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반도체·IT기업에서 일하던 2000년 초반 때의 일이다. 애플(Apple)이 휴대폰을 만든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대부분 냉소적이었다. 지금은 아이폰을 뺀 스마트폰은 얘기가 되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말도 안 된다’ ‘컴퓨터나 MP3를 만드는 애플이 어떻게?’라며 불가능하다는 듯 일갈했고 필패할 것이라고 단정했다.
애플의 상품은 분석했지만 애플의 업(業)은 이해하지 못했다. 필자가 이해하는 애플의 업은 기계와 사용자간의 인터페이스를 가장 쉽고 편리하게 만들어서 사용자들을 자신의 패쇄된 공간으로 초대하고 충성도를 높여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인간친화적인 GUI(Graphic User Interface)를 기초로 한 패쇄된 시스템을 고집했고 아마도 그것이 그가 추구한 애플이라는 기업의 저변에 흐르는 업의 본질일 것이다.
우리나라 스마트폰은 가전 매장에 전시되지만 애플은 백화점 1층의 생활용품 매장과 근접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는 제품 기능에 집중된 광고를 하는 반면 애플을 통한 일상의 변화를 소재로 한 광고를 제작하는 것이 이러한 차이일 것이다.
일본의 샤프가 대만의 폭스콘에 매각됐다는 뉴스가 화제다. 창업 104년 기업으로 샤프 연필을 비롯해 수많은 세계 최초 제품을 만들어낸 샤프가 팔렸다. 입지전적 인물이 대개 그러하듯 초등학교 1학년이 학력의 전부인 샤프의 창업자 하야카 도쿠지는 “다른 회사가 모방하고 싶은 제품을 만들어라”는 경영 이념을 샤프의 업의 본질로 생각하고 기업을 이끌었다.
하지만 그의 경영 이념은 사람의 본질을 놓쳤다. 사람이 아닌 제품에 초점이 가 있었고 자신들의 경영 이념보다 더 강력한 경쟁자들의 함정에 결국 매각되고 말았다. 반면 올해로 130여년의 역사를 가진 야마하는 피아노를 시작으로 각종 악기부터 음향기기, 모터사이클, 공연장, 골프 클럽 등 얼핏 보면 연관성이 전혀 없는 것 같아 보이는 상품과 서비스가 뒤섞여 있는 듯 보인다.
필자가 이해한 이 기업의 업은 ‘소리를 통한 사람들의 즐거움과 행복 추구’인 듯하다. 조금 추상적이고 포괄적이지만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각기 다른 제품이나 서비스가 하나의 일관성을 갖는다. 이 기업 고객들은 이런 가치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이용할 것이다.
창업이나 기업을 그대로 해석하면 새로운 업을 만들고 업을 세워가는 것이다. 업이 사람의 깊은 본질적인 가치와 밀접하고 이로울수록 성공 확률은 높아지고 살아남아서 영속할 확률이 높아진다. 우리는 해방 이후 지금까지 쫓아가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왔다. 늘 쫓기에 바빴고 언제나 가야할 목표가 분명했다.
어느 때부터 우리 기업들은 가장 앞장서서 달리기 시작하면서 쫓아가야 할 대상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가야 할 목표와 방향을 스스로 정해야 했다. 4차 산업혁명이라 부르는 현재의 변화 앞에 우리 기업들은 업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질문 앞에 마주하고 있고 고객과 스스로에게 답을 제시해야 한다. 그 질문의 답이 삶의 본질적 가치를 높이는 것으로 향할 때 기업은 진정한 글로벌 리더가 되고 영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