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1차 청문회가 열렸던 2015년 12월 16일 서울 중구 YWCA 강당에서 참고인 증언에 참석한 김관홍(오른쪽) 민간잠수사가 증언 도중 눈물을 닦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4‧16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1차 청문회가 열렸던 2015년 12월 16일 서울 중구 YWCA 강당에서 참고인 증언에 참석한 김관홍(오른쪽) 민간잠수사가 증언 도중 눈물을 닦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세월호 참사 당시 몸을 사리지 않고 단원고 아이들을 구해내 ‘세월호 의인’으로 불린 고 김관홍 잠수사 추모식이 18일 저녁 서울서북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세월호 참사 뒤 수중 선체 수색 작업에 합류해 두달 반 넘게 구조 작업을 했던 김 잠수사는 지난해 12월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연 1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참사 수습 현장의 온갖 불합리를 증언했다.

잠수병을 앓던 그는 잠수를 포기하고 낮에는 비닐하우스에서 꽃을 키우고 밤에는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이어오면서도 세월호 진상규명 활동에 함께해 왔다. 4‧13 총선에선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선거운동을 돕기도 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그의 명복을 빌고,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시민 500여 명이 장례식장을 찾았다. 박래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은 “(김 잠수사는) 세월호에서 아이들을 구조하지 않은 놈들, 목숨보다 돈 먼저 챙기는 놈들, 제 잇속 챙기느라 다른 사람을 고통에 몰아넣는 놈들에게 멋지게 복수하자고 했었다”며 생전 기억을 떠올렸다. 이어 “아직 아빠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세 아이와 너의 곁에서 아파했던 아내를 보니 마음이 찢어진다”며 흐느꼈다.

김씨와 함께 세월호 수색 활동을 펼쳤던 김상우 씨는 “관홍이는 세월호 수색 시 자기가 안 하면 다른 사람이 힘들다는 이유로 몸 사리지 않고 씩씩하게 했다”며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민간 잠수사의 명예회복과 더불어 세월호의 진상 규명과 수습, 인양을 위한 일에 적극 나섰다. 김 잠수사의 진심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날 고인과 남다른 인연을 맺은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추모식 도중 굵은 눈물을 쏟아내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박 의원은 “김관홍 씨는 선거운동 내내 붙어 다니며 ‘허리가 왜 이리 굽었냐, 목소리가 왜 이리 작냐’라고 잔소리했다”며 “돌이켜 보면 잠수사님은 저의 당선이 정말 절실했고, 저를 통해 해야 했던 일이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가슴에는 그 어떤 물로도 끌 수 없는 불이 번지고 있고 이 불을 등불로 만들어 김씨가 꿈꾸던 사회를 꼭 이뤄야 한다”라며 “우리 눈물로 그 불이 꺼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세월호 피해 유가족 70여 명과 정치인들이 빈소를 찾아 유가족과 슬픔을 나눴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는 “민간 잠수사와 같이 고생 많았던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며 “특별법 발의를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정치인들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김 잠수사의 갑작스런 죽음을 추모했다.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은 “김 잠수사가 의로운 일을 하고도 국가에 버림받고 죽음으로 내몰린 것이 과연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주겠느냐”며 “이기적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지키는 사람이 되라는 생각을 젊은 세대에게 심어주지 않았을지 염려된다”고 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고인이 세월호 이전과 이후에 매우 달라지고 힘들어했다는 주변의 증언에 가슴이 먹먹해진다”며 “세월호 청문회에 출석해서 눈물의 증언을 하는 등 세월호 희생자와 끝까지 함께 했던 의인이었다. 구조 작업에 헌신했던 김 잠수부를 우리 모두는 기억하고 있다”고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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