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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지역 여성운동의 뿌리는 70년대 학생운동을 했던 여성들이 결성

한 민주여성회다. 이를 모체로 시대의 요청에 따라 전북여성운동연합을 거

쳐 12개 회원단체를 둔 전북여성단체연합으로 성장하기까지는 배정희 전북

여성단체연합 이사의 역할이 컸다.

환경운동에 몸담아 왔으며 ‘어린이를 위한 요가’의 저자이기도 한 그가

강조하는 것은 ‘함께 가는 여성운동’이다.

시대적 교감을 통한 여성운동의 시작

70년대 학생운동을 하던 때를 되짚어 배정희 씨는 “나의 일이라는 주제

가 없었다”고 표현한다. 여기서 함께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도 내일이면 구

치소에서 보게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제대로

배우지도, 학교를 졸업하지도 못해 사회에 적응해 나가기 힘들었다. 배정희

씨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교회 전도사로 활동했지만 주위에서 당시 ‘사회적

학대’의 경험때문에 인생이 휘청거리는 동지들을 보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

다고 말한다. 그의 양심은 그들과 시대적 교감을 함께 느끼는 한 여기서 안

주할 수 없다고, 그들을 감싸안고 함께 가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고, 그 고민

의 고리가 끊임없이 커져서 도달한 것이 바로 여성운동이다.

환경운동의 시작은 어머니의 자궁을 지키는 것

87년 학생운동을 했던 선후배들이 주축이 되어 민주여성회를 만들었고 평

등한 사회를 위해선 우선 여성들이 의식화되어야 한다는 방침에 따라 91년

전북여성운동연합으로 명칭을 변경, 조직을 확대했다. 특히 여성운동연합에

서 배정희 씨는 좋은 학부모회가 모체가 된 환경을 지키는 여성들의 모임을

통해 환경운동에 앞장섰다. 환경을 지키는 여성들의 모임은 “자녀에게 1등

을 물려주기보다는 좋은 환경을 물려주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출

발했다.

그가 말하는 환경운동은 ‘어머니의 자궁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시작한

다. ‘자궁환경’을 지키는 것에서 출발하여 먹거리와 급수 지키기, 쓰레기

분리수거, 자연세제 사용, 장바구니 들기 운동, 벼룩시장 등 생활 속의 녹색

가족운동을 전개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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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자아를 찾아 히말라야 등반을 시도하기도

했던 배정희 전북여성단체연합 이사는 한국에 돌아와

‘어린이를 위한 요가’를 발간하는 등, 조화·균형·

평화·평등·통일의 정신에 따르는 환경운동을

실천하고자 노력했다.<사진·민원기 기자>

요가의 정신과 소명의식

배정희 씨는 또 어린이들을 위해 근 십 년째 요가를 가르쳐 온 선생님이

자 93년에 이어 2000년에 ‘어린이를 위한 요가’라는 책(개마서원)을 낸

작가이기도 하다. 방학 때면 무료로 여는 어린이 요가교실은 이제 십 년 전

제자들이 그와 함께 지금의 어린이들에게 지도를 해주고 있다.

한 때 그는 자아를 찾아 히말라야 등반을 시도하기도 했다. 해발 4천2백

미터를 올라가는 과정에서 죽음의 위기를 느꼈지만 무엇보다 몸보다 자아의

허기가 고통스러웠다. 그가 이 위험한 여정을 통해 깨달은 건 “나로부터가

아니라 사회로부터 요구되어진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

에 돌아와 ‘왜 자연과 함께 해야하는지’ 해명하기 위해 요가에 대한 책을

낸 것이 그의 긴 방황을 쉬게 만들었다. 요가의 정신을 실천해야 하는 책임

감이 그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요가의 원 뜻인 조화·균형·평화·평등·통일의 정신에 따르면 가장 중

요한 것은 육체와 정신이 균형을 이루는 삶이다. 이는 지구의 살덩어리인

토양과 피인 물을 지키려는 환경운동과도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조직강화 선후배 화합에 나서

그러나 한국에서 그를 기다린 것은 반가운 소식만은 아니었다.

여성운동연합이 현재 배정희 씨가 이사를 맡고 있는 여성단체연합으로 성

장하기까지는 큰 시련이 있었다. 민주여성회 시절 실무자였던 선배들과 새

로 성장하는 2∼30대 후배들 사이의 의견 차가 좁혀지지 않아 단체들이 서

로 흩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귀국과 동시에 조직강화특별위원회를 구성

해 조율에 나섰다. “함께 가는 여성운동이 우리의 주제인데, 지금 잠시 아

픈 것을 가지고 평생 끈을 놓칠 수 있는가”라고 설득하는 과정이 6개월이

었다. 한 번 돌아선 마음들을 다시 복귀시키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지

만, 여성운동이 더욱 넓은 지평에서 안아야 할 몫이 있다는 데 동의한 선후

배들은 결국 뜻을 모았다. 그렇게 98년 11월 전북여성단체연합이 발족했고,

현재 12개 회원단체와 3개 준회원 단체를 포함한 튼튼한 지역여성운동본부

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젠 젊은 여성들과 ‘공동운명체’ 일구어야

배정희 씨는 “지난 시대의 선배들은 이제 뒤로 돌아와 뒷바라지를 해줘

야 하고, 지금 시대를 사는 젊은 운동가들이 대표성을 띠고 앞장서야 한

다”고 주장한다. 또 한편으론 후배들이 자신과 다른 생각에 대해 배타적인

마음을 갖고 있는 것에 경계한다. 자신이 선배들에게 존경심을 가지고 활동

해왔던 것처럼 후배들도 선배들의 자취를 기억해주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

주길 바라는 것이다.

학생운동에서 시작해 여성운동에 삶을 던져 온 배정희 씨는 젊은 여대생

들을 보는 눈이 남다르다.

그는 “우리 시절엔 학생운동을 하는 여성들이 남성화돼 있었다”고 회상

한다. 당시엔 여학생회라는 조직도 따로 없었고, 운동권에서 커왔지만 여성

의 이름으로서가 아니라 시대의 이름 아래 묻혀 있었다. 90년대부터 대학가

에 조직된 여학생회는 어떤 의미에서 여성의 성을 찾은 것이고, 우리 모습

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혼란기를

겪는 것처럼 보인다고 우려한다. 여학생회에서 활동했던 여성들이 졸업 후

여성단체가 아닌 남성들의 조직으로 들어가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그

래서 “우리가 그들을 못 돌봐준 것이다”라고 스스로를 책망도 한다.

앞으로도 지역 여성운동을 챙기고 뒷바라지하는 데 우선적으로 충실하겠

다는 배정희 씨는 여성단체가 젊은 여성들에게 함께 일하자고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것을 과제로 제시했다.

[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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