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철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2015년 2월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착석하고 있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2015년 2월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착석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실에 따라 국민 기본권 수호와 법치주의 실현을 내걸고 이듬해 9월 창립됐다. 여성과 장애인 등 소수자 기본권 보호 활동도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다. 

박한철 헌재 소장은 “헌재는 특히 창설 이래 여성 문제나 언론 자유와 관련해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다른 결정이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 만들어진 불합리한 적폐를 해결하는 효과를 거뒀다면 여성 관련 판결은 실질적으로 세상을 바꿨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제헌절(17일) 68돌을 맞아 헌재의 여성인권 관련 주요 판결을 짚어봤다.

❶ 호주제 폐지

“인도와 중국 등 남초 현상이 심각한 아시아 국가들이 산업화, 도시화는 물론이고 여성운동과 교육의 힘으로 성비 추세 전환에 성공한 한국을 참고해야 한다.”

지난해 11월 26일자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실린 ‘‘남초 현상에 분투하는 아시아-한국은 성비 불균형의 물결을 어떻게 되돌렸는가’ 제하의 기사 내용이다.

유교 전통이 강한 한국은 대표적인 남아 선호 국가였다. 1980년대 이후 여아만 낙태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1990년대 셋째 아이 성비는 여아 100명당 남아 수가 193명이나 됐다. 독재 정권이 무너진 후 민주화 시대가 열리고 여성운동이 활발해지면서 변화의 물결이 일었다. 2005년 헌재의 호주제 위헌 판결 이후 남아 선호 사상의 뿌리도 흔들렸다. 박 소장은 “호주제 판결은 남녀 성비를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물론 그 뒤에는 수많은 여성들의 눈물과 노력이 있었다”고 상찬했다.

당시 헌재는 “호주제는 성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한 차별로 호주승계 순위, 혼인 시 신분관계 형성, 자녀의 신분관계 형성에 있어 정당한 이유 없이 남녀를 차별하는 제도”라며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호주제가 혼인과 가족제도에 관한 헌법의 최고 가치규범인 양성평등과 개인의 존엄을 해친다고 본 것이다.

❷ 동성동본 금혼제도 폐지

“동성동본 금혼 40년만에 폐지, 6만여쌍 부부 ‘족쇄 해방’” 여성신문이 헌재의 동성동본 금혼제도 헌법불합치 판결 후 관련 내용을 보도한 1997년 8월 1일자(436호) 기사 제목이다.

1977년 동성동본인 20대 남녀가 “헤어지는 게 무서워 함께 죽는다”는 유서를 남기고 여의도의 한 호텔 옥상에서 투신자살했다. 여성계는 이 사건을 계기로 “동성동본 금혼은 구시대적 유물”이라고 지적하며 폐지운동에 나섰다. 1997년 동성동본 부부 8쌍이 헌재에 제기한 ‘동성동본 금혼’ 위헌 소송에 마침내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다. 당시 헌재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규정한 헌법이념과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의 성립·유지라는 헌법 규정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❸ 혼인빙자간음죄, 간통죄 폐지

헌재는 2009년 형법상 혼인빙자간음죄, 2015년 2월 간통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2009년 11월 “혼인빙자간음죄는 남녀평등에 반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성행위는 사생활 영역에 속하는 부분으로 국가의 간섭과 규제를 자제해야 한다”며 위헌을 결정했다. 당시 여성계도 “이 죄는 여성은 정조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부정하고 있다”며 폐지를 주장했다.

특히 간통죄 위헌 결정은 국가가 국민의 침실까지 봐서야 되겠느냐는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를 반영한 결정이다. 1953년 형법 제정 62년만에 다섯 번째 심리에서 이같은 판결이 내려졌다. 헌재는 “간통죄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한다”고 결정 이유를 밝혔다. 민사상의 손해배상 책임은 모르되 국가권력이 개입해 형사적 책임을 묻는 건 과도하다는 것이 헌재의 판단이다.

다만 여성인 이정미 재판관이 “간통죄 폐지가 성도덕의 문란을 초래할 수 있으며, 그 결과 혼인과 가족 공동체의 해체를 촉진시킬 수 있다”며 반대의견을 낸 점이 주목된다. 다만 20대 국회가 간통죄 처벌로 징역형이 아닌 벌금형을 둔다거나 완화하는 장치를 두면 간통죄가 살아날 수 있다는 게 헌재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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