들을 향한 공격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때는 ‘나는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다’라며 시위를 벌였고, 넥슨 티셔츠 사건 때는 정의당을 탈당하고, 웹툰 작가들의 지지선언이 이어지자 ‘예스컷 운동’을 벌였다.

-“정의당이 넥슨의 ‘게임 성우 교체’를 비판한 문화예술위원회 논평을 철회한 사건은 누가봐도 ‘겁 먹었다’는 것을 보여줬다(당시 정의당 문화예술위원회가 논평을 내자 메갈리아(메갈) 옹호냐는 비판이 나오면서 남성들의 탈당이 이어졌다). 남성들이 왜 이렇게 반감을 드러내는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메갈은 처음엔 미러링을 통해 여성 혐오 표현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시작했는데 문제는 눈에 보이는 혐오표현의 색출에만 운동이 갇혔을 때 스스로 적극적 혐오표현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믿는 남성들에게 쉽게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혐오는 보통 의식적으로 갖는 감정인데, 남성들은 무의식적으로 차별을 하면서도 의식적으로는 혐오하고 있지 않다고 여긴다. 강남역 사건도 정신병자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나는 여성혐오도 여성살해도 하지 않는데 왜 싸잡아 비난당해야 하냐는 식으로 반응한 것이다. 메갈의 언어 전략에 억울하게 자기까지 엮여 표적이 됐다는 식으로 느끼는 거다. 남성 게이머들이 넥슨 사건에 집단적으로 움직인 것도 ‘나는 여성을 혐오하지도 않고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단지 게임의 표현에 문제가 있다고 게임을 하는 내가 여혐(여성혐오)이냐’는 사고의 흐름이 깔려 있는 듯하다.”

-“지금은 발화 상태의 운동이고 맹아적이며, 메갈 집단은 체계적인 운동도 아니다. (메갈의 미러링 표현 같은)특정한 언어 표현은 눈에 보이는 징후일 뿐이다. 제도적, 구조적 차별이 있기에 이런 표현을 통해 차별이 드러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차별이 없어진다고 해서 모든 차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게 수순같다는 생각이다.”

-“사건 원인인 넥슨 게임(클로저스)도 문제였지만 게임업계에서 더 심각한 차별의 문제는 왜 여성을 위한 게임이 제작되지 않느냐는 거다. 남성의 성적 판탄지와 욕망을 채우는 게임은 많다. 그런데 여성 게임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동물을 키우고, 꽃잎을 줍고 작물을 키우는 것 뿐, 여성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게임은 없다. 영화산업도 마찬가지다.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는 투자심사에서 부터 가로 막힌다. 투자기관은 모니터를 하면서 남자주인공을 넣거나, 여자주인공의 노출을 요구한다. 게임 속 눈에 보이는 혐오 표현에 대한 문제제기는 발화점은 됐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혐오표현의 문제에만 집중하면 전체 구조에서 훨씬 더 큰 그림을 놓칠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도 살펴야 한다.”

-“일련의 사건을 포함해 메갈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시사주간지 ‘시사인’을 절독한 남성들의 집단적인 행동에서 큰 무게감을 느낀다. 결국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문제다. 사실상 그게 사회적 환경을 만들었다. 이건 중학교 3학년 수준에서 토론해야 하는 문제다. 외국에선 중학생들이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가 늘어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주제로 토론한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수학의 인수분해 수준도 안되는 거다. 여성 영화를 확대하는 방법을 두고 찬반토론을 해야 하는데 지금 한국 수준은 토론 자체를 역차별이라고 말하는 꼴이다. 너무나 기초적인 수준이다.”

 

사회학자 오찬호 ⓒ이정실 사진기자
사회학자 오찬호 ⓒ이정실 사진기자

-오찬호 선생님은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에서 한국의 남성성을 만드는 중요한 관문으로 군대를 꼽았는데.

-“사회가 발전하면 군대적 가치가 희석되거나 퇴행해야 하는데, 군대 문화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보상심리는 커졌다. 군대에서는 군대만의 논리가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제대 후에는 그런 논리가 소용없어야 정상적인 사회다. 남자들은 군대를 욕하면서도 군대에서 배운대로 말하는 유체이탈 화법을 쓴다. 최근 한 라디오 교양 프로그램에 나가 이런 얘기를 했더니 ‘진정한 성평등은 여자도 군대 가는 것 아니냐’는 댓글이 실시간으로 달리더라. ‘여자도 군대가라’는 식의 고통의 평준화가 어떻게 정책이 될 수 있을까. 이건 마치 비정규직이 열악하니까 중규직을 만들고, 다른 사람의 노후가 불안하니 공무원 연금을 줄이는 것처럼 발전적인 방향이 아닌거다.”

-“그래서 더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남성에게 강요된 젠더규범과 불편함을 깨자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은 남성들에게도 충분히 좋은 것일 수 있지만 남성들은 페미니즘이 자신을 억압하고 권리를 뺐는 것이라고 오해한다.”

-“남성들의 역차별이라는 의식에는 선행차별에 대한 의식이 없다. 대표적으로 군대는 사회가 여성에게 연약함을 강조하면서 남자가 위험부담을 도맡게 된 역사적 인과성이 있다. 이 차별비용이라는 관점에서 선행차별이 있기 때문에 남성에게 어떻게 가중부담이 돌아오는지 설명할 필요성을 느꼈다.”

-손아람 작가님은 JTBC ‘말하는대로’에서 ‘성차별’이라는 방송에서 쉽게 말하지 않았던 주제를 ‘연애’라는 키워드로 풀어내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모든 핸디캡을 없애야 남성도 자유로워진다”고 말했는데.

-“사실 현장에서는 무관심과 적대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연애로 비유하다보니 연애코치처럼 생각하는 분들도 있었다. 방송이 나온 이후에 방송 전에 기대했던 부분과 우려했던 반응이 모두 다 나왔다. 방송 원고를 쓰면서 의도했던 것은 남성들이 소화하기 쉽도록 하자는 거였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여성들이 지나치게 남성중심적으로 보지는 않을까하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내 주장이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이란 전제를 깔고 있고, 여성에 대한 폭력과 동일하다는 한 매체의 기사는 너무 가혹했다. 기사에서 토니 포터의 ‘맨박스’(남성 역시 가부장제 속에서 억압을 경험하는 피해자가 된다는 개념)를 인용하며 나를 비난했는데 토니 포터 그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는 비난이다. “맨박스가 사라진다면 성차별을 해도 되는 거냐”고. ‘남성에게 이득이 되지 않으면 성평등을 안할꺼냐’는 비판은 지나친 반응이다.”

-“사회적 학문은 수학공식처럼 옳다, 틀리다라고 할 수 없다. 발견과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말하기 방식은 페미니즘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부차적으로 남성들에게 페미니즘이 유리하다는 것을 알리는 전략이다. 물론 전략적으로는 좋지만 불편하다는 시선이 있을 순 있다.”

-“모든 운동에는 경직된 원리주의가 있다. 꼭 페미니즘 문제라고는 생각하진 않는다. 스펙트럼이 다양해지고 여러 의견이 나올 수 있지만, 기사처럼 저를 여성의 적으로 전제하는 것은 너무 나간 것이라는 생각이다. 예컨데 복지제도가 인간답게 살 권리와 관련된 건 당연하지만, 기업을 설득할 때는 복지의 정착이 기업생산성 증가에도 도움이 된다는 논리로 입체적으로 접근하지 않는가?”

 

-메갈리아의 미러링 전략 이후 남성 혐오를 여성 혐오의 대척점에 세우고 메갈을 일베와 동급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혐오에 혐오로 대응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도 있는데.

-“메갈은 여혐혐(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을 주장하며 등장했다. 주디스 버틀러는 혐오발언에 대한 미학적인 재현은 언어적인 전시라고 표현했다. 최근 가부장을 패러디한 ‘가모장’ 등의 발언으로 인기를 끈 개그우먼 김숙의 발언에서도 패러디를 통한 미학적인 유쾌함을 느낄 수 있다. 메갈에도 남성 혐오(남혐)가 일부 있지만 메갈의 혐오 발언은 맥락이 다르다. 흑인 인권운동가 말콤 X가 백인을 향해 ‘백인 악마’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이것은 백인 혐오가 아니라 분노의 수사로 이해할 수 있다. 메갈도 마찬가지다. 남혐 발언이 있다고 하더라도 과거 이들은 여혐의 피해자였기에 층위는 분명히 다르다.”

-“메갈의 미러링 전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공감 능력에도 떨어져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한번은 이런 적이 있다. 중고나라에서 거래를 한 적이 있다. 물건을 사겠다는 사람이 의정부에서 직거래를 하자고 해 2시간이나 걸려 갔더니 약속시간에 전화도 받지 않고 거래 장소에 나오지도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느냐고 했더니 ‘돈이 부족해서 못나갔다’는 답장이 돌아왔다. 5만원을 깎아주기로 하고 우리 동네에서 만나기로 해놓고는 약속시간에 나가지 않았다. 그러자 그 사람은 욕설이 담긴 메시지들을 쏟아냈다. 이처럼 미러링의 대상이 된 사람들은 자신한테 돌아오는 미러링 전략에 자신을 투사하지 못한다.”

 

철학자 유민석 ⓒ이정실 사진기자
철학자 유민석 ⓒ이정실 사진기자

-최근 스스로 ‘한남’(한국남자)임을 고백하고 성찰하거나 업계의 여혐을 폭로하며 자정을 요구하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 여성학 강연에 남학생들의 참여도 늘었다.

-“과거에 비해 페미니즘 시장 자체가 커진 건 분명하다. 내부의 힘은 연대성이 있다는 확신있다는 것을 느꼈다. ‘정희진 선생님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고 뒷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고 말하는 남자들도 만났다. 하지만 문제는 지속가능성이다. 현재의 변화가 확장성을 가지고 이어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가령, 대기업에 위기가 발생하면 사내 성평등 이슈는 부차적인 것으로 미뤄진다. 남성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금의 페미니즘 불꽃이 어떻게 유지되고 개인 생애사 어느 시점에 사그라들 것인지 궁금해진다.”

-“페미니즘을 경험한 여성들이 과거 자신을 조였던 ‘코르셋’을 벗고 나서고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은 좋은 지점이다. 이런 분위기가 남성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기검열을 하는 남성도 생겼다. 실제로 페이스북에는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규정하는 남성들이 늘어났는데, 이 가운데는 페미니스트를 코스프레하는 ‘생계형 페미니스트’도 여럿이다. 최소한 페미니스트인 척 하는 이런 남성들이 마초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김성모 화백의 만화 『럭키짱』에서 이런 모습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평소에는 여자를 무시하고 비하하던 남자캐릭터가 여자가 위기에 처하면 도와주는데 그때 하는 대사가 바로 ‘난 페미니스트니까’다. 자신을 세계에 대응하는 게 아니라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에 대응시킨 것이다. 분명히 첫 단계에서 이러한 분위기는 긍정적이다. 이제 페미니즘은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을 넘어 지금 세계의 진짜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논의해야 하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그리고 페미니스트냐, 아니냐의 선이 존재한다면 남성들이 그 선을 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이분법이 페미니스트로 가는 장벽이 될 수 있다는 거다. 자기 스스로 결함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처음 10이었던 자신의 결함을 9, 8, 7로 줄여나가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결함이 0이 아니라는 이유로 비판을 한다면 그 결함을 줄이는 노력 자체도 줄어들 수 있다.”

 

-남성들이 성평등에 관심을 갖고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은.

-“많은 남성들이 페미니즘을 남성성을 거세하고, 식물적 여성성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뜨개질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여러 문화산업에서도 마초 남성 아니면 수줍고 어쩔 줄 몰라하는 남성 단 두가지 남성성만 드러난다. 영화와 드라마에선 음담패설을 던지거나 여자의 손목을 잡아 끌고 벽에 밀치는 폭력적인 남성성만을 보여줄 뿐, 모범적인 남성성은 찾아볼 수 없다. 문화를 통해 여성을 존중하면서 남성적일 수 있는 세련된 남성성을 꾸준히 공급해 이 시대가 요구하는 남성상이 무엇일 수 있는지 제공하는 것도 방법이다. 가령, 영화 ‘매드맥스’에서 남자주인공인 맥스는 근육으로 여성들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퓨리오사와 여성들의 결정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동반자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여성 혐오적인 남성, 마초 남성은 더이상 여성이 원하는 남성상이 아니라는 점을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 이런 남성이 여성에게 인기없다는 것만으로도 자기검열을 하고 페미니스트로 코스프레하는 남성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효과적인 방법 같다.”

 

-페미니즘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페미니즘은 자신의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불편했지만 목소리내지 못하고 언어로 표현하지 못했던 부분을 페미니즘을 통해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 같다.”

-“페미니즘은 인류애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은 부당한 것이다. 예를 들어 로테이션을 짜서 순번대로 출산해야 하는 간호사 사례는 무조건 사라져야 한다. 우리 후손들은 그러한 공포를 느끼지 않도록 불평등을 줄여 나가야 한다는 거다.”

-“과거엔 불평등 문제를 말하기 위해 마르크스와 레닌의 이름을 미친듯이 소환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을 소환하지 않고도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페미니즘 관련 논쟁이 메타적인 논쟁을 벗어나 차별 문제를 직접 들여다보고 직접 말하는 단계로 나아가는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페미니즘이다’라는 설명을 넘어설 때 차별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동안 여성들은 불편한 감정이 있어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페미니즘을 접한 후 내가 당했던 게 여성 혐오이었고, 그것을 해결하는 게 페미니즘이라고 깨닫게 됐다. 지금 젊은 페미니스트들은 체계적인 운동권도 아니었고, 이제 페미니즘을 배우면서 투쟁하고 있는 과정이다. 그 다음 수순도 밟아나가게 될 것이다.”

-“여성이 할 수 있는 전략과 남성이 할 수 있는 전략이 있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 운동에서 남성이 남성을 설득하는 방식은 여성이 했을 땐 효과가 없고 자존심도 상할 수 있는 방식이다. 남성이 특정한 방식을 택할 때 오히려 목표 수행에 있어 부스터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얘기다. 반대로 남성이 여성이 사용하는 미러링 방식으로 ‘한남충, 재기해라’라고 말하면 그것은 더이상 미러링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처음엔 저도 남성이 페미니즘에 관핸 목소리를 냈을 때 남성이라는 점 때문에 여성보다 주목받는 것은 아닐지 우려했다. 지금은 남성들이 목소리를 내고 다가갈 수 있는 지점이 있다는 주위의 조언에 계속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남성이 페미니즘 발언을 하는 것은 여성이 하는 것과는 또 다른 설득이 될 수 있다.”

-“발화 권력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위치에서 오는 설득력의 차이일 수도 있다. ‘맨박스’ 전략을 굳이 이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는 것 같다. 경제 갈등에서 회사 노동자가 아닌 회사 대표가 임금 불평등을 줄이니 전 사원의 생산성이 올라갔다고 하는 말은 다른 효과를 갖는다. 남성들이 말하는 페미니즘은 유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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