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오해할까 밝힌다. 페미니즘의 시선을 말하면서 어째서 여자가 아닌 남자가 그런 글을 쓰느냐고 묻거나 따지는 이들이 있다. 답답한 일이다. 그건 누구의 혹은 어떤 성(性)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자유로운 개인’으로서의 주체적 존재인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그게 페미니즘이고 그래서 나는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으로 귀결 혹은 수렴되는, 수렴하는 것이라 믿는다. 그런 점에서 『논어』를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읽어보는 건 참 흥미로운 일이다.

『논어』의 첫머리 두 번째 행의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訪來不亦樂乎)’라는 구절을 살펴보자. 얼핏 보면 누군가 나를 찾아오는 벗이 있는 것이 즐거운 일이다 싶지만 그건 강자 혹은 자기중심적 시선으로 읽는 편협한 것이다. ‘또한’이라는 말은 이미 앞의 것이 즐겁다는 것이니 그것은 바로 ‘벗이 있음’이다.

벗이 있어서 즐겁다. 그런데 그 벗이 찾아오니 또한 즐거운 것이다. 따라서 그 벗이 먼저다. 이런 경우를 상상해보자. 그녀는 과수원에서 일한다. 과수원의 노동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벼농사보다 더 힘들다. 과일을 기르는 건 말할 것도 없지만 다른 일도 만만치 않다. 벼농사야 콤바인 등의 농기계로 수확하고 탈곡까지 하고 포장까지 한꺼번에 할 수 있지만 과일은 일일이 손으로 따야 하고 분류하고 포장하는 일까지 따로따로 해야 한다. 손이 많이 갈 수밖에 없다. 작황이 좋고 시세가 높으면 수익이 커지는 일이니 참을 만하지만 그래도 힘든 노동이다.

그런데 갑자기 서울로 떠난 여고 시절 친구가 생각났다. 그 친구는 과일을 꽤나 좋아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과일을 보내기로 한다. 이런 경우 과일을 따는 게 노동이 아니다. 즐거움이다.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가장 탐스러운 것으로 골라 따로 포장한다. 그 또한 즐거움이다. 그걸 들고 여고 동창에게 간다. 점점 더 그 친구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설레고 즐겁다. 따고 포장하고 친구에게 가는 것까지 여러 날 걸릴 수 있다.

그 기간 내내 즐겁다. 아무 셈도 없다. 그저 여고 동창이 보고 싶고 그녀가 좋아하는 과일을 선물할 기쁨 그리고 그 친구를 만난다는 설렘이 전부다. 마침내 친구를 만났고 그녀가 좋아하는 것을 보니 뿌듯하다. 즐거운 담소는 덤이다. 선물 받은 친구는 그녀를 만나는 순간 한꺼번에 와락 기쁘다. 그러나 더 기쁘고 즐거운 것은 찾아간 친구다.

물론 이 예화를 남성으로 해도 같겠지만 여성이 훨씬 더 살갑고 어울린다. 우리가 언제 『논어』를 그런 시선으로 읽어봤는가. 남성의 세상에서 남성이 쓰고 남성이 해석한 것을 남성 위주의 교육으로 배웠을 뿐이다. 그러나 그 시선을 여성의 눈으로 펼치면 그 폭은 더 넓어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벗인가’ 하는 물음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타고난 기질은 서로 비슷하지만 배우고 익힘에 따라 서로 멀어진다(性相近也 習相遠也)”고 했다. 남성과 여성이 다르지 않다. 염색체 배열이 다르고 그에 따른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차별의 근거는 결코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환경이다. 어떻게 배우고 어떻게 실행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그것은 애써 무시하고 다르다는 점만 강조한다. 그리고 그 차이에 우열의 이념을 주입한다. 그게 차별의 시작이다. 그건 야만이고 폭력이며 무지의 소산이다.

어떤 벗을 두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어른들은 좋은 벗을 사귀어야 한다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반복했다. 그러나 내가 먼저 좋은 벗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 경우는 별로 없다. 남 탓 할 게 아니다. 벗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매우 중요한 환경이라면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좋은 벗으로 좋은 환경으로 존재해야 한다. 그게 상생이고 화해며 협동이다.

더 이상 남성 중심적 해석으로 『논어』와 공자를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배우고 익힘에 따라’ 서로 멀어지고 달라지는 것이라면 제대로 배우고 익히면 저절로 해소될 일이다. 생물학적 성(sex)이건 사회학적 성(gender)이건 진짜 중요한 것은 교육이다. 그래서 교육에서 양성평등과 상호이해의 시선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의 교육은 그러한가? 진지하게 묻고 따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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