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근에 생리대 가격인상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물감을 칠해 붙인 생리대와 ‘생리대 가격 국가통제’ ‘생리 인식 개선 촉구’ 문구가 설치돼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7월 3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근에 생리대 가격인상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물감을 칠해 붙인 생리대와 ‘생리대 가격 국가통제’ ‘생리 인식 개선 촉구’ 문구가 설치돼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아주 오래 전 일이다. ‘여성 생리와 심리’라는, 70년대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제목의 수업이었는데 조별 토론 시간이었던가, 어쩌다 보니 남자 군대 가산점 문제로 갑론을박이었다. 그때만 해도 남학생들이 여학생들보다 몇 배나 많던 시절이었으니 사내란 것들은 거의 죄다 마땅히 가산점을 줘야 한다고 열을 올렸다. 그 수업을 담당하던 교수는 외국인이었는데 우리 토론을 옆에서 듣더니 슬그머니 교실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봉지 하나가 들려 있었고 그 내용물을 모든 남학생들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생리대였다.

우리는 경악했다. 그런데 그 다음 말에 거의 기절했다. 일주일 동안 그걸 속옷에 차고 지내면서 소감문을 써내란다. 세상에!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과제니 할 수 없이 수행해야 했다. 그 다음 주 수업 시간에 소감을 물었다. 도대체 불편하기 짝이 없고 모든 이들의 시선이 불룩해진 바지에 모아지는 것 같아 얼굴을 들기 민망했다는 대답이 대다수였다. 교수는 웃으면서 다시 또 다른 생리대를 나눠주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거기에 물을 붓고 착용하란다. 점입가경이 아니라 설상가상도 유분수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다음 말이 지금도 또렷하다.

“분명히 불편할 것입니다. 뽀송뽀송한 생리대도 불편한데 축축해진 것이 얼마나 더 불편하겠습니까? 하지만 여성들은 물이 아니라 피가 밴 것을 매달 그리고 폐경 때까지 거의 평생 차고 다녀야 합니다. 여러분은 군대 3년 운운하지만 제대하면 끝이지요?” 충격이었다. 내가 양성평등주의자 혹은 페미니스트로 당당하게 살아간 전환점은 그 수업이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여혐이니 하는 말들이 운운되고 심지어 혐오살인까지 벌어지고 있는 건 충격적인 일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독립적이며 인격적이다. 단지 염색체 배열의 차이 때문에 성이 달라졌을 뿐인데 불평등과 차별 그리고 착취가 횡행하는 건 야만이다. 사회학자 거더 러너의 예리한 지적에 주목해야 한다. “차이를 근거로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열등감을 입히고 반복 학습함으로써 차별이 생겨난다.” 차이와 차별은 분명 다르다. 그런데 차이를 근거로 차별을 정의하려는 자들이 있다. 이른바 마초들만 그런 게 아니다. 심지어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남성들도 그런 사고의 편향성을 지닌 경우가 많다.

페미니즘 혁명은 단순히 남성의 특권을 제거하는 게 아니라 성별 간의 차이 자체를 없애는 목표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 목적은 페미니즘이라는 말 자체가 사어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남녀 모두 정상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으로 통합되어야 한다. 성차별과 양성 불평등은 분명 가장 오래되고 왜곡된 비겁한 관행이다. 근육이 발달해 생긴 근력의 차이일 뿐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몸의 근육이 아니라 정신의 근육, 마음의 근육이다. 정신 근육을 키우지 않으면 도태된다. 낡은 프레임을 깨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 창조니 상상력이니 아무리 떠들어봤자 소용없다. 중요한 것은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는 바탕 위에서 인간의 가치와 기술의 조화를 부단히 추구하며 모두가 협력할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그게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현재고 미래다. 불평등과 억압의 감옥에 머무르는 자는 시대착오자요 미래를 제대로 살아가지 못할 일종의 장애인이다.

여전히 성폭력, 성희롱, 성 착취 그리고 이젠 심지어 ‘묻지마 살인’까지 터지고 있는 건 야만이고 퇴행이며 우매함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전자발찌도 중요하지만 생리대를 차고 한 달쯤 지내게 해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든다. 남성우월적 사고의 시대에 생리대 착용 과제를 내준 그 미국인 교수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내가 대학 시절 가장 고맙게 여기는 수업의 하나였던 그 수업의 가치는 두고두고 뇌리에 떠나지 않는다. 생각이 혁명적으로 바뀌어야 할 때다. 더 늦기 전에, 더 창피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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