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오빠들이 허락한 페미니즘은 필요없어”
[기자의 눈] “오빠들이 허락한 페미니즘은 필요없어”
  • 이하나 기자
  • 승인 2016.08.04 17:55
  • 수정 2021-01-05 0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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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로 촉발된 ‘메갈 논쟁’

‘진짜 페미니즘’ 논쟁까지

공기 같은 성차별 현실

자각하고 저항하는

여성의 입 막지 말라

 

 

성우 김자연씨가 7월 18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 인증 사진. ⓒ김자연 트위터 캡처
성우 김자연씨가 7월 18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 인증 사진. ⓒ김자연 트위터 캡처

 

여성 혐오와 페미니즘이 2016년 여름 한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페미니즘 문구가 적힌 티셔츠 한 장으로 촉발된 메갈리아 논쟁은 ‘진짜 페미니즘’ 논쟁으로 까지 번졌다. 실로 대단한 티셔츠다.

사건 전개는 이렇다. 게임 ‘클로저스’에 참여한 여성 성우가 페이스북 페이지 ‘메갈리아4’에서 판매한 티셔츠를 구매해 자신의 트위터에 인증하자, 일부 남성 게임 유저들이 비판을 쏟아 냈다. 여성 혐오 반대 커뮤니티가 판매한 옷을 입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게임을 만든 넥슨은 재빨리 해당 성우의 녹음 분량을 삭제했다. 웹툰 작가들이 ‘부당 해고’라고 비판하자, 일부 독자가 이들에 대한 보이콧 운동을 벌였고, 검열을 찬성한다는 예스컷(YES CUT) 운동도 등장했다. 진보 정당을 표방한 정의당 산하 문화예술위원회가 넥슨 비판 성명을 냈지만, “메갈을 옹호한다”며 일부 당원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당 지도부는 슬그머니 성명을 철회하면서 논란을 더 키웠고 심삼정 당 상임대표가 단합을 요청하는 호소문을 내놨지만 메갈리아 옹호 측과 반대 측 모두 등을 돌린 상태다.

논쟁의 중심에 선 메갈리아(이하 메갈)는 ‘여혐혐(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을 내세워 꼭 1년 전 탄생한 인터넷 커뮤니티다. 목표는 한 가지, ‘여성 혐오 반대’다. 온라인 공간에서 이뤄진 여성들의 자발적 연대의 힘은 가히 놀라웠다. 남성의 여성 혐오 발언들을 주어만 바꿔 따라 한 ‘미러링’ 방식으로 여성 혐오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장동민 등 연예인들의 여성 혐오 발언에 문제를 제기해 사과를 받아 냈고 법망을 피해 10년 넘게 운영되던 국내 최대 불법 음란물 사이트 소라넷 폐지에 일조했다. 여성 혐오 문제가 공론화되고 일간지가 여성 혐오와 페미니즘 관련 기사를 쏟아 내기 시작한 것도 메갈 등장 이후부터다.

여성들의 분노가 그 출발점인 메갈은 등장할 때부터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야 했다. ‘여성 혐오 클리셰(진부한 요소)’로 불릴 만한 여성 혐오 글들을 미러링하자, 상당수 남성들은 “비상식적이고 폭력적”이라며 경악했다. 메갈을 혐오 사이트인 ‘일베’와 동일 선상에 놓고 ‘여자 일베’로 호명했다. 오랜 세월 혐오의 대상이었던 여성이 혐오에 혐오로 대응하는 것을 두고 ‘남성 혐오’라고 명명했다. 결코 등치될 수 없는 여성과 남성의 권력 관계는 무시한 채 말이다.

‘개점 폐업’ 상태인 메갈에는 관심도 없는 남성들은 메갈에서 분화된 워마드, 레디즘을 비롯해 메갈을 옹호한 페이스북의 페미니즘 관련 페이지와 다음 카페, 일반 개인까지 메갈로 호명한다. 한 술 더떠 ‘메갈까지는 인정하지만, 워마드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경고도 나왔다. 메갈을 옹호하는 이들을 비롯해 페미니즘 지지글만 써도 “너 메갈이야?”라고 묻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는 행위 자체를 ‘메갈’로 낙인찍는 것이다. “메갈은 일베와 다르다”고만 해도 “역시 메갈이네”라는 화살이 돌아온다.

진보 논객들은 저마다 메갈 논쟁에 한 마디씩 거들고 있다. 한 지식인은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가 100년에 가까운데, 이들(메갈)은 그 역사를 아예 모르거나, 무시해도 좋은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고 썼고, 한 팟캐스트 진행자는 “메갈이 진보라면 진보 안한다”면서 “남들한테 욕먹지 않는 페미니즘 운동을 할 수 있는 분들로 다시 태어나 달라”고 말했다. 이들의 말은 ‘논쟁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페미니즘을 하라’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실제로 이 말들은 여성들 사이에서 ‘백인들도 노여워하지 않는 흑인 인권 운동’, ‘독재자도 즐기는 민주화 운동’으로 미러링되고 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페미니즘 명제를 차치하더라도, 어느 누가 페미니즘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그렇게 판단할 권리는 누가 부여했나. 메갈의 페미니즘을 ‘이상한 페미니즘’ 혹은 ‘가짜’라고 규정짓는 이들이 믿는 ‘진짜 페미니즘’은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진짜와 가짜를 운운할 만큼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남성이 이렇게 많았다는 사실도 놀랍기만 하다.

낙타를 숙주로 해 발생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퍼지면서 ‘우연히’ 탄생한 메갈이,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언뜻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으로 이어지는 ‘나비 효과’처럼 보이지만, 메갈과 지금의 논쟁은 우연의 결과물이 아니다. 오랜 시간 누적된 여성혐오에 대한 분노는 언제고 터질 필연이었다. 그것이 메갈 논쟁의 진짜 시작이다.

메갈의 운동 방식인 미러링은 여성 혐오 문제 발언들을 뒤집는 것에 시작됐다. 미러링의 가장 큰 성과는 의외로 여성들의 변화에서 발견된다. 고통스러워도 어쩔 수 없이 참았거나 ‘개념녀’로서 남성 중심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 외면했던 성차별적 현실을 바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 번 벗은 ‘코르셋’은 다시 조일 수 없다. 코르셋을 벗은 후의 자유를 맛봤기 때문이다. 이제 현실의 차별에 저항함으로써 더 나은 미래를 그리려고 한다. 그리고 이제 여성들은 외친다. “오빠들이 허락한 페미니즘은 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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