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장영희(1952~2009) 교수 ⓒ뉴시스ㆍ여성신문
장영희(1952~2009) 교수 ⓒ뉴시스ㆍ여성신문

오랫동안 병마에 시달리다 돌아가신 장영희 교수의 유고 에세이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장영희는 외국에 유학해 2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학위논문을 완성한다. 그런데 귀국을 준비하던 중 논문이 든 트렁크를 도둑맞는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기절했다고 한다. 다시는 똑같이 쓸 수 없는, 설사 쓸 수 있다 해도 그러려면 다시 떠올리기조차 끔찍한 시간을 되풀이해야 한다는 현실 앞에 그는 절망한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얼마나 아득하고 막막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런데 어느 날 그에게 기적이 일어난다. 넋이 나간 모습으로 닷새나 식음을 전폐하고 있을 때다. 어떤 목소리가 말한다.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 그래, 아직 살아 있잖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기껏해야 논문인데 뭐.

그의 논문은 ‘기껏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소한 일이 아니었다. 당시 그의 모든 것이었고, 미래로 데려다주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루하루 겨우 버티며 탈진 직전에 완성한 논문이었기에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 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목소리에 힘을 얻는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 논문은 ‘기껏해야 논문’이 됐고, 아직 살아 있으니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기적 같은 힘을 얻는다.

그 기적은 어떻게 왔을까? 책에 적혀 있는 데로라면 일단 이렇다. 어느 아침에 눈을 뜨니 커튼 사이로 한 줄기 햇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때 문득 이상한 호기심이 생겼다고 한다. 사람이 닷새나 굶고 있으면 어떤 모습일까? 자기 모습이 궁금해진 그는 일어나 거울 앞에 선다.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과 눈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물론 그건 마음에서 올라온 목소리다. 어느 신령님이 짠하고 나타나 들려준 말이 아니다.

그 목소리를 듣고 장영희는 논문을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완성된 논문 서문에 이렇게 쓴다. 내 논문을 훔쳐가 내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다시 시작하는 법을 가르쳐 준 도둑에게 감사합니다. 이때 얻은 교훈은 그가 먼 훗날 수년간이나 병마와 씨름할 때도 힘과 희망을 주었을 것이다.

그 기적은 어떻게 왔을까? 기적은 착한 아이가 믿는 크리스마스 선물과 같다. 믿으면서 간절히 열망할 때, 내 안의 믿음과 열망이 기적을 가져온다. 뜬구름 잡는 신비 타령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숱한 경험이 그것을 증언한다. 그래서 살면서 한 번이라도 기적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장영희가 그랬던 것처럼 이런 말을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적이다. 힘들어서, 아파서, 너무 짐이 무거워서 어떻게 살까 늘 노심초사했고 고통의 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결국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심히 살며 잘 이겨냈다. 그것이 기적이다.

인생에서 드라마 같은 기적이 왔다면 그건 누구의 선물도 아니고 내가 만든 것이다. 아마도 리우 올림픽을 보면서 우리는 펜싱 박상영 선수의 “할 수 있다”를 보며 가슴이 뭉클했고 더 나아가 기적을 끌어올리는 한 영혼의 처절함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나 또한 공감하며 그 기적을 함께 일구어내고 싶었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우리는 시원하게 내리는 소나기처럼 하늘에서 기적이 쏟아질 것을 꿈꾸지만 그럴 일은 전혀 없다. 왜? 기적은 내 안에서 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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