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노조 등 청년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12월 서울 청계광장 인근 도로에서 국민사퇴식을 열고 “박근혜 국가의 국민을 사퇴한다”며 주민등록증을 찢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알바노조 등 청년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12월 서울 청계광장 인근 도로에서 국민사퇴식을 열고 “박근혜 국가의 국민을 사퇴한다”며 주민등록증을 찢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며칠째 폭염이 잠을 설치게 한다.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 밤에는 아예 잠을 자지 않는 편이 좋다. 오히려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 선율을 들으면서 잠시나마 무더위를 잊는 게 현명하다.

멘델스존은 독일에 당시 소개됐던 셰익스피어 희곡인 ‘한여름 밤의 꿈’을 읽은 후에 ‘환상의 꿈’을 꾸기 시작한다. 단숨에 영감을 받아 서곡을 작곡했는데, 그때 그의 나이는 17세였다. 이후 멘델스존은 17년 뒤인 1843년에 국왕인 프로이센 빌헬름 4세의 탄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서곡 외에 모두 12곡의 무대 음악이 포함된 ‘한여름 밤의 꿈’을 완성했다. 그 중에서 ‘스케르초’ ‘간주곡’ ‘야상곡’ ‘결혼 행진곡’ 등 4개의 관현악곡과 서곡이 오늘날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다.

특히 ‘결혼 행진곡’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곡으로 전 세계의 결혼식장에서 피아노곡으로 연주되고 있다. 아름다운 결실을 가져오는 사랑의 기쁨을 서정적으로 잘 묘사한 탓일 게다. 그러기에 심지어 전혀 결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 곡을 들으면 사랑의 환상 속에 빠져들어 ‘결혼의 꿈’에 젖어들게 된다.

그러나 대한민국 현실은 결혼의 꿈을 거부한다. 올해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혼인 비율을 나타내는 조혼인율은 2015년 5.9건으로 전년보다 0.1건 감소했는데 이는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최저 기록이다. 혼인 건수도 30만 2800건으로 전년대비 0.9%나 감소해 200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그러니 평균 초혼의 연령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남성 32.6세, 여성 30세로 전년보다 각각 0.2세 상승했다.

이처럼 대한민국 30세 이상 미혼남녀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며칠전 발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5년도 전국 출산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30~44세 미혼남녀 839명(남성 446명, 여성 393명)에게 결혼하지 않은 이유를 물어본 결과 남성은 소득, 집 장만, 결혼 생활의 비용 부담, 고용 문제 등 ‘경제적 이유’(41.4%)를 압도적으로 들었다. 여성은 ‘눈높이에 맞는 사람을 찾지 못했기 때문’(32.5%)이 가장 많았으며, 경제적인 이유를 꼽은 비율은 11.2%에 불과했다.

이러한 결과는 무엇을 말해줄까. 남성은 1차적 삶의 욕구인 생존의 기본수단을 중시하고 있고 여성은 2차적인 삶의 욕구인 생활에서의 인간관계를 중시하고 있는데, 이 둘 모두가 한국사회에서는 충족되기 힘듦을 보여주고 있다. 불안정한 일자리와 주거 문제, 소득보장 미흡 등은 생존의 기본 수단의 결핍을 보여주고, 사회복지서비스나 사회복지 시스템의 부재는 전형적인 생활에서의 인간관계 단절이나 소외의 결과를 보여준다.

물론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간관계가 잘될 리 없고, 그 반대로 인간관계가 잘 되지 않는다면 의식주 해결도 힘들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게 필요조건인 의식주는 충분조건인 인간관계만 잘 된다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궁핍하더라도 사람끼리 화목하다면 언제든 궁핍을 물리칠 수 있다. 1인당 소득이 3만불 가까이 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왜 5000불도 안 되는 부탄 국민보다 행복하지 못한가.

셰익스피어는 ‘한여름 밤의 꿈’에서 이렇게 읊조렸다. “아무리 쓸모없고 비천한 것이라 해도 사랑은 그것들을 가치 있고 귀한 것으로 바꿔놓을 수 있어. 사랑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보니까.”

이 무더운 한여름 밤에,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 4막 후에 등장하는 아홉 번째 곡인 ‘결혼 행진곡’을 들으면서 34년 전 면사포를 쓴 매혹적인 아내의 모습을 눈이 아닌 마음으로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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