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
나도 모르게 강연의 첫 마디를 이렇게 시작했다. 얼마 전 어느 육군 부대 초청으로 재능기부로 강연을 하는 자리에서다. 짧게 자른 머리를 한 100여 명의 청년들의 눈빛을 보며 강연 주제와 상관없이 처음 대면하는 그들 앞에서 새로운 꿈을 꾸기 힘든 세상을 만든 선배로서 미안한 마음에서였다.
‘청년’이란 이름이 지금처럼 자주 거론되고 암담함을 상징하는 세대가 또 있을까. 문화콘텐츠에서 청년은 어느새 이상, 낭만, 사랑에서 현실, 일상, 절망으로 그려지고 있다. 출판계도 청년은 담론의 중심이고 좋은 인기 상품이다. 2007년 『88만원 세대』를 쓴 우석훈 교수는 악화되는 청년의 현실을 보며 “세상에 준 기여보다 부정적 폐해가 더 많다. 청춘들이 움직이지 않을 이유로 삼게 된 책”이라며 절판을 선언하기까지 했다.
신문사들의 칼럼에서도 ‘청년’이 주요 이슈였다. 지난해 1년간 주요 일간지 5곳에서 청년 문제를 주제로 한 칼럼이 조선일보 69개, 동아일보 64개 등 신문별로 64~84건으로 다수를 차지했다. 정치권도 예외는 아닌 듯 하다. 정부는 청년을 앞세워 노동 개혁을 강조하고 있고 곧 있을 4‧13 총선에서도 정치인들의 단골 이슈로 거론될 것이 분명하다.
온 나라가 구체적 대안이나 출구 없이 청년은 소비의 존재가 됐다. 끊임없이 소비될 뿐 그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고 있고 ‘노오오~~~력’하라고만 할 뿐, 희망을 줄 구체적 대안과 방법을 주지 못했다.
이달 초 미국 경제전문지 ‘블룸버그’의 억만장자 자료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세계 부호 400명 가운데 65%인 259명이 자수성가형(self-made), 나머지 35%(141명)는 상속(inherited)으로 조사됐는데, 한국 부호는 5명 모두 상속자였다.
반면 CEO스코어 집계에 따르면 한국의 상장사 주식 부호로 범위를 넓혀봐도 상위 10명 가운데 창업자는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이 유일하다. 30위로 범위를 넓혀도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과 이해진 네이버 의장,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 등 창업가는 6명에 불과하다. 최근 10년 사이 새로운 부호가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러한 사실에 더해 암담하게 만든다. 틀에 박힌 폐쇄적인 자본시장 구조와 부의 세습 고착화가 기업의 역동성을 떨어지게 하고 계층 상승의 사다리를 붕괴시키고 있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는 물론이고 소위 486세대조차 그들에게 무심했다. 군 복무를 마치면 국방의 의무는 군인에게만 전가하듯이 우린 대학만 졸업하면 시민으로 정치‧사회적 책무에서 면제되는 듯 살았다. 민주화가 어느 정도 됐다고 자만하며 신자유주의적 질서 안착에 참여하고 편승해서 소시민적인 안락함에 빠져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강남의 사교육 시장의 선두에서 무한경쟁 논리를 전파했다. 사회적인 도태는 개인의 노력 부족이라며 자본과 기업가적 논리를 멘토라는 역할로 때론 자기계발서라는 책으로 스스로는 물론 그들에게까지 전파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공감 부재의 사회로 만들어 ‘각자도생’의 길을 가라고 하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체화된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그것을 생의 사명감으로 살아온 세대가 성장 위주의 산업화와 투쟁의 민주화를 강요하고 있는 것은 되짚어봐야 할 부분이다. 최근 청년들의 알바노조 활동, 청년유니온, 민달팽이 등의 운동을 보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시대정신을 표방한 뭔가 대단한 것이 아닌 일상이 가능한 일자리가 있는 행복과 여유, 각자도생의 길이 아닌 공존과 공생으로의 공동체, 일방적인 지시나 명령이 아닌 소통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희망이 있다. 그들은 이미 충분히 ‘노오오~~력’하고 있고 충분히 아파하고 있다. 우린 그들에게 강요해서는 안 되며, 미안해야 하며, 따뜻함으로 함께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