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여성논설위원
6·25전쟁으로 남편 납북
수필 통해 힘겨운 싸움 알려
“오죽하면 결혼정보회사 등급에서 방학이 있고 여유롭게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교사는 상위권인 반면, 여기자는 바쁘고 드센 이미지 탓에 꼴찌라는 소문이 있겠나” 얼마 전 ‘기자협회보’에 실린 기사 중 특히 눈에 띈 대목이다. 아직도 여기자를 ‘센 언니’로 보고 결혼대상자로도 좋아하지 않는다니, 여기자에 대한 편견만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모양이다.
한국 최초의 여성논설위원으로 알려진 정충량(1916∼1991)은 “졸업하고 기자가 되겠다고 하였더니…유명한 여류시인 누구누구도 밖에서는 어엿한 존재이지만 신문사 안에서는 만년 문화부기자요. 남자들의 입씨름에 오르내리면서 대우는 못 받고 있다면서 그러지 말고 너도 좋은 데 시집갈 생각이나 하라고 한다…신문사 안에서 여자라고 대접을 못 받는다면 밖에 나가 일하는데도 지장이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여자의 기자직업도 별게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정충량은 8·15광복과 함께 서울로 피난 와서 여자의 직업으로 좋지 않다던 ‘여기자’ 생활로 밥벌이하며 매일 글을 썼다. 전후에는 사회·정치문제에 당당한 목소리를 내는 연합신문 논설위원으로, 또 1960년대에는 언론학 전공 대학 교수이자 여성운동가로, 1970년대 후반 미국행을 택할 때까지는 여성교육자로 활약했다.
정충량은 이화여전 문과 졸업 직후 태평양전쟁으로 수탈이 심하던 일제 말기에 대가족의 맏며느리로 들어가 7~8년간 시집살이를 했다. 해방 후에는 월남해 경향신문사 문화부 기자로 활약했으나 6·25전쟁으로 남편이 납북되는 비극을 겪고 가장으로서 피난살이와 가난을 이겨내야 했다.
그는 1961년 여기자클럽 창설로 회장직을 맡았으나 12월 신문 폐간으로 실직했다. 이후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이대 학보사 주간과 출판부장직을 맡았다. 그 외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상임이사와 부회장(1962), 주부클럽연합회 회장(1968∼1985) 등과 세계여기자작가대회 한국대표(1969~71), 세계여기자작가협회 한국지부 회장(1970), 숙명여고 교장(1977∼88)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평론집 『마음의 꽃밭』(1959), 『여성과 에티켓』(1964), 공저 『이화 80년사』(1967), 수필집 『수문장의 변』(1977) 등이 있다. 그는 언론계와 교육계에 한 획을 그은 여성지성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수필을 통해 고백한 내용을 살펴보면 근현대사의 역경 속에서 힘겹게 살아온 한 여성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어떠한 고난도 나를 꺾어 버릴 수 없었던 굳센 의지, 이런 것들이 세속적인 고난을 겪는 동안 잃어버리고 보니 모든 것에 자신을 잃은 것 같다. 무슨 일에든지 공포가 앞선다”(｢독백｣)라고 고백하면서도 “근 10년 동안 되풀이되는 이런 생활에서 하나의 생활철학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여성으로서의 인간으로서의, 내 생활과 학연생활을 병행시키는 방법’이었다. 정충량은 이 길이 제일 현명한 것이라고 믿었다.
“이중, 삼중의 애로에 부닥칠 때 나는 가끔 하려던 일을 포기하려는 때가 많다. 그것이 오히려 육체적으로 안이한 생활이기에….”(｢독백｣) 이러한 그의 푸념이 아직도 적용되는 여성의 현실이라는 점이 씁쓸하다. 정충량은 여성지성인으로서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자기검열을 통해 언론인 생활을 지켜나가려고 노력했다.
“내가 사회문제 특히 여성, 아동 문제에 붓을 들게 된 연유는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은 데 있으며 글을 쓰는 동안에 나는 지도자나 혁명가가 되겠다는 것이 얼마나 나에게는 주제 넘는 생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에게는 전공의 길이 이제부터라고 생각하다. 만일에 여지껏 한 공부에 뼈대 정도가 섰다면 이제부터 살을 붙여서 완성시킴으로써 나는 비로소 사회평론가라는 렛텔을 감당할 것 같다.”(｢청운의 꿈이 변해서｣에서)
정충량은 수필집 『수문장의 변』(1977)에 기자로서 ‘사회의 목탁으로 부끄럽지 않으려 노력한’ 자신의 삶을 겸손하면서도 열정적인 목소리로 담아냈다. “글을 쓸 때만은 언제나 인간의 순수한 바탕으로 돌아가는 그 즐거움 때문에 나는 글이라고 긁적거리고 지내왔는지 모른다. 그것도 뼈를 깎는 작업에 나를 몽땅 투입하면서 말이다.”(｢후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