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에서 진행된 ‘한복 크로스드레싱 퍼레이드’에서 참가자들이 자신의 성별을 떠나 원하는 성별의 한복을 입고 행진을 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에서 진행된 ‘한복 크로스드레싱 퍼레이드’에서 참가자들이 자신의 성별을 떠나 원하는 성별의 한복을 입고 행진을 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남자는 바지·여자는 치마’ 고궁 한복 무료입장 기준에 항의하는 시민들

13일 종로 일대에서 ‘한복 크로스드레싱 퍼레이드’ 열어

“성별 떠나 입고 싶은 옷 입는 시대...근시안적 전통 해석 경계해야”

색동저고리, 하늘빛 원단에 금빛 문양이 새겨진 치마를 입고 고운 족두리를 쓴 ‘남성’, 한복 바지와 배자 차림에 갓을 쓰고 콧수염과 턱수염을 그린 ‘여성’…. 13일 종로 일대를 거닌 한복 차림의 시민들은 많은 인파 속에서도 이목을 끌었다. 

이들은 이날 ‘한복 크로스드레싱(반대 성별이 입는 옷을 착용하는 행위) 퍼레이드’를 열었다. ‘남자는 바지, 여자는 치마’만 한복 차림으로 인정한다는 문화재청의 고궁 한복 무료입장 기준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연 거리 퍼포먼스였다. (▶관련기사 : ‘여자는 치마, 남자는 바지’ 고궁 한복 무료입장 젠더차별 논란) SNS 등을 통해 소식을 접하고 하나둘 모여든 시민 10여 명은 자신의 생물학적 성별을 떠나 원하는 성별의 한복 의상을 입고 함께 행진했다. 퍼레이드는 오전과 오후 각각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이날 퍼레이드에 참가한 송서진 씨는 흰 여자 한복 저고리에 분홍색 겹치마를 입고 작은 부채를 들었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어요. 특히 지나가던 아주머니들이 ‘어머 귀엽다’ ‘남자야 여자야?’라면서, 저희가 예쁘냐고 물어봤더니 ‘응 예뻐~’ 하시더라고요.” 

여자 저고리와 한복 치마 차림을 한 대학생 박인 씨는 “재미있었다. 여러 아주머니들이 웃으면서 같이 사진 찍자고, ‘귀엽다’ ‘예쁘다’고 하시더라”라고 말했다. “원래 옷에는 성별 구분이 없어요.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는 것이지, 문화재청 지침대로 ‘남자 옷’ ‘여자 옷’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요?”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의 대표 ‘이드’ 씨는 이날 남자 한복을 입고 갓을 썼다. 얼굴엔 수염을 그렸다. 자신을 ‘젠더퀴어’라고 소개한 그는 “‘남성은 남성답고 여성은 여성다워야 한다’는 규범은 많은 다양한 존재들을 포괄하지 못한다. 차별적인 현 한복 무료입장 규정은 수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에서 진행된 ‘한복 크로스드레싱 퍼레이드’에서 참가자들이 자신의 성별을 떠나 원하는 성별의 한복을 입고 행진을 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에서 진행된 ‘한복 크로스드레싱 퍼레이드’에서 참가자들이 자신의 성별을 떠나 원하는 성별의 한복을 입고 행진을 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퍼레이드를 지켜본 일부 여성들과 외국인들은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 반면, “왜 남자가 치마를 입어” “남자는 남자답게 행동하고 여자는 여자답게 해야지 왜 이래”라며 핀잔을 던진 이들도 많았다. 

“오늘 행진하는 동안 상처가 되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이 지구에는 ‘남녀’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만 살아가는 게 아니에요. 앞으로 더 다양한 사람들이 나타날 텐데....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여자 한복을 입고 온 현대 예술가 ‘탄야’ 씨는 ‘남자는 남자 한복, 여자는 여자 한복만을 한복으로 인정한다’는 관념이 “너무 근시안적인 관점에서 만들어졌다”고 비판했다. “‘전통’을 성별 이분법적, 폐쇄적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시대의 흐름과 다양한 사람들에 맞춰서 전통도 알맞게 변해야지요.”

해당 퍼포먼스를 기획·진행한 퀴어활동가 김우주 씨는 “이날 퍼레이드를 통해 사람들의 성별 이분법적인 고정관념을 조금이나마 깰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젠 한복을 ‘패션’의 일부로 받아들이자”라는 의견도 나왔다. 대학에서 한복을 전공한 퍼레이드‘미노나’ 씨는 “많은 이들이 (한복과 관련해) 전통적인 성별 규범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 한복 차림, 머리 모양 등에 대한 기준이 너무 까다롭다. 조금만 벗어나도 ‘이렇게 입으면 안 되다’는 잔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특정한 규범을 만들고 강요하는 일은 한복의 생활화에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4대 고궁 등에 적용되는 한복 무료입장 가이드라인은 ‘여성은 치마, 남성은 바지’를 입어야만 한복 차림으로 인정한다. 여성 한복 치마 규정엔 ‘과도한 노출 제외’를 덧붙여 ‘젠더 차별’ 논란을 불렀다. 또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는 옷차림’, ‘문화재에 맞지 않는 옷차림’ 등의 이유로 고궁 관람을 제지당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때아닌 고궁 관람 복장 규제 논란이 불거졌다. (관련기사 : 퓨전한복·드레스 입고 고궁 갔더니...“외국인 보기에 혐오스러워 안돼”)

이에 문화재청 관계자는 “고궁 유료 관람객의 복장을 문제 삼아 내보내는 일은 절대로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무료입장 가이드라인에 대해선 “무제한으로 허용하면 한복 문화를 희화화하거나 전통적인 착용 방식을 왜곡하는 등 부작용을 빚을 우려가 있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문화재청은 “꾸준히 모니터링을 하면서, 오는 28일 올해 마지막 고궁 야간 특별관람이 끝난 이후 그간의 문제 제기를 검토해 수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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