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 학생들, HELP 강의 ‘부실 점검’ 결과 규탄 기자회견 열어

반지를 주면 여자가 다리를 벌린다? 여성혐오 강의 내용으로 지난해 파문 

“진짜 문제는 대학 내 낮은 젠더 감수성...근본적인 인식 개선 필요”

 

오규민 한양대 총학생회장이 1일 한양대 학생회관 앞에서 HELP 강의 점검 결과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은 반 성폭력성차별 모임 ‘월담’, 인권네트워크 ‘사람들’ 한양대 모임이 주최했다. ⓒ이세아 기자
오규민 한양대 총학생회장이 1일 한양대 학생회관 앞에서 HELP 강의 점검 결과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은 반 성폭력성차별 모임 ‘월담’, 인권네트워크 ‘사람들’ 한양대 모임이 주최했다. ⓒ이세아 기자

“HELP 사태는 개별 수업이나 교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성폭력·성차별적 대학 환경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한양대는 한 줄짜리 계획만 발표했을 뿐, 이런 실태에 대한 고민이나 구체적 개선 계획은 없어 보입니다.”

한양대학교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하는 리더십 함양 온라인 강의에 성·외모 차별적 내용이 포함돼, 대학 본부가 사과하고 개선을 약속한 지 약 4개월이 흘렀다.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한양대 반성폭력 반성차별 모임 ‘월담’, 인권네트워크 ‘사람들’ 한양대 모임은 1일 한양대 학생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 측은 구성원이 젠더 감수성을 함양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으라”고 촉구했다.

올해 1학기 한양대 서울캠퍼스 기초필수 과목인 한양리더십프로그램(Hanyang Entrepreneurial Leadership Plus, HELP)4  온라인 강의에선 남성이 반지를 보여주자 치마를 입은 여성이 꼬았던 다리를 푸는 장면 등이 수업 자료로 이용됐다. 대학이 여성에 대한 편견, 성 상품화, 외모차별과 황금만능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당시 한양대 학생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HELP는 2007년 도입된 이래로 취업몰입교육, 소수자 혐오, 강제성 등으로 매년 논란이 되어왔다”고 지적했다.

 

 

지난 1학기 한양대 서울캠퍼스 기초필수 과목인 한양리더십프로그램(HELP)4  온라인 강의 수업 자료. 대학이 여성에 대한 편견, 성 상품화, 외모차별과 황금만능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한양대 HELP4 강의 영상 캡처
지난 1학기 한양대 서울캠퍼스 기초필수 과목인 한양리더십프로그램(HELP)4 온라인 강의 수업 자료. 대학이 여성에 대한 편견, 성 상품화, 외모차별과 황금만능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한양대 HELP4 강의 영상 캡처

파문이 커지자 한양대는 지난 5월 이 사진을 강의에서 삭제하고 공식 사과했다. 또 재발 방지를 위해 교육콘텐츠 점검 TFT를 구성, 젠더감수성과 인권 등을 기준 삼아 HELP 강의 내용을 모두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양인재개발원 리더십센터는 지난달 17일 재검토 결과를 발표했다. 성차별·선정성·인종·외모 등 10개 차별 항목에 따른 내용 36건을 확인했고 이를 삭제 또는 수정·유지하겠다는 내용이다. 또 올해 2학기 내에 교육 콘텐츠 전면 재구성·개발 로드맵을 완성하고, 내년도부터 개선해 2018년도 신입생부터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한양인재개발원 리더십센터는 지난 8월 17일 HELP 교육 콘텐츠 재점검 결과를 발표하고, 성차별·선정성·인종·외모 등 10개 차별 항목에 해당되는 내용을 삭제 또는 수정·유지하겠다고 밝혔다. ⓒ한양대 인재개발원 리더십센터
한양인재개발원 리더십센터는 지난 8월 17일 HELP 교육 콘텐츠 재점검 결과를 발표하고, 성차별·선정성·인종·외모 등 10개 차별 항목에 해당되는 내용을 삭제 또는 수정·유지하겠다고 밝혔다. ⓒ한양대 인재개발원 리더십센터

그러나 '미봉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일부 학생들은 지난해 학교 측에 요구했던 ▲대학 구성원의 젠더감수성 함양 프로그램 마련 ▲교수와 강사의 실효성 있는 인권 교육 이수 의무화 ▲강의평가에 성폭력·성차별 언행 평가·고발 항목 추가 ▲HELP 교육의 관점과 실효성, 강제성 등 전면 재검토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학생들은 그간 교수가 학생들 앞에서 언어 성폭력을 일삼거나, 강의 내용에 성에 대한 왜곡된 관념이 포함돼 학생들이 시정을 요구하는 사태가 꾸준히 발생했음을 강조했다. ‘월담’은 올해 1학기부터 강의실 내 언어성폭력 사례 제보를 받아 페이스북 등을 통해 공개해왔다. 공개된 발언은 “여학생들은 취업·학점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아도 결혼을 잘하면 된다” “여자들은 결혼 적령기를 놓치면 고생한다” 등이다. 지난해 한양대 총여학생회 ‘밀담’도 “여자들은 시집을 잘 가면 되니 진로 걱정을 할 필요 없다” “여자는 (대학원생으로) 뽑아놓으면 시집을 가더라” 등 강의실 내 언어성폭력 사례를 모아 공개 고발했다. ‘성의 이해’라는 강좌에선 2011년 폐강될 때까지 학생들에게 ‘여성이 노출을 하면 강제적 성행위를 하고 싶은 충동을 유발한다’고 가르치기도 했다.

오규민 총학생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HELP 사태의 근원은 “다양한 진로를 모색할 수 없게 하는 교육, 진정한 배움보다 취업에 초점을 맞춘 교육”이라며 “학교가 진정 이번 사태를 해결하고 싶다면 교육철학, 실효성, 강제성 등에 대한 논의에 먼저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월담’ 측은 “총학생회가 학생 대표자로서 HELP 개선 과정에 참여하게 된 것을 제외하면 개선을 기대하기 힘들다”며 “HELP 사태는 한양대, 나아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적절한 젠더 감수성 탓”이라고 지적했다. ‘사람들’ 측도 “대학이 학생과 제대로 소통하고 구체적으로 논의하며 젠더감수성과 대학 문화에 대해 함께 고민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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