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상담 240건 중 51건

상해·살인미수 범죄로 이어져

경범죄 취급해 처벌은 미미

일본, 16년 전 관련 법 제정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스토킹이 단순 경범죄로 취급되고 있다. 이 때문에 처벌은커녕 제대로 신고조차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스토킹이 단순 경범죄로 취급되고 있다. 이 때문에 처벌은커녕 제대로 신고조차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스토킹 범죄가 협박과 폭력, 살인 등 강력 범죄로 이어지며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스토킹이 단순 경범죄로 취급되면서 처벌은커녕 제대로 신고조차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이다. 반면, 이미 16년 전 스토킹 규제법을 제정한 일본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스토킹에 대해서도 규제의 칼을 뽑아들면서 스토킹 범죄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지난 4월 서울 가락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스토킹에 의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가해 남성은 과거 연인관계였던 피해 여성을 찾아가 지속적으로 괴롭혔고, 피해자가 받아주지 않자 결국 살해했다. 스토킹이 흉악범죄의 전조 증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2014년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민우회가 스토킹 피해 상담 240건을 분석한 결과, 상해·살인미수·감금·납치 등 강력 범죄에 해당되는 사례가 51건(21%)에 달했다.

8월 25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국회 여성가족위원장 남인순 의원, 교토여자대학교와 함께 ‘스토킹 피해 실태 및 법적 대응’ 주제로 한·일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날 한국여성의전화가 2016년 상반기 스토킹 상담 사례(141명 복수 응답)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가해자들은 정서적 폭력과 성적, 신체적 폭력으로 피해자들을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구체적으로 감시·미행·반복적 연락(136건), 협박(84건), 폭언·멸시·욕설(53건) 등 정서적 폭력이 많았다. 카메라를 이용해 촬영(25건)하거나 성관계를 강요(12건)하고 강간(9건), 성추행(8건)도 이뤄졌다. 구타(28건)나 당기거나 밀침(17건), 목조름(12건) 등 물리적 피해도 상당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현행법상 스토킹은 경범죄로 간주된다. 경범죄 처벌법 제3조 제1항 제41호는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하여 면회 또는 교제를 요구하거나 지켜보기, 따라다니기, 잠복하여 기다리기 등의 행위’를 ‘지속적 괴롭힘’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스토킹에 대한 벌금은 8만원에 그친다.

반면,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징역형까지도 처벌할 수 있는 중범죄로 스토킹을 다루고 있다. 일본은 1999년 오케가와시에서 일어난 스토커 살인사건을 계기로 2000년 5월 스토커 규제법을 제정했다. 이후 경찰 대응의 문제점과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법의 미비점이 지적되면서 2013년 6월 법을 개정했다. 법을 통해 가해자는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엔(500만원) 이하의 처벌을 받게 된다. 최근 일본 여성 아이돌 스타가 평소 트위터로 자신을 스토킹해온 20대 남성의 칼에 찔려 중태에 이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일본 여당을 중심으로 SNS를 이용한 스토킹을 규제하기 위한 개정안 마련을 추진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스토킹 범죄가 늘어나고 강력 범죄로 진화하면서 이번에는 반드시 ‘스토킹 처벌법’이 제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법은 19대 국회까지 총 7차례 발의됐다가 폐기되기를 반복했다. 현재 20대 국회에도 발의되고 정부에서도 강력한 입법의지를 밝힌 상황이라 전망은 밝다. 하지만 법 제정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법이 제정되는가이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스토킹 피해 실태와 특성에 입각한 포괄적인 스토킹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며 “스토킹의 구체적인 행위 외에 ‘자유로운 생활형성을 침해하는 행위’와 같은 포괄적인 정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어 “그 행위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이뤄졌는가가 아니라 ‘상대방의 동의를 구했는가’가 스토킹의 요건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선영 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행 경범죄처벌법 규정은 스토킹에 대한 사후적 대처로 피해 방지와 피해자 보호에 부족하고 처벌 형량도 경미해 오히려 스토커를 자극하고 심각한 2차 범행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면서 “일정한 행위를 스토킹으로 규정해 형사처벌하고 스토킹 사건에 대한 응급조치, 신변안전조치, 임시조치 등의 근거를 규정해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스토킹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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