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의학회 2012년에 ‘여성의학과’ 변경 의결
다른 의료과 이해관계와 맞물려 답보 상태...“우리과 환자 줄어들수도...”
23세 회사원 최민영(가명)씨는 생리통이 심해 진통제를 자주 복용하지만 산부인과에 가본 적이 없다. 치료도 생각해 봤지만 그냥 진통제로 버틴다. 미혼 여성이 산부인과에 가면 사람들이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편함 때문이다.
산부인과의 영문 명칭은 ‘obstetrics and gynecology’로 여성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한글로 표기한다면 '산과와 여성의학과'가 된다. 산부인과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여성이 아닌 ‘부인’이란 단어를 사용해 명칭을 만든 것이고 지금까지 고착화된 것이라고 한다.
청소년 시기 여학생이나 미혼 여성들은 산부인과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4년 조사에 따르면 여성 청소년의 절반 이상은 ‘산부인과를 가게 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62.3%)’이라 답했다. 성인 미혼여성들 역시‘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70.8%)’고 응답했다.
이렇다보니 여성 질환을 경험한 성인미혼 여성 중 병의원을 방문한 비율은 43.1%에 불과하다. 자궁경부암이 세계 여성들의 암 사망 원인 2위지만 우리나라 18세 이상 55세 미만 여성의 15.6%만이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특히 18세 이상 35세 미만은 8%에 불과하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이런 이유로 명칭 변경에 적극 나서고 있다. 사실 명칭 변경은 사회적 인식 개선 방편으로 오래전부터 논의돼온 사안이다. 박노준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이들 미혼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인식을 전환하고, 잘못된 명칭을 바로 잡기 위해 산부인과 명칭 변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미 2012년 대한산부인과학회(회장 안정자)는 총회에서 ‘여성의학과’로의 변경을 의결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법 개정을 위해 수년째 여성의학과 개명을 공론화해왔다. 그럼에도 명칭 변경이 추진이 답보 상태인 것은 의료계 전체적으로 부정적인 의견이 더 많기 때문이다.
다른 진료과들은 산부인과가 ‘여성의학과’를 사용할 경우 여성 환자 수가 줄어 들 것을 우려하고 있다. 당장 진료과의 경계가 모호하거나 일반인들이 헷갈릴 수 있는 질병의 경우 무조건 여성의학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비뇨기과는 방광에 이상이 있는 여성 환자들을, 외과는 유방 진료가 필요한 환자를 여성의학과에 빼앗길 가능성을 염려한다. 내과 또한 다르지 않다. 진료과목의 명칭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의료법이 개정돼야 하는데 반대 의견이 많은 상황이다.
기혼 여성들 중에는 ‘산부인과’ 이름이 없어질 경우 분만을 담당하는 ‘산과’의 설 자리가 좁아질 거라는 걱정에 명칭 변경을 반대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산부인과의사회 측은 산과의 감소와 이름은 무관하다고 설명한다. 이미 분만병원이 많이 줄어 서울에는 구 단위로 2~3개, 지역 시·도 단위 10개 정도 남아 있고 이들은 대부분 ‘여성병원’ 이라는 이름으로 간판을 사용하고 있어 큰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다.
명칭 변경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산부인과의사회 측은 의료법 개정을 통해 마취과가 마취통증의학과로 변경돼 개원이 대폭 늘었고, 소아과가 소아청소년과로 바뀌는 등 의료계 내부의 이해 갈등을 극복한 후 명칭 변경이 이루어진 사례가 있다면서 명칭 개정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여성단체는 산부인과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명칭 변경과 함께 진료문화를 포함한 개선점들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