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현지 시간) 미국 연방대법원이 텍사스 주의 낙태 규제법 위헌 판결을 내리자, 연방대법원 앞에서 대기하던 낙태 합법화 운동가들이 환호하고 있다. ⓒWhole Woman’s Health 페이스북
27일(현지 시간) 미국 연방대법원이 텍사스 주의 낙태 규제법 위헌 판결을 내리자, 연방대법원 앞에서 대기하던 낙태 합법화 운동가들이 환호하고 있다. ⓒWhole Woman’s Health 페이스북

미 연방대법원, 5대3으로 텍사스 주 낙태 규제법 위헌 결정 

대법관들 “여성 재생산권 제한하고 여성 건강 저해” 

“낙태 합법화 이후 여성 재생산권 관련 가장 중요한 판결”

다른 주 법안과 미 대선에도 영향 미칠 듯

미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재생산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텍사스 주의 낙태 규제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유사한 법이 논의되고 있는 다른 주(州)는 물론, 오는 11월 미 대선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국 여성운동가들은 이번 판결이 ‘1973년 연방대법원의 낙태 합법화 판결 이후 여성의 재생산권에 관한 가장 중요한 판결’이라고 평했다. 

CNN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미 연방대법원은 27일(현지 시간) 텍사스 주의 낙태 규제법에 대해 찬성 5, 반대 3의 결정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은 판결문에서 “텍사스주의 낙태 규제법은 낙태 시설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요구하지만, 이를 정당화할 만한 의료 혜택을 제공한다는 증거는 없다”며 “이 법은 여성의 낙태 권리를 위헌적으로 제한하는 조치”라고 밝혔다.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대법관도 판결문에서 “이성적으로, 낙태 규제법이 여성의 건강을 보호한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텍사스 주는 지난 2013년 임신 20주 이후 태아의 낙태를 금지하는 법(House Bill 2)을 제정했다. 낙태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 시설과 의사의 자격 조건도 대폭 강화했다. 낙태 수술은 수술실과 충분한 의료 인력을 갖춘 외과 병원에서만 가능하며, 수술 담당 의사는 위급한 경우 환자를 약 50km 이내의 대형 병원으로 보낼 수 있어야만 한다는 식이었다. 

법이 시행되자 낙태 시설 대부분은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폐쇄됐다. 2013년 11월 기준으로 텍사스주 낙태 시설 41곳이 22곳으로 줄었다. 텍사스 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샌 안토니오를 기준으로 서쪽 지역엔 낙태 시설이 아예 사라졌다. 만일 이번에 낙태 규제법 합헌 판결이 나왔다면, 오스틴·샌 안토니오·댈러스 등 대도시 지역 낙태 시설 9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낙태 규제법을 추진한 공화당 측은 “여성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법”이라고 주장했으나, 반대 진영은 ‘여성의 재생산권을 침해한다’며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텍사스 주 외곽에 거주하는 여성들은 법 시행 이후 낙태 시술을 받기 위해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해야 했다고 증언했다. 낙태 수술이 가능한 병원이 줄어들자 환자들 간 경쟁률은 치열해졌고, 비용도 법안 통과 이전 수백 달러에서 수천 달러로 치솟았다. 여성들이 더 큰 피해를 보게 됐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27일(현지 시간) 미국 연방대법원이 텍사스 주의 낙태 규제법 위헌 판결을 내리자, 연방대법원 앞에서 대기하던 낙태 합법화 운동가들이 환호하고 있다. ⓒWhole Woman’s Health 페이스북
27일(현지 시간) 미국 연방대법원이 텍사스 주의 낙태 규제법 위헌 판결을 내리자, 연방대법원 앞에서 대기하던 낙태 합법화 운동가들이 환호하고 있다. ⓒWhole Woman’s Health 페이스북

이번 소송을 제기한 단체 중 하나인 미국 여성단체 ‘Whole Woman’s Health’는 이날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오늘 연방대법원의 결정으로 텍사스 주와 전 미국이 전환점을 맞았다”며 “앞으로도 낙태 수술을 원하는 모든 여성이 품위와 존중 속에서 보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 영국 가디언지 등 언론들도 이번 판결이 ‘1973년 연방대법원의 낙태 합법화 판결 이후 여성의 재생산권에 관한 가장 중요한 판결’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판결은 지난 2월 보수 성향의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이 사망해 진보 성향의 대법관과 보수 성향의 대법관이 각각 4명씩 남게 된 상황에서 내려져 더 주목받았다. 미 연방대법원의 결정이 동수로 나오면 하급심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데, 하급법원은 이미 텍사스 주 정부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보수 성향의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이 위헌 쪽에 서면서 최종 위헌 결정이 내려졌다.

한편,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는 판결 직후 공식 트위터를 통해 “이번 판결은 텍사스와 전 미국 여성의 승리”라며 반겼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성명을 통해 “이번 판결이 분명히 밝혔듯이, 이러한 법은 여성의 건강을 해치며 여성의 재생산의 자유를 위헌적으로 제한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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