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당 비례 1번·대통령도 ‘이공계 출신’아지만
자연공학계열 석박사 1만7000명 ‘경력단절’
연구개발 그만둔 이유는 ‘육아’
유연근무제·직장어린이집 확대가 해법
기관장·관리자 대상 교육 필요
여성 과학자에게 임신과 출산, 육아는 최대 걸림돌이다. ‘엄마’가 되면 아예 일을 포기하는 여성 과학기술인(과기인)이 상당하다. 육아휴직을 낼 수 없는 보수적인 조직 분위기도 걸림돌이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과학기술 분야의 특성상 출산이나 육아로 인한 공백기도 여성들이 복귀하는 데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국 연구자 중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평가받는 김빛내리 서울대 교수조차도 “박사후연구원을 다녀온 뒤 임신할 계획이었는데 결혼하고 바로 아이가 생기면서 연구를 그만둘 생각도 했다”고 말할 정도다.
통계청이 발표한 전공계열별 출산･육아 등 경력단절 여성과학기술인력 현황을 살펴보면 2014년 자연･공학계열을 전공한 기혼여성 중 출산･육아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은 30만3000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석·박사 학위자가 1만7000명이었으며 학사가 16만4000명, 전문학사는 12만3000명이나 됐다.
경력단절 후 복귀가 쉽지 않은 과학기술 분야의 특수성으로 인해 여성 과기인들의 경제활동참가율은 남성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지난해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가 발간한 ‘2014년 여성과학기술인 양성 및 활용통계 재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자연･공학계열 여성과 남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각각 62.4%, 92.1%로 격차가 29.7%에 달했다. 특히 기혼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자연 계열 50.7%, 공학 계열 55.1%에 그쳐 결혼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이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여성 과학자의 수는 늘고 있지만 고위직 남성 쏠림 현상도 여전하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자료에 따르면 25개 출연연의 여성 관리자는 전체 관리자의 6.7%에 불과했다. 최근 3년 동안 여성 관리자 비중은 6.5%에서 6.7%로 거의 변화가 없었고 직급이 높아질수록 여성의 비중은 더 낮아졌다. 25개 출연연 중 여성이 기관장을 맡고 있는 곳도 4군데에 불과했다.
정부는 2018년까지 연구개발(R&D) 분야 여성일자리 비율을 20%까지 올리고 40대 여성 이공계 인력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6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로 발표했다. 여성 관리자 목표제까지 도입했지만 제도가 연구 현장에선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박상희(40)씨도 얼마전까지 ‘경력단절 여성’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했다. 기능성화장품 소재에 대한 전문 연구를 진행하는 기업인 아데나에서 2005년부터 7년간 연구개발부터 제품화까지 도맡는 기획 업무를 맡아 경력을 쌓았다. 하지만 아이의 유치원 입학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을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믿고 맡길만한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일과 육아의 갈림길에서 어쩔 수 없이 육아를 택했지만 즐겁지만은 않았다. 박씨는 “오랫동안 일을 해오면서 자부심이 컸는데 그만두다보니 늘 일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고 했다. 3년 후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여유가 생긴 그는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의 경력복귀 지원사업을 통해 재취업의 꿈을 키울 수 있게 됐다. 특히 3년 전 함께 일하던 회사 대표의 제안으로 지난해 5월부터 아데나로 다시 복귀해 일하고 있다. 박씨는 “회사와의 논의 끝에 유연근무제를 통해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출근하고 있다”며 “두 가지를 모두 다 잘해내려고 욕심을 부리기 보다는 우선순위를 정하고 포기할 것은 과감히 포기하니 일과 가정을 병행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정부의 제도, 기업의 배려, 본인의 의지가 결합하면서 경력복귀가 가능한 사례다. 최근엔 출연연이 중심이 돼 우수한 여성 과기인의 유출을 막고 남성과 동등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앞장서고 있다. 에너지기술연구원은 정부출연연구소 최초로 자동육아휴직제를 도입했다. 여성연구자가 출산휴가를 신청함께 동시에 육아휴직이 신청되기 때문에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 육아휴직, 출산전후휴가, 배우자출산휴가를 적극 권장하고 있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정부출연연구소 중 유일하게 출산장려금도 지급한다. 첫째 100만원, 둘째 200만원, 셋째 이상 300만원을 지급한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지난 2013년 20억원을 들여 50명 규모의 직장 어린이집을 열었다. 대덕특구 내 출연연 최초의 직장 어린이집이다. 이곳에 보내기 위해선 바늘구멍보다 더 치열한 경쟁률을 뚫어야 할 정도로 연구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수요가 늘면서 규모를 늘려 증축도 했다. 한국표준연구원 김숙경 삶의질측정표준본부 본부장은 “최근엔 해외에서 활동 중인 연구원 부부가 직장 어린이집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지원한 경우도 있었다”며 “보육시설이 우수한 여성 인력의 유출도 막고 해외 우수한 인력을 끌어당기는 역할도 한 셈”이라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직장 내 수유실, 난임휴직제, 시간선택제를 사용하는 직원들이 늘고 남성 육아휴직자도 나오는 등 조직 분위기가 달라졌다”며 “무엇보다 기관장, 관리자의 의지가 중요하다. 일·가정 양립 제도가 연구 현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보직자 이상, 프로젝트 리더급 연구원들게 제도의 필요성을 알리는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