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불안하다. 경제, 외교, 국방, 사회, 정치 어디 하나 ‘그래 괜찮아’하고 안정감이 느껴지는 곳이 없다. 총체적 불안은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감지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더 어렵다. 압축성장의 후유증에다 저출산·고령화·양극화·개인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글로벌한 경쟁 구조도 버거운데 강대국 틈바구니에 낀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라는 처지는 개인들이 훌륭하게 쌓아 온 지식, 지혜, 열정 그리고 정의감을 정상적으로 실현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사회적 불안은 불신과 짝을 이뤄 신뢰자본을 계속 깎아 먹고 있다. 역사는 나선형으로 발전한다고 했던가? 그래도 후진하는 고통이 적지 않다.
사회가 불안하면 여성들은 더 불안하다. 전시 혹은 분쟁 상태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와 같이 여성들에게 극단의 폭력을 경험하게 하듯이 혐오와 폭력이 서서히 증가하면 여성과 아동의 피해가 늘어난다. 정보통신기술(ICT)의 편리함이 동반하는 고용기회 축소와 양극화의 일차적인 대상은 여성이고, 사업이 어려울 때 여성 우선해고나 비정규직화는 여전히 노동시장의 암묵적 룰이다.
일상적으로 향유하는 문화적 콘텐츠는 늘어만 가는데 여성은 남성의 성적 대상물을 벗어나지 못하고, 가장 기본적인 임신, 출산, 산후조리와 초기 양육 과정에서 본인과 아이의 생존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여성들이 적지 않다. 한 신문기사에서처럼 좋은 일자리는 남성이 곧 스펙이고, 다음 생에 성별을 바꿔 태어났으면 하는 사람 중 86%가 넘게 여성이라는 레퍼토리는 변할 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또 얘기할 수밖에 없다. 더 어려운 역사적 시기를 견디고 살아오면서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헌신한 이들 덕에 이 정도의 삶에 이르게 된 것을 생각하면, 불안하다고 외치면서 관조만 할 일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2일 여성신문사의 ‘미래를 이끌어 갈 여성 지도자상(미지상)’ 시상식은 내겐 오랜만에 따스한 희망에 젖는 시간이었다. 전국 그리고 각 분야에서 너무도 똘똘하고 유능하게 사회적 희망을 일구어가는 씩씩한 청년 여성들의 이야기는 마음을 설레게 했다.
청년 여성들에 대한 수상이 사회적 희망을 일구는 개인들에 대한 격려라면, 정책은 청년 여성들의 희망 실현에 대한 사회적 격려가 되어야 한다. 정책은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이 절망이 아닌 희망을, 불안이 아닌 안정을, 갈등이 아닌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그 필요조건을 만드는데 진력을 다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처한 스펙터클한 삶의 조건을 개인들이 살아 내려면 정책은 지금까지의 과대포장을 벗어버리고 개인들을, 특별히 여성들을 침해나 차별의 대상이 아닌 삶의 주체로, 삶을 삶답게 향유할 수 있도록 차라리 조용하지만 든든한 언덕이 되어야 한다.
새해는 총선이 있으면서 다음 해의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해이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진정 원한다면 청년 여성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회인으로 성장과 차별·폭력 피해의 우려와 임신·출산·양육이라는, 개인에게는 결코 가볍거나 사소하지 않은 문제들이 한꺼번에 몰려 있는 20대와 30대 청년 여성들을 위한 속시원한 정책을 기대해 본다.