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처음 배워 100여 점 그려
“진작 알았으면 했을 텐데 몰랐다. 미술 선생님이 색칠하라고 줬는데 굉장히 좋더라. 선생님한테 맨날 그런다. 이거(그림) 아니면 힘이 없어서 못 산다고. 난 아파도 이걸 해야 한다고.”
올해 86세인 심희수 할머니는 3월 12일과 13일 이틀간 서울 역삼1문화센터 전시실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2013년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심 할머니는 지금까지 100여 점의 그림을 그려 주위를 놀라게 했다.
2011년 남편과 사별한 심 할머니는 자녀들의 권유로 강남구의 노인대상 미술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19살에 결혼해 한평생 미술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지만, 첫날부터 할머니의 색칠은 예사롭지 않았다.
심 할머니의 큰딸인 허태영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무료함도 달래고, 치매 예방도 하실 겸 미술교육을 권했다”며 “어머니한테 이런 능력이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식구들 모두 깜짝 놀랐다. 비록 대가의 작품을 그대로 옮겨 그린 모작이지만 집에 묵혀 두기엔 너무 아까웠다”고 말했다.
할머니 실력에 감탄한 손자는 늘 “전시회를 열어드리겠다”고 약속했고 85세 생신을 기념해 드디어 50여 점의 작품을 골라 개인전을 열게 된 것이다. 할머니는 우리나라 민화부터 모네와 세잔, 고흐, 클림트, 천경자까지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그대로 옮겨 그렸다.
그림을 처음 배우기 시작한 80대 할머니의 솜씨라고 믿기 어려운 그림들이다. “오래 앉아있어도 지루하지 않고 시간 가는 것도 모른다”는 할머니는 “건강이 안 좋았다”면서도 “이제 다 나은 것 같다. 어제도 스케치했다”고 말했다.
허씨는 “어머니는 2남 5녀 7남매를 키우며 대살림을 하셨다”며 “아버지가 워낙 고루한 분이라 어머니가 안 보이면 난리가 났다. 여자는 집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이었다”고 회상했다.
“몰랐으면 그냥 죽는 거지”라며 “이제라도 그리게 돼 너무 좋다”는 할머니는 어느 그림을 가장 아끼느냐는 질문에 “그림은 다 아낀다”면서도 “자식들에게 나눠준 그림은 하나도 아깝지 않다. 남는 게 내 것이다. 다 골라서 가져가라고 했다”고 말했다.
벽에 걸린 클림트의 ‘키스’가 유독 눈에 띈다. “미술 전시회에서 우연히 손바닥만 한 클림트의 그림을 주더라”며 “너무 그려보고 싶어서 이틀 만에 따라 그린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노년의 무료함을 달래고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취미를 찾다가 숨은 재능까지 발견한 할머니는 삼성병원이 시상한 여성건강클리닉 ‘스마트 아티스트’ 상도 받았다.
“그림을 취미로 가지면 좋다. 시간도 잘 가지만 그보다 큰 이유는 가장 빨리 ‘내 것’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좋지 않나. 한 장 그려서 탁 내놓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