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편집위원. keyma@hanmail.net

온 국민에게 평화와 기쁨의 메시지를 안겨준 남북 정상의 만남은 몇

주가 지나간 지금도 가슴을 설레게 한다. 앞선 장마에 내리는 빗줄기

를 보면서도 남북이 만날 오작교의 그날을 상상해 본다. 그러나 이제

는 벅찬 감격을 넘어 현실적인 대안을 생각해야 할 때이다. 남북한 국

민들이 감격에 젖어 있을 때, 한국의 재벌들은 ‘자기 주머니 불리

기’를 위해 호시탐탐(?) 북쪽의 노른자 땅을 바라보며 군침을 흘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 정부도 당장의 경제회복과 개발을 위해 미

래를 유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며칠 뒤 우연히 TV에서 현대 모 사장의 발

언을 접하게 되었다. 남북회담의 감격스런 성사에 대한 질문에 그는

대뜸 “빨리 금강산에 골프장을 짓고 싶다”며 너른 땅이 개발도 되지

않은 채 ‘자연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것을 매우 아쉬워했다. 현

대측은 골프장 외에도 여관 임대, 스키장 건설 등 위락단지 조성을 위

한 개발을 서두른다. “금강산은 자동차로 못 올라갑니다... 금강산에

삭도(케이블카)를 만들자고 하는데 반대했습니다. 늙은 사람들이 얼마

나 된다고 자연환경을 훼손하느냐 반대했지요”라고 말한 김정일 국방

위원장과 대조되는 발언이다. 물론 김 위원장의 외교상 발언일 수도

있다는 점을 전제하더라도 말이다.

문제는 다가올 통일조국의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에 뒤이은 남북간의 활발한 경제협력은 무분별한 환경파

괴를 가져올 수 있다. 이미 우리는 몇가지 실례를 가지고 있다.

개발과 지역발전이라는 미명하에 덕유산과 설악산, 지리산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립공원이 관광단지로 전락, 호텔과 스키장 등의 위락시설

건설로 몸살을 앓고 있는 실례를 가지고 있으며, 자연생태계가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을 초과한 인원의 이용으로 자연훼손이 대규모로 진행되

고 있다.

2년전 건설교통부는 남북한의 교류협력에 대비하여 남북 접경지역인

비무장지대 내에 대규모 공단건설과 평화시(市) 건설을 계획했었다. 세

계적으로도 드물게 자연생태계가 보존되어 있는 곳, 40년 이상 민족의

아픔이 담겨져 있는 곳조차 싹 쓸어 공장화하겠다는 발상을 ‘감히’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통일 전후의 경제협력이라는 배후에서 일어날

‘사건들’에 대한 나쁜 상상을 ‘감히’ 떠오르도록 강제한다.

이와 같이 생태계 보전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개발이 불러일

으킨 환경재앙의 교훈을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향후 한반도의 통

일을 염두에 둔 균형있고 친환경적인 국토개발의 관점이 결여된 계획

들은 재고되어야 한다

각국의 이데올로기를 넘어서서 바라봐야 할 것은 우리의 미래이다.

기쁨에 차 있는 통일조국의 미래가 또다시 산성비와 매연가스로 얼룩

져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메마른 땅을 만들자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예로부터 우리 나라를 일컬어 오던 금수강산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남북 생태공동체 준비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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