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은 안돼”… 공화당 내부, 기독교계 여성도 비판 나서

‘라커룸 수다’라니 ‘낫 오케이’… 성폭력 만연 알리는 SNS 집단행동

 

도널드 트럼프 ⓒdonaldjtrump.com
도널드 트럼프 ⓒdonaldjtrump.com

미국 대선이 종반전으로 향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앞길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이 등장했다. 바로 트럼프 자신이 11년 전에 내뱉었던 말들이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와 꽂힌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7일(현지시간) 트럼프와 NBC 연예프로그램 ‘액세스 할리우드’의 빌리 부시와 버스 안에서 나눈 대화가 담긴 2005년의 녹음 파일을 입수해 공개했다. 자신의 대화가 녹음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두 사람은 음담패설을 나눴고 트럼프는 기혼 여성을 유혹하려 했던 경험담까지 설명했다. 당시 그는 현 부인 멜라니아와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상태였다. 드라마 녹화장에 도착한 후에도 이들의 음담패설은 계속됐다.

녹음 파일 속에서 음담패설의 대상이 됐던 두 여성은 즉각 트럼프를 비난했다. 배우 아리안 저커는 트위터에 “라커룸에 있든 직접 대면하든 상대를 대할 때는 친절과 품위,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며 “불행히도 힘을 가진 사람 중에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이런 원칙을 무시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유혹하려다 실패했다고 표현한 앵커 낸시 오델은 자신이 진행하는 ‘엔터테인먼트 투나잇’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취급하는 이런 발언에 크게 실망했다”며 “어떤 여성도 이런 어리석은 발언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음담패설 녹음 파일은 10일의 대선 후보 2차 토론에서도 중요 소재로 떠올랐다. 힐러리 클린턴은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도록 두면 안 된다”고 주장했고, 트럼프는 “빌 클린턴은 골프장에서 내게 더 심한 말을 한 적도 있다”며 받아쳤다. 이는 트럼프 지지율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토론 직후 5~6% 정도였던 두 사람의 지지율 격차는 두 자릿수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기독교 여성 신자들의 트럼프 비판을 이끌어낸 베스 무어의 트윗과 답변 일부. ⓒtwitter.com/BethMooreLPM
기독교 여성 신자들의 트럼프 비판을 이끌어낸 베스 무어의 트윗과 답변 일부. ⓒtwitter.com/BethMooreLPM

특히 공화당의 전통적인 기반이었던 기독교계 여성들도 트럼프 비판에 동참하기 시작한 점은 놀랍다. 유명 전도사이자 성경공부 교재 『아빠는 너를 사랑한단다』를 쓴 베스트셀러 작가인 베스 무어는 10일 자신의 트위터에 “나 또한 성적으로 학대받고 이용당했으며 멸시당하고 외설적 농담의 대상이 됐던 수많은 여성들 중 한명”이라며 “이젠 지긋지긋하다”고 썼다.

올해 대선에 대한 침묵을 깨고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은 무어의 발언은 기독교계 여성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유명 작가인 크리스틴 케인은 무어의 발언을 지지하며 트럼프의 여성 혐오를 비판하는 동시에 트럼프를 계속 지지하거나 침묵으로 동조하는 남성 기독교 리더들을 비난했다.

“오래전에 있었던 사적인 ‘라커룸 농담’일 뿐”이라며 “이로 인해 상처받은 분이 있다면 사과한다”는 트럼프의 성의 없는 사과문은 오히려 여성들의 분노를 자극했고 소셜네트워크상에서는 집단행동도 시작됐다.

캐나다 출신 작가 켈리 옥스퍼드는 7일 자신의 트위터에 ‘#NotOkay(괜찮지 않아)’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자신이 12세 때 버스에서 경험했던 성추행 사실을 고백하며 “여러분의 첫 성폭력 경험을 공유해 달라”는 글을 올렸다. 옥스퍼드의 메시지는 폭발적으로 확산됐고 이틀 만에 #NotOkay 해시태그를 사용한 2700만 건의 트윗이 쏟아졌으며 수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성폭력 경험을 털어놓았다.

페미니스트 단체 ‘제3의 물결 재단’(Third Wave Foundation) 설립자인 에이미 리처드는 이와 같은 SNS 현상에 대해 “여성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외침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트럼프의 음담패설 공개로 성폭력이 이 사회에 얼마나 만연해있는지를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이번 사건으로 공화당 내부에서도 트럼프에 대한 반대가 일고 있다. 부통령 후보인 마이크 펜스는 “영상 속 그의 말과 행동에 화가 났다”고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트럼프에게 질렸다”면서 지지 철회를 선언했다. 12일엔 부시 정권의 고위 관료 13명이 공개적으로 힐러리 지지를 선언하고 나섰으며 뿐만 아니라 거액의 후원자들이 후원금 반환을 요구하며 나섰다는 보도도 있었다.

하지만 2차토론 직후 벌어졌던 지지율 격차가 주말을 넘긴 후 다시 한 자리 숫자로 줄어드는 등 트럼프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는 여전히 굳건한 것으로 보여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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