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4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가족재단 로비에 마련된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들이 추모쪽지를 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5월 24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가족재단 로비에 마련된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 공간을 찾은 시민들이 추모쪽지를 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9월 한 학술대회는 1960년대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통해 미래 의제를 바라보는 것이 주제였다. 1960년대는 어쩌면 인류 역사에서 가장 뜨겁고 치열했으며 가장 인간적이었던 시대였을지 모른다. 전쟁이 끝나고 새로운 세계질서가 재편되었지만 기득권의 견고함은 깨뜨려지지 않았고 기성세대의 위선과 억압은 교묘하게 지속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에 이르러 그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자유로운 개인’에 대한 각성은 인간과 사회의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해 비판하고 저항하는 촉매가 되었다.

식민지의 해방, 제3세계의 출현, 반전운동, 여성해방, 히피, 흑백갈등,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중심으로 한 종교계의 변화가 이어졌고 마침내 68혁명에서 그 절정에 달했다. 여성해방은 인간해방이라는 큰 틀에서 이해하고 실현해야 할 가치였다. 1920년 여성참정권이 인정된 후 빠르게 진화하다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침체했던 여성해방운동의 전환점은 1963년 베티 프리던의 『여성의 신비』였다.

미국에서의 시민권 운동의 경험은 여성의 종속적 위치에 대해 투쟁할 필요성을 촉진시켰고 따라서 여성들의 억압적 성격을 분석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을 선언하는 구체적인 정치 활동으로 발전했다. 이 운동은 다양하고 비위계적이며 조직이 허술하고 엄격한 원칙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여성해방에 대한 관심은 여러 형태를 띤데다 공통점도 있었는데 그것은 모든 여성들이 한결같이 억압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여성은 피압박 계급이며 남성들이 그 압박의 근원이기 때문에 남성에게 지배되는 기존의 사회체제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정치운동으로 전개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오자 여성해방운동은 세계 각지에 파급되었다.

한국에서도 영향을 받아 여성의 권리에 대한 시야가 바뀌었고 다양한 여성단체들이 창립되고 나름대로 역할을 했지만 한국에서의 여성운동은 취미나 교양, 직업집단의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군사독재정권과 유신정권을 지지하는 친정부, 친여당 성향의 부르주아 여성단체의 활동이 주였고 여성운동의 성격은 약했다. 물론 그 시기에 한국여성운동의 독특한 점인 소비자보호운동이었고 그것이 여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여권 신장의 한 계기가 된 점은 평가될 점이다.

벌써 반세기 전에 일어난 여성해방운동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온갖 왜곡된 형태로 여전히 미완일 뿐 아니라 최근의 여혐 현상을 보면 퇴행도 이런 퇴행이 없다는 점에서 부끄러운 일이다. 나는 이 문제에서 셰익스피어를 떠올린다. 리어왕은 코딜리아의 진솔한 대답(그녀의 오만하고 편협한 점은 지적할 일이지만)에 화를 내고 아무 것도 물려주지 않고 오히려 저주를 퍼붓는다. 그게 비극의 발단이었다.

그 비극은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제대로 소통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코딜리아가 여성이기 때문에 온전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고 여겼던 리어왕의 편협성에 기인한다. 리어왕은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그 어리석은 리어왕은 지금도 우리의 사고작용 내에 작동된다.

맥베스는 과도한 욕망을 지닌 인간이다. 그런 맥베스를 부추긴 게 반란을 진압하고 개선한 그를 칭송한 마녀들이었다. 그는 왕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반역이라는 무서운 욕망이어서 선뜻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그런 그를 부추긴 게 마녀들이었고 주저하던 그에게 행동을 요구한 것이 맥베스 부인이었다. 결과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파멸이었다. 그런데 그 원인을 엉뚱하게 마녀들과 부인에게 돌린다. 공은 남성에게, 허물은 여성에게 떠넘기는 왜곡된 사고가 아직도 작동되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1960년대에 일어난 인종, 여성, 반전, 반기득권의 저항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가치, 즉 ‘자유로운 개인’의 자각과 인간해방의 정신이 관통하는 힘이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1960년대의 혁명정신을 완수하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우리 안의 어리석은 리어왕과 탐욕의 맥베스를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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