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참사 13년만에 2·18안전문화재단 출범… 김태일 초대 이사장

대구지하철 참사 당시 시민 대표로 실종자인정사망위서 활동

“시민 격려가 큰 힘… 추모사업과 안전문화교육, 안전포럼 준비 중”

 

2·18안전문화재단 초대 이사장을 맡은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구를 안전과 생명의 도시로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대구=권은주 기자
2·18안전문화재단 초대 이사장을 맡은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구를 안전과 생명의 도시로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대구=권은주 기자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50분 대구지하철 중앙로역에서 방화로 일어난 지하철 화재는 사망 192명(실종 6명 포함), 부상 151명이라는 대참사를 몰고 왔다.

이 사고는 전 세계 최악의 지하철 사고 중 1위인 아제르바이잔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철도차량의 내장재가 불연 재료로 바뀌고 지하철 운행과 관련된 시스템이 개선되고 안전관련기본법이 만들어지는 등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지하철 안전 기준이 크게 강화되는 계기가 됐다.

이 사고가 일어난지 13년만에 2·18안전문화재단(이하 안전재단)이 출범했다. 초대 이사장은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맡았다. 지난 7일 개소식 후 재단 업무를 시작한 김 이사장을 사무실에서 만났다.

“재단을 만든 주체는 피해자들의 모임이다. 국민 성금을 사고 수습과 위로금에 쓰고 남은 돈은 ‘희생을 헛되이 하지 말고 공익을 위해 재단을 만들자’고 해서 모아뒀다. 피해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치유하고 안전한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재단의 필요성이 사고 직후부터 대두됐지만 대구시의 대처 방법, 태도 변화 등으로 피해자들과 골만 깊어졌고 피해자 단체도 서로 입장이 달라 무산됐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만들어져 다행이다.

대구 지하철 참사가 남긴 충격은 컸다. 1995년 도시철도 1호선 공사 도중 일어난 상인동 가스폭발 사고가 기억에 생생한데 두 번째 사고까지 났으니…. 지하철에 대해 대구 시민들도 외상후스트레스(PTSD)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다. 세계 2, 3위를 다툴 만한 대형 사고가 두 번 다 대구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부끄럽고 불명예스럽지만 이를 잘 보듬어 보편적 가치로 승화시켜 ‘안전과 생명의 도시, 대구’를 만드는데 재단이 제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사고 당시 시민 대표로 실종자인정사망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김 이사장은 “참으로 비참하고 안타까웠던 시간이었다”며 “대학입시나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 병원으로 향하는 어른들, 대구역에서 내려 지하철을 이용하는 타지인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가족을 찾아왔지만 초동대처에 미흡함이 많아 사고 현장이 훼손되는 등 사망자 확인 절차에도 어려움도 많았다”고 말했다.

지팡이가 할아버지의 유품이라고 주장하는 가족의 말에 근거해 정황 증거와 CCTV 확인 등의 절차를 거쳐 할아버지의 시신은 없지만 사망자로 인정했다.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보다 적극적 판단을 한 것이다. 그래도 아직 6명이 실종자로 남아 있다. 3명은 DNA 추출불가, 3명은 찾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현장이 수습되자 추모사업추진위가 만들어졌고 김 이사장도 활동을 이어갔다. 추모탑과 추모공원 조성사업에 박차를 가했지만 ‘혐오시설’이라는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피해자들에게 가장 큰 힘이 돼주는 것은 시민들의 지지와 격려다. 지역사회가 함께 할 때 더 큰 힘을 얻는다. 혐오시설이라고 반대할 것이 아니라 사고에 대한 의미를 잘 새기고 공유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동안 피해자들과 중앙로역에 화재 현장을 보존하는 공간을 만들고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공감하며 온 시간들, 12번째 추모식에 참석한 권영진 시장이 250만 대구시민을 대표해 사과를 한 덕에 외상후 성장을 하게 됐다. 신뢰가 회복되면서 재단 설립에 대한 논의가 가속화됐다.”

안전재단에서는 추모사업과 트라우마센터, 안전문화교육, 안전포럼 등의 사업을 기획한다. 특히 고통과 아픔, 회한의 시간을 보내온 피해자들을 위한 공간, 트라우마센터 설립·운영에 중점을 둔다. 재단에 전문 인력이 없어 대구대(총장 홍덕률)와 지난달 24일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13년이 지난 과거 일이지만 사고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고통의 무게를 고스란히 지고 왔다. 외상후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사고 피해자와 유가족, 소방공무원 등 그 사고와 관련된 이들을 우선 대상으로 한다.”

대구트라우마센터는 5.18민주화운동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광주트라우마센터, 세월호 사고에 대한 치유를 위한 안산온마음센터에 이어 세 번째다.

김 이사장은 안전과 여성을 연계시켜볼 구상이라고 설명했다. “안전에 대한 생각과 눈높이가 다르더라. 1학년 초등학생한테 뭐가 무섭냐고 물으니 ‘길고양이’, 5학년 초등학생은 ‘동네 형들의 우렁우렁한 목소리’라고 대답했다. 연령층에 맞는 불안 요소와 대안을 엄마들과의 원탁 미팅을 통해 생활안전 문제부터 풀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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