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페미니즘’과 ‘가짜 페미니즘’을 따지고 선을 긋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에 관해 페미니스트 홍승은 씨가 지난 7월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 전문을 본인 허락 하에 싣습니다. 글에 대한 의견은 saltnpepa@womennews.co.kr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편집자주>

 

요즘 메갈리아의 폭력성에 대한 격한 반응을 보면, 몇 년 전 ‘미수다’에서 남자 키에 대해 언급한 여성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사건이 떠오른다. 남자 키가 180이 안 되면 루저라는 말에 많은 남성들이 분노했고, 심지어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ㅇㅇ녀의 근황’이라며 그녀는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당시 나는 진보적 남자 교수에게 “남자들은 훨씬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개그프로그램이든 어디서든 못생기고 뚱뚱하고 나이 든 여자는 인간도 아닌 취급을 해오며 비웃지 않았나요”라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그렇게 대놓고 혐오하면...”과 같은 말로 나와는 전혀 다른 ‘폭력’에 집중했다. 그 뒤로도 예능과 각종 프로그램에서 여성을 향한 외모품평과 고나리질은 계속되고 있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뉴스에서는 남성에 의한 여성 살인, 폭력사건이 터져 나오고, 공공연한 시선 강간과 무례한 발언,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중 잣대가 오가지만, 사람들은 마치 이 문제들은 다 백지가 된 듯 ‘그래도 여성들이 폭력을 가하면 안 되지’의 태도로 일관한다. 궁금하다. 그들은 왜 어떤 '의외의 폭력'은 그토록 경계하면서 일상적 폭력은 가볍게 여기고 있는 걸까. 그 의외의 폭력이 우리 모두가 가담한 일상적 폭력에 의해 파생됐다고 말해도, 왜 시선은 전자로만 향하는 걸까.

이처럼 폭력에 대한 선별적 반응은 다시 나와 주위 사람들을 두려움과 분노에 떨게 하고 있다. 아는 여자 후배가 메갈리아 페이지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른다는 이유로 남자 동기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는 말을 들었다. 또 다른 후배는 같은 방을 쓰는 기숙사 언니들에게서 “메갈리아나 페미니즘 하는 애들은 너무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몰라.”라는 험담을 들었다고 한다. 후배는 자기 책상에 페미니즘 책들이 있는데, 언니들이 그걸 알고 그러는 건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페미니즘이나 메갈리아를 하나의 덩어리로 보는 것부터 이슬람국가(IS)나 나치보다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 이후로도 비슷한 사례를 계속 접했다. 며칠 전에는 친구가 남동생에게 “메갈리아는 진정한 페미니즘이 아니니, 누나는 페미니즘 공부 좀 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어떤 지인은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교수님으로부터 메갈리아를 멀리하라는 말을 들었다며 고민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여러 사건과 사람들의 반응에 화가 나서 카톡 프로필을 “Girls do not need a prince”로 바꿨다. 이게 그렇게나 불편하다면 차라리 나를 먼저 멀리해달라는 심정이었다. 프로필을 바꾸고 얼마 안 돼서 오래된 남자친구 A에게 카톡이 왔다. 메갈리아 티셔츠에 관해 물어볼 것이 있다고. 그 친구는 “메갈리아의 폭력성이 염려스럽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니까 너도 불편한 게 있을 것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메갈리아가 뭘 했는데?”라고 물었고, 친구는 딱 봐도 나무위키를 습득하고 띄엄띄엄 편집한 사건들을 나열하며 이런 폭력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자기도 잘 몰라서 몇 가지 자료를 보고 생각한 것들이며, 그래서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야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아서 나에게도 묻는다고 덧붙였다. 나는 친구에게 “나도 어느 부분에서 반성은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이 정도까지 염려하고 공격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나는 네가 사안에 대한 단편적 해석이 아니라 조금 더 시간 내서 깊이 공부하고 알아 가면 좋겠어. 안 그러면 그 사안에 대한 판단도 결국 기울어진 정보와 관념을 기반으로 결정 내릴 수밖에 없으니까”라고 말하고 책 몇 권과 좋은 칼럼을 소개해줬다. 다행히 친구는 자신이 조금 더 공부하고 알아가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메갈리아 페이스북 페이지 소송을 후원금을 마련하기 위해 메갈리아가 제작한 티셔츠. 중앙에는 ‘소녀들에겐 왕자가 필요치 않다(Girls do not need a prince)’는 문구가 적혔다.
메갈리아 페이스북 페이지 소송을 후원금을 마련하기 위해 메갈리아가 제작한 티셔츠. 중앙에는 ‘소녀들에겐 왕자가 필요치 않다(Girls do not need a prince)’는 문구가 적혔다.

생각해보니 친구는 아마 내가 발화하는 방식이 남자를 대놓고 비난하는 게 아니라서(?) 내가 메갈리아와는 다른 페미니즘을 지향한다고 생각하고, 이 사태를 어떻게 보는지 묻고 싶었던 것 같다. 비슷하게 최근에 올린 내 글을 공유한 몇몇 사람들이 “이런 게 진정한 페미니즘”이라는 식의 코멘트를 단 것을 목격했다. 내가 올리는 글에 ‘굳이’ 폭력적인 발화를 하지 않을 뿐이지, 솔직히 현실 세계에서 나는 그들이 경악하는 발언보다 훨씬 더한 생각을 하고, 말을 한다. 29년의 세상살이를 통해서 대다수 남성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 한남 비관론자이며, 남성 없는 미래와 동시에 여성 공동체를 꿈꾸며 살아가는 선별적 꼬뮤니스트이다. 카페에도 남자들, 특히 성찰 없는 진보마초가 오지 않길 바라는 폐쇄적인 사람이다. 짧은 인생, ‘화합’은 마음 맞는 여성(혹은 자아 성찰이 가능하고 부끄러움을 알고 부지런한 소수의 남성)과 함께 하고 싶고, 배울 자세나 성찰할 의지가 없는 누군가를 굳이 설득하고 알려줘서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지금 나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벅차니까.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아닌가?

진정한 페미니즘? 페미니즘은 단 하나 혹은 메갈리아와 메갈리아 아닌 것 정도로만 나뉜 게 아니다. 한 사람의 정체성도 페미니스트 혹은 메갈리안이라는 하나로만 형성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쉽게 “너는 진정한 페미니즘을 하고 있구나.”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각자의 삶을 자유롭게 하는 개개인의 페미니즘이 있으며, 정치적 사안에 따라 협력하거나 투쟁하며 그 속에서 끊임없이 자정하고, 의지에 따라 누군가와 화합하거나 갈등을 일으키며 살아갈 수 있을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페미니스트가 세상의 구원자요 천사요 모든 것을 아우르는 존재는 아니니까. 

나는 누군가가 허락하는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될 생각이 없다. 이것은 나도 모르게 가하는 폭력을 성찰하지 않겠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의 거부이다. 나는 내 존재 자체로 자유로워지고 싶고,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 자유롭길 바랄 뿐이다. 혹, 진정한 페미니즘이 있다고 믿는다면 스스로가 진정한 페미니스트의 모델이 되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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